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대학생이라면 한 해 동안 실시되는 여러 행사 중 학교 축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학교 축제야 말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고 한데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대학생활의 매력이 아닐까. 이번 특별 기획에서는 대동제의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살펴본다.

매년 가을에 실시되는 학교 축제인 ‘대동제’는 충북대학교의 역사와 함께 한다. 개교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실시되어 마침내 58번째 대동제가 실시되었는데 과연 과거의 대동제는 지금의 대동제와 얼마나 다를까. 과거의 대동제를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과거의 대동제는 ‘개신축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다는 것을 미리 알고 넘어가자.
243호(1980. 11. 3) 기사를 살펴보면 ‘제 29회 개신축전 차분한 분위기 속에 축제마쳐’라며 전년보다 규모가 작고 다양해진 축제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과거 축제에서는 전통적인 문화을 추구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29회 개신축전의 ‘과거제’라던지 ‘은율탈춤공연’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제’에 참가한 학생들을 ‘유생’이라고 불렀으며 조선시대 과거제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주제로 글재주를 뽐내어 장원을 선발하였다. 또한 ‘은율탈춤공연’은 민속연구반이, 사라져 가는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을 축제를 통해 심어주려 한 의도가 보인다. 이렇듯 과거의 선배들은 축제를 즐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캠퍼스의 문화가 전통문화의 밑거름이 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64호(1981. 5. 25) 신문에서는 과거의 축제는 닷새 동안 이뤄졌다고 전하며 ‘탑돌이’, ‘민속경연대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보아 전통적인 측면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 아쉬워’라며 학생들의 참여가 많지 않았다고 전하여 그 당시에도 참여의 문제가 주된 관심사였다 알 수 있었다.
이후의 축제는 민주화 투쟁의 함성이었다. 기존의 축제 명칭인 ‘개신축전’을 ‘개신대동제’로 바꾼 것도 이때이다. 이때의 축제 내용은 학원민주화와 민족성 고취라는 슬로건 아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36회 개신대동제에는 ‘민족통일염원마라톤’, ‘대동놀이’, ‘민요경연대회’, ‘모의대통령유세’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449·450 통합호(1987. 11. 3)에서 “충분한 내용성 살리지 못한 형식에 치우쳐, 지역 특수성 살린 대동의 참의미 되새겨야”라며 거창한 슬로건에 비해 부실한 축제 내용과 대동제의 변질된 의미를 비판하였다.
그 시대의 축제는 당대의 학생들의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 과거의 전통적인 것의 부흥, 민주화 항쟁시대의 표현의 방식 등 과거의 대동제는 충북대학교 학생들의 생각 그 자체였다. 현재의 충북대학교 학생 또한 흥미, 재미만 추구하는 축제보다는 우리의 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영하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