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 창간 56주년을 맞아 우리학교 신문의 지난 56해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충북대신문방송사에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 최고(最古)의 자료인 <충북대학보> 6호부터 <충북대신문>으로 변화한 지금까지, 신문이 창간된 5월을 중심으로 우리 학교 신문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자.
1951년 5월 20일 <청주농대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호가 발행됐다. 아쉽게도 현재 창간호는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며,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자료로는 1959년 4월 19일에 발행된 6호 <충북대학보>가 있다. 이 당시 신문은 한글보다는 한자가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지금과는 달리 시각적인 자료 없이 글만 적혀있어 보기가 어렵다. 또한 저널리즘적인 내용은 상대적으로 중시 되지 않은 채 교수들의 논문형식의 글이 주를 이뤘다.
1962년 5월 14일 18호 신문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문교부의 대학정비로 충남대학교와 합병되는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충북대학보>였던 당시 제호가 <충청대학보 충북판>으로 바뀌었다. 또한 주로 한자를 많이 쓰던 예전의 기사와는 달리 국한문을 혼용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자간이 보다 넓어져 보기에도 훨씬 편해졌으며 글자들만 빼곡했던 신문에서 벗어나 조금 더 그래픽적인 요소를 가미한 신문으로 탈바꿈했다.
1978년 3월 22일 180호부터 <충북대학보>의 제호가 <충북대신문>으로 바뀌었다. 국한문 혼용을 넘어 한글의 비중을 높이는 변화가 두드러진다. 당시 사회적인 검열 때문인지 기존 신문에 있었던 만평과 4컷 만화인 개신한량이 백지화돼서 발행된 것이 눈에 띈다. 기사의 내용 역시 당시 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독재와 억압에 맞서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1985년 5월 24일 385/6호 이 당시는 2호씩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전면적으로 가로쓰기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오른쪽에 위치했던 신문의 제호도 위쪽으로 위치하고 편집의 방향도 현재의 신문과 거의 흡사해진다. 이에 대해 당시 인문대 국문학과 조교수였던 전영표교수가 전면 가로쓰기 단행에 대한 찬사를 글로 적어 신문에 게재한 것으로 보아 획기적인 변화임을 알 수 있다.
1991년 10월 7일자 이번 특별 호 신문에서는 특이하게 취업정보판이 발행됐다. 당시에도 대학생들의 취업전선이 흐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양한 자격시험 일정과 각종 기업의 채용계획이 실렸다.
1999년 5월 19일 652호 신문의 각 면이 이름 없이 무작위로 채워졌던 종전과는 달리 이 당시에는 보도면과 대학면, 사회, 문화, 학술면이 생겨 신문의 기사가 보다 정돈되어 배치됐다.
2001년 5월 28일 686호 드디어 <충북대신문>의 제호가 한글로 바뀌었다.
2011년 3월 2일 828호 기존의 블랭킷판에서 크기가 작아진 베를리너 판으로 변화한 점이 두드러진다. 기존의 8면이었던 지면의 수도 12면으로 늘어났다.
남소연 기자
suwon1995@cbnu.ac.kr








남소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