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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개신대동제의 발자취를 따라서
제 882 호    발행일 : 2014.10.06 
<기획연재> 개신대동제의 어제와 오늘 ①

‘청춘을 물들여라! 컬러풀 페스티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학교 제63주년 개신대동제가 시작됐다. 우리 학교 축제는 1968년에 개교 17주년을 기념하며 시작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특색을 달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10년 전, 20년 전 우리 학교 축제의 모습은 어땠을까. 충북대신문에서는 제63주년 개신대동제를 맞이해 우리 학교 축제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까지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에 이번호에서는 개신대동제가 시작된 이래의 모습을 시대별로 살펴보며 이어 10월 20일 발행되는 제883호에서 오늘날 개신대동제의 모습을 심층취재할 예정이다. 

 

1968년~1979년: 학교 밖까지 떠들썩한 우리 학교 축제, 시간이 갈수록 참여도 떨어져

 

  당시 우리 학교에서 축제가 시작되면 청주 시내도 떠들썩한 축제의 분위기를 함께 했다. 축제 첫 날 전교생이 모여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모충교까지 경보대회를 진행했고, 사회를 풍자하는 모습으로 꾸며 학교 밖 가장행렬을 나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내 고교 백일장, 각종 전시회와 공연 등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했고, 종합체육대회와 바둑대회 등의 프로그램에 교수와 직원이 동참하며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진행해 나갔다.   
  또한 개신가요제, 개신인의 밤, 동아리 공연, 장기자랑 등으로 축제가 구성돼 음악과  시 문학이 빠진 적이 없었고, 초청 강연회와 세미나 등이 진행되며 축제가 일회성으로 즐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기르고 표출하는 장임을 보여줬다.
  시대의 풍조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이러한 모습이 축제에 반영되기도 했다. 1969년 개신축제는 개헌에 대한 학생들의 잇따른 성토대회로 무기휴강에 들어가 11월에서야 축제가 진행되는 모습도 보였다. 또한 자유연애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대에 자유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이벤트성 행사로 젊은 남녀가 한 쌍이 돼 참여하는 ‘카니발’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진행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프로그램은 더욱 다채로워졌지만 학생들의 참여도는 날로 감소해 1975년 10월 6일 발행된 제153호 충북대신문에서는 ‘축제, 제발 참석하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만평이 실린 것을 볼 수 있었다.

 

1980년~1989년: 전통성은 살렸으나 학생 위신 떨어뜨리는 주막 문제, 극에 달해

 

  이 시기에는 전통문화의 맥을 살리는 탈춤 공연, 민속감상, 풍년제, 농악놀이 등이 이어졌으며 1983년에 전통혼례식, 1985년에는 대동놀이가 처음 시작됐다. 이에 따라 우리 학교는 그 당시 우리 것을 찾자는 대학가의 움직임에 함께 호흡하며 전통문화의 멋을 재현시켰다.
  뿐만 아니라 현재 동아리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써클 활동이 예년에 비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써클인의 광장, 써클대항 배구대회 등을 통해 써클활동 활성화와 써클 간 친목을 돈독하게 했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축제 성격에 따라 대동제, 개신한마당 등으로 축제의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변화만큼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발견됐다. 축제가 진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우리 학교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보다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이 계속됐고, 매끄럽지 못한 축제 진행과 이변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점이 거의 매번 지적됐다. 학생들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부족은 여전히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었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민속촌 개관에 따른 주막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주막을 통해 학내 구성원 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 폭력사태, 시설 훼손 등으로 와해된 것이다. 총학생회에서는 일부 주막만 허용했으나 무허가 주막이 난립했고, 술 판매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료수병에 술을 담아 파는 상술도 등장했다. 하지만 총학생회와 학교 측의 감시는 축제 첫째 날뿐이었다. 둘째 날부터는 막걸리를 내놓고 파는 모습도 보였다. 주막 문제와 더불어 축제 후 뒤처리 문제도 90년도까지 계속됐다.

 

1990년~1999년: 학생, 자치기구 사이 소통 부족으로 ‘대동’의 의미 못 살린 개신대동제

 

  90년대는 학문이나 문화를 열린 공간에서 알리고 공유하는 거리문화제, 농촌 주민들과 함께 하는 민속주막, 수위 아저씨, 식당 아주머니 등 우리가 미처 관심 갖지 못했던 분들과의 소중한 자리 마련, 개신 축제 마지막 날 이뤄졌던 청소 시간 등 새로운 모습으로 개신대동제의 성장을 꾀했던 시기다.
  뿐만 아니라 민속놀이와 학술발표회, 강연회 등의 교육적 프로그램과 더불어 학생들의 참여를 도모하기 위한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에 따른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진 반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보다 내용이 부족한 오락성 프로그램에 참여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 전에 비해 늘어난 초대 가수 공연에 학생들이 초대 가수의 공연이 끝나면 행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학생들의 태도뿐만이 아니었다. 자치기구들 사이 소통 부족으로 인한 산만한 행사 진행과 행사 일정 불일치, 집단이 참여하는 행사 부족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학내 구성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간다는 진정한 ‘대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기도 했다.
  주막은 전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총학생회는 주막과 학생, 외부상인의 상행위를 점점 감소시켜 나갔고, 방범대를 구성해 순찰을 돌며 문제되는 모습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 등 질적인 측면에서의 수준은 그대로였다. 이에 1999년에는 학장회의를 통해 주막을 금지했고, 학생 측과 학교 측의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2000년~2013년: 학생들의 참여 유도 위한 프로그램들, 알맹이는 있었나

  2000년대에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벤트성 프로그램들이 많이 기획됐다. 런닝맨, 100대 100미팅, 클럽 파티 등과 다양한 테마존과 행사부스, 예년에 비해 증가한 연예인 초청이 이목을 끌었다. 정치외교학과 안성호 교수는 “2000년대 한류의 바람과 아이돌 그룹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대학 축제에 연예인 초청이 증가했다”며 “이에 따라 인기 있는 연예인을 초정하는 것으로 총학생회의 능력을 평가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말했다. 또 단과대학 축제와 개신 축제가 함께 진행됐는데, 가요제나 댄스제로 그쳐 아쉬움을 샀었다. 하지만 2013년 ‘개신 훼스티발’에서는 각 과의 특성을 살린 연극, 전시회, 학술제 등을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이 시대의 개신 축제는 학생들의 의식을 표출하는 장보다는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이에 2007년 개신 축제에서는 학교 거리에 국립대 법인화 반대와 등록금 투쟁에 대한 현수막과 자보가 곳곳에 가득했고, 공연마다 운동권 관련 행사가 포함됐으며 2001년에도 등록금 투쟁 천막 농성장이 위치해 있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축제 분위기를 망친다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또 축제의 장이 학내에 집중되며 마라톤 대회, 가장행렬 등 학교 바깥으로 나가 청주시내에서도 행사를 진행한 예년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아진 모습이다.
  축제가 시작된 오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음악 소리로 학내가 떠들썩하다. 축제를 통해 그간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객체가 돼 구경꾼의 모습으로만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내면의 의식을 표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의 모습으로 축제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혜란 기자
khra0131@cbnu.ac.kr
 

<참고문헌>
이낭호,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1권』, 충북대학교신문사, 1995
이낭호,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2권』, 충북대학교신문사, 1995
이낭호,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3권』, 충북대학교신문사, 1995
이낭호,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4권』, 충북대학교신문사, 1995
임동철,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5권』,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2005
임동철,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6권』,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2005
임동철, 『충북대신문 축쇄판 제7권』,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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