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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서툴고 투박한 내 언어의 가치

제 994 호 발행일 :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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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문을 쓰는 과제가 있었다.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고 마음속에 남은 잔상도 분명했기에, 빈 화면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쉬이 써 내려갈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그러나 막상 하얀 빈 문서가 켜지자, 머릿속은 백지처럼 변해버렸다. 정확히는, 너무도 날 것이라 가볍게만 느껴지는 나의 감상을 어떻게 포장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제’라는 제도적 목적 아래서 작품에 대한 솔직한 인상은 어딘가 부족하고 허술해 보였다. 결국 나는 첫 문장을 떼기도 전에 해당 작품을 주제로 한 논문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의 권위 있는 언어로 내 가벼운 감상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타인의 논문을 읽고 정리할수록, 본래 내가 느꼈던 감상과 나만의 언어는 아득히 멀어져 갔다.
  돌이켜보면 감상문을 쓸 때마다 늘 이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왜 우리는 자신의 감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가볍게 여길까. 지금에 와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자신의 감상을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숱하게 독후감을 써왔지만, 그것은 대개 기계적인 줄거리 요약과 뻔한 교훈을 덧붙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문학은 이미 정형화된 해석을 암기하고 출제자의 의도를 맞추는 사지선다형 문제로 전락했다. 대학에 와서는 전공 서적이 아닌 문학책을 자발적으로 펼치는 경우마저 손에 꼽는다. 그러니 정해진 답이 없는 단순한 감상문 과제 앞에서 나만의 언어가 마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수많은 활자를 소비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소화해 내 말로 뱉어내는 근육은 퇴화해 버린 것이다.
  나아가 설령 입을 뗐다 하더라도, 그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기가 두렵다. 문학에서조차 ‘정답’만을 좇아왔기에 내 감상이 틀린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얕아 보여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한다. 바로 그 두려움이 나를 논문 뒤로 숨게 만든 주범이었다. 검증된 학술적 해석에 기대면 적어도 ‘낙제’는 면할 테니까 말이다. 서툰 감상이 점수로 난도질당하고, 어설픈 해석이 민망함으로 돌아오는 경험이 누적되면 인간은 자연스레 입을 닫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게다가 오늘날은 클릭 몇 번으로 권위 있는 타인의 언어를 손쉽게 훔쳐 올 수 있는 시대다. 구태여 투박한 자신의 언어를 다듬는 수고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결국 안전한 타인의 감상을 소비한 대가로, 불확실하지만 주체적인 자신의 감상을 길어 올리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철저히 회피된다. 우리는 이 안락한 구조 속에서 점차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
  여기서 질문을 처음으로 돌려보자. 과연 내가 처음 느꼈던 감상은 정말로 가벼운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단지 논문이나 학술지에 어울리는 박제된 언어가 아니었을 뿐이다. 전문가의 언어가 오랜 학문적 연구에 기반한 정밀함이라면, 나의 언어는 작품과 처음 충돌했을 때 발생한 강렬한 인상에 기반한 날것의 생동감이다. 둘은 그저 쓰임과 위치가 다를 뿐,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진솔한 내면을 적어내는 감상문이라는 장르에선, 처음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순수한 경탄과 인상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끝내 나는 처음 느꼈던 투박한 감상 그대로 과제를 제출했다. 서툴고 단순하지만, 그것만이 온전히 작품을 통과해 나온 나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사소한 주관의 영역에서조차 자신을 의심하고 검열한다면, 머지않아 내 생각과 내 언어의 주권을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세상에 틀린 감상은 없다. 다만 두려움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무리’가 있을 뿐이다. 감상이란 본디 정답이나 우위가 없는 영역이며, 그렇기에 그 어떤 날것의 언어도 틀리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 조금 서투를지라도 나의 언어를 당당히 사용하는 것, 어쩌면 그 용기야말로 ‘나’라는 존재가 시작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럴싸한 권위를 빌리지 않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내 언어로 전달하는 것. 이 고독한 자기표현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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