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대학 승격 30년이란 시간은 우리 학교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엄청난 변화를 겪은 시간인 동시에, 학생들에게는 시대마다 캠퍼스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뀐 격동의 시간이었다.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이듬해인 1978년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캠퍼스에는 대학의 낭만이 가득했다. 특히 써클 활동이 활발했는데 1981년도 261호 기사를 보면 “전체학생의 40%가 써클활동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때의 써클 종류를 살펴보면 성경읽기 선교회, 서도회, 한국 전통 불교회, 일본어 연구회, 밝은 선구자 클럽 등이 있었는데, 동아리 활동은 줄고 취업을 위한 스터디 그룹이 활발한 요즘 대학가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80년대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격렬한 투쟁과 시위를 벌였다. 우리 학교 역시 민주화의 열망으로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다양한 행사와 집회가 88년도에 일어났다. 학생의 날에는 청주시내 일원에서 청주지역 대학들이 모여 연합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등록금 인상 반대와 총학생회장의 연좌농성으로 우리 학교에서도 학원 자주화 투쟁이 촉발되었는데 지도부의 역량 부족과 학우들의 참여저조로 실질적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매몰되는 일도 있었다.
90년대에 들어 정보화의 물결이 학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정보화 사업을 실시하면서 교육 여건과 학사 행정 업무의 방식 등이 획기적으로 변화해 나갔다. 지금 학내 구성원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종합정보시스템과 학사행정업무의 전산화도 이때 추진되어 지금과 같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1996년도 594호 기사에는 “열린 행정의 구현을 위한 전자문서 결재시스템의 도입과 재택 수강신청 및 성적 조회 등의 행정 서비스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PC통신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는데 학교 안에서도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의 PC통신 동호회가 생겨났다(1996년 593호). 하지만 PC통신 문화가 급격하게 퍼지면서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른바 ‘누런 사파리의 남학우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학교 도서관 화장실에서 한 남학우가 PC통신에서 얻은 음란 유인물을 배포해 학생들을 당황하게 한 사건이다. 본 사건을 기사화한 593호 신문에는 “이 사건으로 학내가 뒤숭숭하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어느덧 2008학년도를 보내고 있는 지금, 학내외 변화의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다.종합대학 승격 이후 30년간의 변화보다도 다가올 10년간의 변화가 더욱 클지도 모를 일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불확실한 시대이기도 하나 지금까지 그래왔듯 다가올 변화를 즐기며 반길 수 있는 준비를 해보자.








김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