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식’은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사회과학대(이하 사과대)의 신입생 발대식이다. 각 과마다 선배들이 가르치는 군무를 동기들과 함께 배우는 과정을 통해 전통을 잇고 애교심을 키우며 선배.동기들과 친목을 다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참여를 강요하는 분위기와 긴 연습시간 문제, 다른 과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소음문제, 잇따른 부상사고 등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시대와 상황이 변한만큼 해오름식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에 도움이 되고자 역대 해오름식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취재했다.
90년대, ‘해오름식’의 시작
해오름식의 기원은 반민주 독재 세력에 저항하던 학생운동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90년대에는 사과대의 각 과에서 10일 정도의 기간 동안 연습해 15명부터 20명까지 율동을 했고,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응원을 통해 단합했다. 이정우(정치외교학과卒·97)씨는 “그 시대의 해오름식은 민중가요에 맞춰 기존 기성세대의 관습을 타파하려는 몸짓이었다”며 “특히 몇몇 과는 운동권의 느낌이 강했으며 빨간띠를 두르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외부적으로는 민중운동을, 내부적으로는 사과대.과내의 단합을 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때에도 현재 대두되는 개인의 참여 자유 침해나 강압적인 분위기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정우 씨는 “정치외교학과 97학번은 ‘바위처럼 살아가보자’는 민중가요에 맞춰 ‘문선대(문화선동대)’와 ‘해오름식’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했다”며 특히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회를 중립적인 시선으로 보지 못하고 과와 단대의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그저 관습적으로만 해오름식을 할 것이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 사과대 학우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각 시대상을 반영해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문선에 이어 새내기들의 비전을 말로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2000년대는 90년대에서 현재로 변하는 과도기였다. 이해민(경제학과卒·00) 씨는 “민주화 투쟁과 민중가요는 사라지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간접적 노래와 참신한 일반 노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10년대, ‘해오름식’의 현위치
지난달 25일 사과대 해오름식이 있었다. 지난해 사과대는 연습 시간 문제, 주말연습 문제, 소음 문제를 줄여나감으로써 기존 군무방식을 유지했다. 그 방법으로 신입생들의 건강을 위해 매일 나갔던 연습도 주 3회로 한정됐으며 연습 시간은 하루에 3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또한 주말 연습은 해오름식 전 마지막 주말에만 실시하고 공연곡 시간도 절반으로 줄여 연습량을 줄였다. 소음 문제는 교수들의 편안한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합동강의실과 형설관 강당을 이용했다. 올해에도 사과대는 회의를 거쳐 이 규칙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사과대 제37대 나누리 학생회장 정상훈(정치외교학과·11) 학생은 “이번 해오름식이 신입생과 재학생의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앞으로 사과대를 대표하는 긍정적인 축제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오름식에 참여한 김미소(행정학과·16) 학생은 “동기들과 함께 연습하다보니 함께 호흡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며 “힘들어도 함께 노력했기 때문에 1등을 수상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김동연(정치외교학과·16) 학생은 “포기하지 않고 선.후배가 함께 노력했기에 뿌듯했다”며 “같이 즐기면서 해오름식의 전통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통과 현실의 대립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해오름식은 민주화 시대의 저항의 몸짓에서 각 과가 단합하고 전통을 잇는 행사로 변했다. 우리 또한 해오름식을 배우는 신입생에서 해오름식을 가르치는 재학생으로 변한다. 이어 다가올 해오름식에서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학내 구성원을 만족시키고 전통을 이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문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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