1945년 광복을 맞이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1988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해방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오랜 시간 침묵 속에 머물러야 했고 그 기억은 개인의 고통으로만 남겨져 있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이처럼 힘들게 세상 밖으로 나온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일본군 성노예제의 역사와 피해 생존자들의 삶을 기억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이다.
상설 전시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전쟁이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을 조명한다. 특히 전쟁 속 여성 인권 침해와 전시 성폭력 등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들을 보여주며 연대의 틀을 다진다. 또한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오는 4월 30일까지는 <역사부정: 전쟁기억, 기억전쟁>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시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피해 사실을 축소하거나 부인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역사 부정과 왜곡 문제를 다루며 기록과 전시를 통해 ‘기억’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과거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인가라는 현재의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주택가 한편, 실제 주민들이 생활하는 골목 사이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에 박물관의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노란 나비가 그려진 벽화를 따라 걷다 보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박물관은 언뜻 쉽게 들어서기 어려워 보이는 철문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어두운 내부는 다른 밝은 분위기의 전시관과 대비된다. 이는 전쟁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피해자들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면 티켓과 함께 오디오가이드를 준다. 티켓 뒷면에는 관람자와 인연을 맺을 피해 생존자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소개 글이 있는데, 이날 기자와 인연을 맺은 분은 홍강림 할머니이다. 홍강림 할머니의 이야기는 전시를 관람하며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오디오가이드를 따라 처음 마주한 전시는 매표소 바로 앞에 마련돼 있었다. 네모난 작은 공간 안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좁은 경계를 벗어나 여러 마리의 나비가 함께 날아갔다. 오디오가이드는 이 나비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좁은 틀 안에 머물러 있던 나비가 밖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오랜 시간 갇혀 있던 차별의 벽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다. 한 마리에서 여러 마리의 나비로 번져가는 모습은 한 사람의 증언이 또 다른 용기를 낳고 그 용기가 사회적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지 개인의 아픔에 머물지 않고, 연대와 공감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어두운 전시 공간 속에서 펼쳐진 나비의 움직임은 슬픔에 머무르기보다 그 기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이어지는 전시는 문을 열고 나가는 외부 공간이었다. 방문 당시 날씨는 잔뜩 흐렸는데도 어두운 실내에서 밖으로 나오니 매우 밝게 느껴졌다. 문 위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전쟁터의 소음이 나오고 있었고, 바닥에 깔린 쇄석길은 피해자들이 강제로 지나야 했던 길을 형상화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자갈 소리는 공간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외부 공간 한쪽 벽에는 고개를 숙인 어린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반대편 벽에는 부조로 만든 피해 생존자들의 얼굴과 손이 담겨 있다. 벽면에 새겨진 피해 생존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침묵 속에 있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리치는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어린 소녀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며 연대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용기를 전하는 것 같았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목에는 피해 생존자들의 심정을 담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폭력과 두려움, 그리고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감정들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어린 나이에 삶이 단절된 이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니 대형 스크린이 나온다. 이곳에선 티켓 뒷면에 소개된 홍강림 할머니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당시 17세였던 할머니는 오빠와 함께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강제로 끌려가 피해자가 됐다. 영상은 17세 소녀의 두려움과 혼란을 고스란히 전했다.
스크린 오른쪽 벽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양쪽 벽에는 피해 생존자들의 젊은 시절 사진과 현재의 모습이 마주 보며 나란히 전시돼 있다. 구멍 정면에는 스크린에서 당시의 사진들이 나오고 있고 그 앞에는 돌길 위에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한 모습이 마치 피해 생존자들이 겪었던 기억을 남겨놓으려 하는 것 같았다.
▲ 돌길 위의 신발과 당시 사진.
다음 전시를 위해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 길목에는 피해 생존자들의 호소가 적혀 있다. 어두운 지하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있는 지상으로 올라온 순서가 마치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그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세상 밖으로 나온 일본군 ‘위안부’
전시는 개인의 증언을 넘어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설명하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위안부’라는 용어가 사용된 배경과 위안소의 운영 방식은 패널 설명과 자료를 통해 정리돼 있다. 전쟁터에 설치된 위안소, 그리고 그곳으로 동원된 여성들의 상황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며 관람객이 제도의 전반을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또한 일본이 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은폐하려고 시도했는지도 알려준다. 특히 우리가 ‘위안소’,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은폐시도의 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해당 사안에 대해 ‘전시 중 성노예제’라고 규정했으며 ‘위안소’는 ‘강간센터’라고 지칭했다. 이는 해당 문제의 본질이 조직적인 성폭력과 강제 동원에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전시는 이러한 설명을 통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실상을 반영한 올바른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신문 스크랩도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기 말, 젊은 여성들의 실종을 다룬 기사들이 눈에 띄었고, 당시 모집 과정과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일본군이 남긴 일기도 일부 소개된다. 기록 속에 등장하는 ‘위안부’ 관련 내용은 당시 위안소의 존재와 운영을 보여주는 자료였다.
▲ 젊은 여성 실종 증가 보도 신문.
벽면에는 위안소의 전반적인 모습을 재현한 그림이 있었다. 빼곡히 들어선 좁은 방에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있었으며, 그 방 밖에는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군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림 한쪽에는 이용일 할당표가 있었으며, 성병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는 피해자들의 모습도 표현됐다. 또한 지위에 따른 이용 시간과 요금표도 나와 있어 위안소가 일본 정부와 군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공간은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과 관련 기록을 다룬다. 1990년대 기자회견 장면과 사진 자료가 전시돼 있으며 증언이 사회에 알려지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관련 판결문도 함께 소개돼 사건이 공적 논의의 영역으로 확장된 흐름을 보여준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다루는 공간에서는 수요집회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그 앞에는 의자에 앉은 소녀상이 놓여 있다. 소녀상 옆에는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마련돼 있어 소녀상과 나란히 앉아 영상을 볼 수 있다. 이는 피해 생존자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무거웠던 짐을 혼자 짊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전시를 모두 둘러본 뒤 추모관으로 향했다. 서울의 풍경을 배경으로 피해 생존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벽돌에 새겨져 있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빈 벽돌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피해 생존자들을 위해 남겨진 자리다. 벽돌 사이사이에는 추모를 위해 꽃을 꽂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마침, 추모관 입구 오른편에는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뜨개질로 만든 꽃이 놓여 있어 기자는 추모의 마음을 담아 꽃 한 송이를 꽂고 자리를 나섰다.
역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상설 전시를 모두 관람한 뒤 1층으로 내려오면, 수요집회와 그 반대 집회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영상 속에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이를 반박하는 주장들이 교차한다. 동일한 공간에서 상반된 입장이 맞서는 장면은 기억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공간에서 진행 중인 특별 전시는 ‘역사부정’을 주제로 한다. 전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예를 들어, 수요집회가 열리는 인근에서 동시에 진행된 반대 집회 장면이 영상으로 제시되며 일부 일본의 우익 인사가 현장에 참여한 사례도 자료로 보여준다.
또한 일부 출판물과 발언, 온라인 게시물 등이 패널로 정리돼 있다. 특정 표현이 어떻게 논란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학계와 시민사회가 어떤 반박을 제기했는지를 나란히 배치해 관람객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단순한 주장 나열이 아닌 주장과 근거 자료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다.
상설 전시가 피해자의 증언과 역사적 기록을 중심으로 과거를 보여줬다면, 특별 전시는 그 기억이 오늘날 어떤 왜곡과 부정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집회 현장을 담은 영상과 관련 자료들은 기억이 단지 보존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 부정과 왜곡 시도에 맞서 계속해서 확인하고 지켜져야 할 대상임을 상기시킨다. 기억은 단순한 의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존엄과 직결된 문제임을 전시는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찾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대로변에 자리한 대형 박물관은 아니다.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간이지만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자료와 전시가 촘촘히 이어진다. 박물관은 2012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문을 열었다.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길 바랐던 피해 생존자들의 염원을 담은 날짜다. 어두운 전시실에서 시작된 관람은 나비의 상징과 증언 영상, 기록 자료, 그리고 특별 전시로 이어지며 그 바람을 확장해 나간다. 전시는 단순한 정보 전달에 머물지 않는다. 소녀상 옆 빈자리에 앉아 영상을 바라본 관람객이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을 직접 마주하도록 이끈다. 언젠가 서울을 방문한다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한 번쯤 들러보길 권한다.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곳에서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일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