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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미친 듯 놀자, 서울 히어로 락 페스티벌

제 994 호 발행일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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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페스티벌은 단순히 무대 위의 음악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관객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스스로 공연의 일부가 된다. 지난 4월 2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서울 히어로 락 페스티벌’은 이러한 락 문화를 직접 체감할 기회였다. 이틀 동안 무대는 쉴 틈 없이 달아올랐다. 타카피, 딕펑스, 트랜스픽션, 로맨틱펀치, QWER, 소란, 데이브레이크, 체리필터, 노브레인, 크라잉넛, 국카스텐 등 세대를 아우르는 국가대표급 밴드들이 총출동해 문화비축기지를 거대한 락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몸으로 듣는 음악, 락 페스티벌이라는 신세계

  처음 페스티벌 현장에 발을 디뎠을 때, 기자를 압도한 것은 거대한 음향보다 엄청난 인파의 열기였다. 무대 앞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무대 위 아티스트의 손짓 하나에 파도처럼 출렁이며 함성을 쏟아냈다. 재치 있는 문구를 적어 넣은 형형색색의 깃발들은 솔직히 자유롭다기보다 조금은 두렵고 기괴하게 다가왔다. 기자가 알던 일반적인 공연장은 무대를 바르게 바라보고,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도 일정한 선 안에서 질서를 지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락 페스티벌은 문법 자체가 달랐다. 관객들은 제자리에 얌전히 머무르지 않았고,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음악이 흐르면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때와 직접 관중의 일부가 되어 부딪힐 때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처음엔 팔을 흔드는 것도, 박자에 맞춰 몸을 맡기는 것도 어색하기만 했다. ‘괜히 혼자 어설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멋쩍은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본 순간 곧 깨달았다. 그곳의 누구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잘 놀아야 한다는 부담도,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계산도 없이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소리를 지르고 뛰고 웃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기자의 몸도 조금씩 축제 속으로 스며들었다.
  락 페스티벌의 핵심은 ‘잘 노는 법’을 아는 데 있지 않았다.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자기만의 리듬으로 음악에 반응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손뼉만 치다가, 다음 곡에서는 어깨를 들썩이고, 어느새 양팔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관중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처음엔 냉소적인 구경꾼이었던 이들이 어느 순간 떼창의 중심이 되어 같은 후렴구를 외치고 있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서워 보였던 무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보였다. 그들은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이 아니라, 음악 앞에서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솔직해진 사람들이었다.

소란이 아닌 리듬, 슬램과 써클핏

  무대 바로 앞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아티스트와 눈을 맞추고 연신 휴대전화로 기적 같은 순간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면, 진짜 락 페스티벌의 본색은 무대 정면에서 살짝 비켜선 뒤편에서 폭발했다. 그곳에는 이른바 ‘슬램 존’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대형 깃발이 나부끼면 귀신같이 깃발을 중심으로 몰려들었고, 거대한 원 모양의 공간을 만들며 서로의 몸을 거칠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슬램(Slam)은 펑크와 락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의도적으로 서로 밀치고 부딪치며 에너지를 분출하는 독특한 관객 문화다. 직접 몸으로 겪어본 슬램은 말로만 듣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사람들은 사정없이 서로를 밀어냈고, 발을 밟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누군가의 단단한 어깨가 옆구리를 치고 지나가고, 날카로운 팔꿈치가 스치며, 발등 위로 묵직한 체중이 그대로 실릴 때마다 순간적으로 ‘악’ 소리 나는 통증이 올라왔다. 낭만적으로 ‘신난다’고만 포장하기엔 몸이 받는 타격이 너무도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거친 살 부딪힘마저 결국 락 페스티벌을 완성하는 가장 짜릿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그 자리의 모두가 온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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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클핏을 즐기고 있는 관객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대한 인간 소용돌이인 ‘써클핏(Circle Pit)’이었다. 중앙을 비워둔 채 관객들이 원형으로 거대한 공간을 만든 뒤, 음악에 맞춰 원을 따라 강하게 질주하는 문화다. 기자는 그저 제자리에 서서 공연을 즐기던 중이었다. 무대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 틈에 섞여 평범하게 리듬을 타던 바로 그 순간, 주위 사람들이 순식간에 바깥으로 흩어졌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바로 전까지 발 디딜 틈 없던 자리에 뻥 뚫린 거대한 원이 생겼고, 기자는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졌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함성이 터지며 써클핏이 시작됐다.
  그렇게 기자는 의도치 않게 써클핏에 휩쓸렸다. 누군가는 미친 듯이 웃으며 뛰어왔고, 누군가는 내 어깨를 치며 번개처럼 지나갔다. 당황스러움과 무서움이 엄습한 것도 잠시, 밀려드는 인간 파도의 속도에 맞춰 발을 구르다 보니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그저 통제 불능의 난장판처럼 보였던 장면이,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완벽한 리듬과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 경이로운 연대였다.
  물론 격렬한 만큼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2일 차 공연 도중, 슬램을 하던 관객 한 명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찰나의 순간 주변이 웅성거리더니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길을 터 공간을 만들었고, 곧바로 대기하던 들것이 들어와 응급처치가 진행됐다. 쓰러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슬램의 한복판에서는 한 사람의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 곧 모두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락 페스티벌이 계속되는 이유는 이 열기 속에 ‘살아있다’라는 날 것 그대로의 현장감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얌전히 앉아서 감상하는 공연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느낌이다. 베이스가 울리면 지반이 흔들리고, 드럼 비트가 꽂히면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관객은 귀로만 듣지 않는다. 목청껏 따라 부르고, 어깨로 박자를 타며, 발로 리듬을 밟는다. 그 순간 음악은 음원이 아닌 체험이 된다.

락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순간

  페스티벌 내내 경이로웠던 점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티스트가 한마디를 던지면 객석은 곧장 환호로 화답했고, 익숙한 후렴이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떼창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양손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의 어깨를 끌어안고, 또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가 음악과 하나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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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병을 든 밴드 '타카피'의 보컬.

  락 페스티벌 특유의 자유로운 문화도 재미를 더 했다. 일반적인 클래식이나 팝 공연장에서 아티스트가 술을 마시며 무대를 이어가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곳에선 무대 위 아티스트가 “캬, 소주 당긴다!”라고 외치면, 어디선가 나타난 관객이 술병을 건네며 “원샷!”을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가공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거침, 날것의 즉흥성, 오직 그 순간의 에너지에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 완벽하게 짜인 예술이라기보다 다소 거칠고 삐걱거리더라도 현장의 열기로 완벽해지는 문화, 그것이 록 페스티벌이 숨 쉬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는 낯선 이들이 음악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분모 아래 순식간에 오랜 친구처럼 결속됐다. 서로의 어깨가 부딪히고 발이 엉키며 남의 땀방울이 튀어도 그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체면이나 겉치레는 벗어던진 채 오직 음악을 즐기는 순간의 순수함만이 현장을 지배했다.

한 걸음 바깥에서, 축제의 한가운데로

  취재를 시작하기 전, 기자는 솔직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광인들의 무리’로 생각했다. 안전선 한 발짝 뒤에서 차가운 관찰자의 눈으로 지켜만 보았다. 그러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온몸으로 그들과 부딪치다 보니 그들과 동화돼 있었다. 그들은 무질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음악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는 가장 솔직한 사람들이었다. 신나면 뛰고, 벅차오르면 비명을 지르고, 좋으면 두 팔을 흔드는 사람들. 어쩌면 이 팍팍한 세상에서 락 페스티벌은 날것의 감정 표현을 온전히 허락하는 마지막 해방구일지도 모른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속에 섞이자, 그 순간 나를 제약하던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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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트랜스픽션'의 기타리스트.

  이틀간의 치열했던 현장은 음악이 인간을 어떻게 무장 해제시키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다큐멘터리였다. 무대 앞에서 목이 쉬어라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 뒤편 슬램존에 몸을 던지는 사람, 한 발 떨어져 맥주잔을 든 채 리듬을 타는 사람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락 페스티벌은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장 뜨겁게 타오를 수 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간은 단순한 ‘공연 관람’이 아닌, 타인과 연대하여 자유를 만끽하는 ‘축제’가 된다.
  처음엔 미쳤다고 생각했던 그 무리 속에서, 기자는 어느새 두 팔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낯설어서 두려웠던 문화는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는 해방의 통로였다. 락 페스티벌은 그렇게 사람을 바꿔 놓는다. 냉소적인 구경꾼을 열정적인 참여자로, 망설이던 발걸음을 춤추는 스텝으로. 그리고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찰나의 변화야말로, 기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락 페스티벌의 진짜 얼굴이었다.

윤상현 기자
sanm9427@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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