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 제11조 1항은 ‘평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말은 절대 지켜질 수 없는 아득한 이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이 ‘소수자’라고 정의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이에 이번 호 동아리 코너에서는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기념해 우리 학교에 있는 소수자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인 ‘레인보우 페이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인터뷰 참여자 : 회장 ‘별’. 회원 ‘김동민’
(아웃팅* 방지를 위한 활동명이며 실명이 아님을 밝힙니다)
*아웃팅 : 당사자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성수자의 성정체성이 강제로 밝혀지는 일.
1.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레인보우 페이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 별 : ‘레인보우 페이지’는 지난 2016년에 처음으로 개설돼 ‘나를 이해해서 나를 지키는 힘을 기르자’라는 목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학내 성소수자 모임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받을 수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게 저희 동아리의 활동 목표예요. 화합과 평화라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현재 20명 안팎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어요. 정기 활동은 매달 2회로, 특정 주제로 토론하는 정기 모임과 편하게 만나 담소를 나누거나 술자리를 갖는 친목 모임이에요. 현재는 코로나19로 진행하지 않지만 다 같이 서울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하는 등의 외부활동도 가끔 진행합니다.
2. 지난 10월, 한국외대 성소수자 동아리 ‘외행성’이 일부 종교동아리의 거센 반대로 정식동아리 등록이 부결되는 일이 있었는데요. ‘레인보우 페이지’의 상황은 어떤가요? 정식동아리로 등록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신 건지, 아니면 그렇게 할 계획이 없으신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 별 : 정식동아리 등록 시도 자체를 안 해보긴 했어요. ‘2시 30분’*이 외향적인 운동가적 성격의 동아리였다면 저희는 내향적인 성향이 더 강한 동아리에요. 그래서 ‘2시 30분’이 없어진 게 많이 아쉽죠.
- 동민 : 사실 따지고 보면 자의로 안 하는 게 아니라 타의로 등록을 못 하는 상황이에요. 정식동아리로 등록하는 데에 아웃팅 위험이 너무 크거든요. 동아리원 명단 제출이라든지, 동아리 회장들끼리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자리도 있고... 저희가 동아리 내에서 서로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것도 아웃팅 위험을 줄이고자 함인데. 그래도 제가 ‘오픈’*이라 얼굴이나 학과, 실명이 밝혀져도 괜찮다고 회장님과 말씀을 나눠본 적도 있는데, 이게 저 한 명이 총대 멘다고 되는 일이 아니에요. 제가 밝혀지면 저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아웃팅 당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더라고요.
- 별 : 사실 저도 ‘오픈’이라 신경은 덜 쓰이는데, 저희 동아리에 ‘오픈’인 친구만 있는 게 아니고, 이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친구들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아웃팅이 신경 안 쓰일 수가 없잖아요.
- 동민 : 활동 방향에 있어서 디폴트가 커밍아웃을 못 한 사람, ‘벽장’인 친구들이니까. 그 친구들 위주로 의사 결정을 하게 되거든요.
- 별 : 이런 위험만 없다면 당연히 저희도 중앙동아리 등록을 하고 싶죠. 정식동아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가 크고, 함께 모일 수 있는 동아리방도 생기잖아요. 지금은 모일 때마다 룸카페 같은 곳을 구해야 해서 불편해요. 예산 같은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2시 30분 : 우리 학교 내 또 다른 성소수자 모임으로, 풀 네임은 ‘충북대학교 성소수자 별별행동 2:30’이다. 지난 2019년 비수도권 대학 최초로 정식중앙동아리 인준(가등록)에 성공하는 등 학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발히 활동해왔으나 현재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오픈 : 주변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성소수자를 일컫는 퀴어 문화 은어. 반의어로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이와 관련된 커뮤니티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벽장’이 있다.
3. 많은 학생이 이용하는 에브리타임을 보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글이 눈에 띄던데, 읽고 가장 불쾌했던 글이 있다면요.
- 별 : 가장 최근에 봤던 글은 홍보 스티커 관련 글이었어요. 저희가 동아리 홍보 차원에서 학내 화장실에 홍보 스티커를 부착하는데요. 공공시설에 스티커 부착를 하는 게 잘못인 건 알아요. 그 부분에 대한 질책은 인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빌미로 혐오를 쏟아내는 건 아니지 싶어요. 저희가 굳이 화장실에 스티커를 붙여 홍보하는 것은 화장실은 밀폐된 공간이라 누가 스티커를 붙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가입했던 2018년만 해도 스티커뿐만 아니라 포스터와 현수막도 부착했었는데, 그 역시 아웃팅 위험 때문에 첩보 작전하듯 아무도 없는 밤에 했어요. 저희에 대한 혐오가 여전한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홍보 방법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 동민 : 대상을 저희로 특정하지 않은 비난, 아예 무분별한 비난은 그냥 웃고 넘길 수 있어요. 그런데 ‘똥꼬충들 다 가스실에 넣고 죽이고 싶다’라는 식으로 혐오 대상을 특정해 저주하는 글은 참기 어려워요. 예전에는 그런 글이 보일 때마다 댓글도 달아보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오히려 공격할 빌미로 삼더라고요. 우리를 가장 쉽게 공격할 수 있고, 가장 만만한 타깃으로 보는 느낌? “아,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나?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지?”라는 생각도 들고 무섭기도 해요.
4. 성소수자를 차별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별 : 여러분이 아무리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셔도, 우리는 항상 여러분 옆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분들 대부분은 자신은 항상 우위인 다수자의 입장에만 속할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사람은 모두 다르잖아요. 생김새도, 생각도, 성격도 다 다르므로 그분들도 어떤 집단에 가면 소수자가 될 수 있어요. 본인이 소수자에게 가했던 혐오가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을 너무 함부로 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동민 : 얼굴 보며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너 죽이고 싶어” 같은 말을 과연 얼굴 보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사를 보시는 분이 누구든지 간에, 저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해요. 왜냐면 지구는 둥그니까! (웃음) 저희 아버지도 당신이 성소수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지만, 지금은 가장 상관있는 사람이 되셨어요. 여러분이 모를 뿐이지 여러분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항상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백 명 중 한 명은 무조건 퀴어니까요.
5. 이 글을 읽을 학내 다른 성소수자 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별 :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가입해 볼까?’라는 생각만 들어도 편하게 방문해 주세요. 저도 그랬어요. 그리고 동아리에 가입하면 가장 좋은 점이 성소수자라는 카테고리로 함께 묶여 있는 사람들끼리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냥 툭 터놓고 얘기해도 ‘나도’라는 답이 들려올 때의 그 유대감이 주는 힘이 생각보다 크거든요.
- 동민 : 제게 있어 ‘레인보우 페이지’ 가입은 정말 큰 터닝포인트였어요. 첫 모임 때 다 함께 서울의 퀴어문화축제에 갔었는데, 그때 기억이 지금도 선명해요. 처음에는 축제 가면서도 무서웠어요.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지 싶어서. 그런데 함께 축제를 즐기다 보니 주변 사람이 다 괜찮아 보이고, 어느 순간 저도 아무렇지 않게 됐어요. 일종의 해방감도 들고. 디나이얼*을 겪는 성소수자도 많을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시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문을 두드려 주세요. 당신이 이제껏 경험했던 것들 중 가장 안전하고, 가장 재기발랄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디나이얼 :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퀴어 문화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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