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국가 경쟁력이 되고, 특허는 그 경쟁력을 지키는 무기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배터리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각국은 핵심 기술과 지식재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학 역시 산학협력을 확대하며 대학 내 연구를 외부로의 기술이전과 사업화로 연계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특허 경쟁 속에서 대학 특허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특허, 기술경쟁의 중심에 서다
특허란 발명을 통한 기술공개로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고 일정기간(20년) 동안 독점권을 부여받는 제도이다. 최근 첨단기술과 관련한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면서 특허는 국가의 경쟁력과 산업에서 그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각국의 특허 출원은 약 370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대비 4.9% 증가한 것으로, 특허 출원은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0년의 210만 건과 비교하면 특허에 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CT(특허협력조약) 국제 특허 출원 역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2024년 국제특허 출원은 전체 약 27만 건이었으며, 한국은 2만 2,851건을 기록해 미국, 중국, EU, 일본과 함께 IP5(5대 지식재산 강국)에 포함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학의 특허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대학의 연구 성과는 단순 논문에 그치지 않고 산업과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대학은 교육기관을 넘어 원천기술과 핵심 지식재산을 확보하는 연구기관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우리 학교 산학협력단 기술사업화센터 김만수 센터장은 “연구 결과를 실제 산업에 활용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특허를 통한 권리 확보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대학 특허는 기업으로의 기술이전과 창업 등 산학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 성과의 사회적.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높다.
▲ 자료출처: 2025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 보고서.
▲ 자료출처: 2025 공공연구기관(대학·연구소) 기술이전·사업화 실태조사 보고서.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2025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대학 408개교 가운데 361개교(88.5%)가 산학협력단을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대학 특허 규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5년 지식재산처 자체평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특허 출원 건수는 2018년 2만 7,055건에서 2024년 3만 3,536건으로 증가했다. 정부 연구개발(R&D) 재원의 약 65%가 대학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만큼, 대학은 국가 지식재산 창출의 핵심 주체가 됐다. 실제 기술이전과 사업화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2025 공공연구기관(대학·연구소) 기술이전·사업화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대학의 신규 확보 기술은 2만 4,910건, 기술이전 건수는 6,369건으로 조사됐다. 대학 기술 이전율은 25.6%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기술이전 수입은 약 1,134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대학 특허, 현실은…
그러나 증가한 대학의 특허가 실제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단순한 기술력 부족보다 대학 특유의 평가 구조와 사업화 시스템, 예산과 인력 운영의 한계에서 찾는다.
우선 건수 중심의 정량 평가가 문제다.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에서는 특허 출원 및 등록 건수가 주요 성과 지표로 활용된다. 이는 특허가 실제 활용될 가능성이나 산업적 가치보다 양적 확대에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학의 특허 출원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기술 이전율은 1/3에 못 미친다. 좋은 평가점수를 위해 건수에 집착하다 보니 출원한 특허 10개 중 2~3개만 사업화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활용하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특허’가 되는 것이다. 대학 산학협력단과 협업하고 있는 김탁곤 변리사는 “정부 과제에는 특허 출원 몇 건, 등록 몇 건과 같은 정량 목표가 있어 결국 질보다 양 중심의 특허가 양산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라며 “실제 현장에서는 특허권의 권리 범위나 활용 가능성보다 우선 등록부터 해달라는 요청이 적지 않다”라고 밝혔다.
우리 학교 김영철(의학과) 교수는 “대학 연구가 논문에 그치지 않고 특허와 기술이전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중요하다. 특히 학생들이 연구와 특허, 산업 현장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허 건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실제 사회와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고 이를 교육과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정부의 평가 방식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문제는 특허 건수에 집착하게 만드는 평가 방식이 양질의 특허 출원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대학은 제한된 재정에서 매년 쏟아지는 수백 건의 특허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 가치가 높은 유망 기술이나 특정 연구 분야에 집중적으로 충분한 비용을 투입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해외 출원의 경우 번역 비용은 물론 국가별 심사 및 등록 유지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재정적 부담이 크다. 결국 수많은 특허의 양적 유지를 위해 정작 필요한 개별 특허에 대한 ‘양질의 투자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재정적 한계는 실제 국제 특허 단계에서 포기하는 속출 사례로 증명된다. 해외 특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PCT 국제 특허 출원 절차를 거치는데, 이후 개별 국가의 국내 단계에 진입하면 비용 부담이 급격히 증가한다. 2019년 특허청의 <국내기업의 해외특허 현황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학 특허의 61.3%는 PCT 국제출원 이후 개별국 국내 진입 단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제 특허를 출원하더라도 실제 해외 권리 확보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김영철 교수는 “특허는 출원뿐 아니라 등록 이후에도 유지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PCT 국제 특허 출원은 대학의 지원이 없으면 개인 연구자나 학생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라며 “현재 대학이 일정 기준을 충족한 특허에 대해 PCT 국제 특허 출원 비용을 차등 지원하고 있지만, 향후 재정 여건이 개선된다면 보다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제한된 예산 구조는 특허 품질의 하락으로도 이어진다. 대학은 한정된 재정 안에서 다수의 특허를 처리해야 하기에 하나의 특허에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기 어렵다. 특허는 단순히 등록번호를 받는 게 끝이 아니다. 선행 기술 조사와 권리 범위 설계, 시장성 검토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작업이지만 현재 대학의 특허 양산 구조 체제에서는 충분한 지원이 어렵다. 김탁곤 변리사는 “특허는 결국 권리 범위와 활용 가능성을 설계하는 작업이기에, 비용과 시간이 부족하면 특허 품질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산학협력단의 인력 운영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학협력단 직원들은 특허 출원 및 유지 관리 외에도 ▲예산관리 ▲기술이전 ▲사업화 지원 ▲기업 협상 ▲연구과제 ▲행정 등으로 업무를 분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학협력단은 직원들을 일반 공무원처럼 1~2년을 주기로 순환 보직한다. 특허·기술사업화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1~2년 후에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관련 업무 경험이 없는 직원 다시 그 자리를 채운다. 특허·기술사업화는 산업의 이해와 기업 협력 경험이 장기간 축적돼야 성과를 낼 수 있으므로 직원의 전문성이 중요한데, 전문성을 키우기도 전에 인사이동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 학교 산학협력단 지식재산전략팀 이문희 팀장은 “특허·기술사업화 업무는 사람과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하지만 대학은 재정문제로 변리사, 변호사, 기술 전문가 등을 직접 고용할 수 없다. 결국 자체 직원이 안정적으로 경험을 축적해 특허·기술사업화 업무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인사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나아지려는 노력
지난해 10월 1일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승격했다. 첨단산업을 둘러싼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가 차원의 지식재산 전략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이를 계기로 특허와 기술사업화 지원 정책이 보다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특히 PCT 국제 특허 출원 지원과 사업화 연계, 전문 인력 확충 등 그동안 대학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문제들의 제도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대학도 특허의 실제 활용 가능성과 사업화 가능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김만수 센터장은 “최근에는 연구를 끝내고 해당 기술을 활용할 기업을 찾기보다는 연구 초기 단계부터 기업과 함께 시장성과 활용 가능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연구 단계부터 기업 수요와 산업 현장의 요구를 반영함으로써 실제 기술이전과 사업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라며 대학의 개선 노력을 설명했다.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학문 연구에 있다. 다만 기술 경쟁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대학 역시 연구 성과를 사회와 산업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특허 건수를 올리는 데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개선해 대학 교육과 연구가 산업 현장에서 적극 활용되는 미래를 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