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면 꽃으로 물든 캠퍼스와 싱그러운 신입생에게서 봄이 옴을 느낄 수 있다. 이맘때면 학교는 ‘신입생 환영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로 활기가 넘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설렘이 가득할 시기이지만, 안타까운 사건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매년 어김없이 떠오르는 흔히 ‘똥군기’라고 부르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 문화가 그것이다. 신입생을 향한 폭언과 폭행, 음주 강요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사라지지 않는 논란, 선·후배 간 위계질서 문화에 대해 취재해봤다.
뿌리 깊은 위계질서 문화
선·후배 간 위계질서 문화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조선 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서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 ‘면책(面責)’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신입생을 상대로 선배가 후배를 부르며, ‘재직’이란 심부름꾼들이 이름이 불린 신입생을 둘러싸고 괴롭히는 풍습이다. 이처럼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에 새로 가입하는 신참에게 행해지는 신참례는 우리 역사와 문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의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대학의 선·후배 간 위계질서 문화는 이러한 신참례 문화에 잘못된 군사 문화가 더해져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선·후배 간 위계 질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계속된 군사 문화의 유산이 제대로 타개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위계질서 문화는 조직을 통제하는데 유용한 방법이다.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는 ‘사회기능론’은 이를 잘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계층은 사회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신광영 교수는 “조직이나 집단의 리더 입장에서 위계적인 선·후배 관계는 조직 관리를 쉽게 만든다”며 “대학은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선·후배 모두 공부하는 학생이기 때문에 강압적인 선.후배 간 위계질서는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습적인 위계질서 문화는 피해자였던 후배가 선배가 되면 자신이 당한 폭력을 계승해 다시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계속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논문 <한국사회 폭력문화의 구조화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심리학적으로 공격성과 폭력은 학습의 결과로, 기존에 이뤄진 관행이 학습돼 폭력이 전수된 것이라 한다. 즉, 폭력적인 환경에 놓일수록 폭력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 행위의 허용 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당하던 신입생 때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학년이 올라 선배가 되면 ‘나도 선배들에게 당했는데 이 정도는 별것 아니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학교 다니기가 두려운 후배들
선·후배 간 위계질서 문화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실제로, 모든 취재원이 익명을 요청해 모든 인터뷰를 익명으로 진행했다.
ㄱ단대 한 학과는 오늘도 신입생의 기합 소리로 시끄럽다. 해오름식 1위를 위해 강도 높은 율동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강시간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새벽까지 연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심히 연습을 하는 신입생 주위에는 선배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동작이 틀리면 지적과 함께 질타가 쏟아진다. 신입생은 율동뿐만 아니라 노래도 연습해야 한다. 개강총회, 신입생 환영회에서 신입생은 무대에서 무반주로 대중가요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ㄱ단대의 한 신입생은 “율동과 노래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내가 학교에 이거하러 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신입생의 자율적 참여가 아니라 선배들의 강압에 의해 할 수 없이 율동과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배와 술자리도 부담스럽다며 말을 이었다. “술을 마시지 못할 사정이 있어 술을 거절하면 ‘싸가지가 없다’는 선배의 폭언을 듣기 때문에 선배가 술을 권하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며 “대개 과 행사가 있으면 필수참석이 요구돼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ㄴ단대의 한 학과 또한 율동 연습으로 문제가 많다. ㄴ단대 신입생은 해오름식, MT, 체육대회, 축제 등 공식적으로만 4번의 율동을 해야 한다. ㄴ단대의 한 신입생은 “선배들이 율동 연습은 강요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연습에 빠질 명목이 없으면 거부하기 힘들다”며 “빠지고 싶은 친구들도 학과 분위기상 눈치를 보며 연습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또한, 이 학과의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해야 한다. 복도를 지나가다 선배를 만나면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신입생 ㅇㅇㅇ입니다!”라는 인사를 건네야 한다. 한 신입생이 인사를 하지 않고 선배를 지나쳤는데, 이후 선배가 그를 불러 ‘앞으로 복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라’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제보한 익명의 학생은 “가끔 이런 일을 당하면 ‘이런 게 대학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자퇴나 휴학을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고 씁쓸해 했다.
MT 불참비 강요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에 의하면 그가 속한 학과는 MT 불참자를 대상으로 불참비 납부를 강요했다. 학과 선배는 납부 기한을 정하고 미납자를 대상으로 메신저 단체방을 만들었다. 그 후 학과 단체방에 명단을 공개하고 재차 수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학생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는 “참석하지 않아도 내야 하는 돈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핀잔받을 바에 그냥 내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자유의사에 따라 회비 납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학과행사 참여를 거부하거나 회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동기와 선배들에게 낙인이 찍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배들의 강압적 태도와 물리적 폭력뿐만이 아니라 이런 강제적인 활동 참여와 회비 납부 등 잘 드러나지 않는 압력도 잘못된 위계질서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위계질서가 아닌 예의를 원하는 선배들
그렇다면 선배들의 입장은 어떨까. ‘위계질서’란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 관계에서 마땅히 있어야 하는 차례와 순서’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 의미에 맞게 선배들은 도에 지나친 위계질서는 문제가 되지만, 어느 정도의 예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회 임원은 “우리 학교는 위계질서가 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같다”며 “술자리에서 잔돌이(술잔을 들고 선배들의 테이블을 돌며 인사하러 다니는 행위), 사발식 등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후배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관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과 학생회비에 대해서는 “자신이 납부한 학과 학생회비는 학과활동을 하지 않아도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자신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며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학과의 일원으로서 나를 위해 사용된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논란이 많은 해오름식에 대한 학생회의 입장도 밝혔다. “해오름식 장기자랑을 진행해야 하는 학생회의 입장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며 “하지만 온전한 자발적인 참여는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행사가 자칫 사라질 염려가 있어 행사가 존속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 개선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과도한 위계질서가 부당한 것은 틀림없으므로 선배는 후배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해주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후배들도 예의를 지켜 선배를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의 실마리
선·후배 간의 강압적인 위계질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각 개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조명성(정치외교학과·11) 학생은 “선·후배 간 위계질서와 예의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적당한 선만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후배가 만나는 장을 많이 마련하고 좋지 않은 관습이 있다면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신광영 교수는 “대학 이전의 교육은 입시 위주였기 때문에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대등하고 자유롭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시민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 한 번에 강압적 위계질서 문화가 뿌리 뽑힐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며 “민주국가의 기본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는 평등, 자유에 기초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시민교육을 통해 배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우리 학교에는 선.후배 간의 강압적 위계질서로 인해 생긴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작년에 개소한 우리 학교 인권센터이다. 신학생회관 3층에 위치한 인권센터는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행위와 구제 방법이 적혀진 팸플렛을 제작해 신학생회관 1층에 비치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사건처리절차 매뉴얼을 게시하고 있다. 우리 학교 인권센터 김정내 상담원은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거나 방문 신청을 하면 상담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돕는다”며 “피해받은 학생이 요청하면 가해자를 불러 피해자가 느낀 인권침해에 관해 설명해주고 둘 사이를 중재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1년 후면 지금의 신입생은 또 다른 ‘선배’가 돼 후배를 맞게 된다. 그때가 되면 지금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을 관습이라고 합리화하지 않길 바란다.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를 두기보단,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대학의 선·후배문화를 통해 지금의 악습이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전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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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