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 수업이 한창인 한 강의실, A학생은 멍하니 전공 서적 끄트머리에 낙서를 끄적인다. 힘들게 입시를 치른 끝에 들어온 학과인데도 전공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뭘 해야 할지 생각하니 막막하다. 이러한 증세는 A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에게 ‘대2병’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가에 만연하게 퍼진 대2병의 정체와 대학생들이 경험한 증상에 대해 알아보자.
병명: 대2병
최근 몇 년 전부터 SNS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대2병’이라는 신조어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여전히 흔히 쓰이고 있는 신조어 대2병, 과연 대2병이란 무엇일까?
우리 학교 교육학과 이종연 교수는 “대2병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미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의욕이 없는 상태 혹은 미래 목표가 있더라도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해 낙담한 상태이거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 희망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 샘’에 따르면, 대2병은 ‘대학교 2학년 또래의 학생들이 장래를 걱정하고 취업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이르는 말이며, 그 증상은 개인차가 있다. 지난해 4월 <SBS 스페셜 ‘대2병 학교를 묻다’>라는 프로그램(이하 SBS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대2병의 현상 및 증상으로는 ▲자존감.자신감 하락 ▲평소보다 우울함 ▲미래에 대한 걱정 증가 ▲전과나 휴학 고민 ▲자체 공강 증가 등이 있다. 실제로 대2병을 심하게 겪을 경우 우울증, 무력감, 공황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대2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지난 5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국회교육희망포럼, 전국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 협의회는 ‘대학생,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국회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세미나에서 ‘대학생의 심리적 위기 실태’를 주제로 발표한 이화여대 학생상담센터 오혜영 교수는 “대학생 약 2,600여 명을 대상으로 심리건강 및 대학생활 적응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4.5%가 불안 증상에 대한 잠재 위험군 이상으로 확인됐으며, 우울 증상도 전체의 43.2%가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상과는 다른 현실
지난해 방영된 SBS 프로그램에서는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던 이동헌 학생을 비롯해 평범한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대2병’에 대해 다뤘다. 현재 서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이동헌 학생은 “고등학생 때는 대학 입시(이하 대입) 이외에 다른 생각은 크게 하지 않고 공부를 해왔다”며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 수강 과목을 선택할 때도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수업을 듣다가도 왜 공부해야 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중간에 포기했던 과목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작정 나를 대학에 보낸 고등학교가 원망스럽다”며 “로봇처럼 교육을 받기만 하고, 무엇을 위해 대학에 가는 건지 알려주지 않은 우리나라의 교육에 분노했다”고 전했다.
한국사회문제연구원 현택수 원장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중등 교육은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으로만 생각한다”며 “그러나 치열한 경쟁 끝에 대학에 와도 현실적으로 취업 사정이 여의치 않다보니 자기만족보다는 불만과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대2병의 원인을 분석했다. 실제로 대2병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대입 제도와 그 과정이다. 이는 대입 경쟁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미래를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아 정체성 확립과 전공 선택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생들은 대입을 치르면서 대학에 입학하면, 그간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해결되고 자신이 꿈꾸던 캠퍼스 로망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고, 대학 진학 후에도 중.고등학생 때와 같은 일방적 수업 방식과 암기식 시험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어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교육의 흐름과 분위기가 대2병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 학교 건강센터 학생생활 상담소 김연아 전임상담원은 “학생들은 이전 교육과정에서 자아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고, 여러 사회적.가정적 요인 등에 떠밀려서 지내왔다”며 “대학에 오면 누군가에게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대2병이라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취업난으로 인한 불안한 미래와 경쟁 사회라는 사회적 요소도 대2병의 원인 중 하나다. 청춘을 위한 고민상담 공간인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이 20대 청년 1만 2,485명을 대상으로 감정 상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1%가 ‘나만 뒤처진다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가장 뒤처짐을 느끼는 분야로는 ‘취업(25.2%)’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10~30대 전체 고민상담 청년 2만 1,942명의 1위 고민 역시 ‘취업과 진로(55.4%)’로 나타났다.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 안정적인 직업,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보다는 취업률을 고려해 전공을 선택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다. 대입 후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일명 ‘스펙’을 쌓고,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이는 결국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려왔던 수험생시절과 다를 바 없이 취업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대학을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대2병에 걸린 학생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대2병을 겪어 봤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우리 학교 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먼저 ‘대2병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5.3%(226명)가 ‘있다’, 15%(45명)는 ‘없다’, 9.7%(29명)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 복수응답이 가능한 ‘대2병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진로 고민 27.34%(146명) ▲취업난 19.29%(103명) ▲인간관계 14.61%(78명) ▲급격히 심화된 전공(전공과의 괴리감) 13.48%(72명) ▲일방적인 시험과 암기식 수업 12.55%(67명) ▲주체성 및 자아정체성 미확립 10.11%(54명) ▲기타 2.62%(14명) 순으로 답했다.
대2병의 원인을 ‘진로 고민’이라고 답한 서준혁(간호학과·13) 학생은 “간호학과를 진학했는데, 막상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며 “이런 고민 때문에 공부가 잘 안됐던 시간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김동혜(건축공학과·13) 학생은 “아무도 진로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없었고 혼자 스스로 진로를 찾기엔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취업난’이라고 답한 문주연(독일언어문화학과·15) 학생은 “동기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졸업한 선배들도 아직 취업하지 못한 것을 보며, 취업에 대한 부담이 순식간에 다가왔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 ‘급격히 심화된 전공(전공과의 괴리감)’을 선택한 이황희(기계공학부·13) 학생은 “2학년 이후부터 전공 수업이 급격히 많아졌는데, 전공이 나와 잘 맞는 건지 고민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주체성 및 자아정체성 미확립’이라고 답한 박준흠(산림학과·17) 학생은 “청소년기엔 주체적이기보다 타인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게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대2병에 걸린 학생들은 끝내 휴학을 하거나 자퇴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지난해 9월 1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를 기준으로, 휴학생은 ▲1학년 203명 ▲2학생 425명 ▲3학년 607명 ▲4학년 582명, 자퇴생은 ▲1학년 245명 ▲2학년 113명 ▲3학년 98명 ▲4학년 20명으로 나타났다.
우리 학교 종합서비스센터 정영훈 학사상담 담당자는 대2병에 대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대2병과 같은 사회적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이 문제는 학생 개인의 문제보다는 교육의 문제, 사회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김연아 전임상담원은 “학생 상담 내용 중 진로 고민으로 인한 상담이 많다”며 “이는 학생 시기에 당연히 하는 고민의 과정이기에 너무 걱정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투병중인 그들의 증세
# 수학교육과 A학생의 대2병 증세
진로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고 싶어 1년 간 휴학을 한 후 2학년 1학기로 복학했습니다. 하지만 임용고시의 벽은 너무 높고, 수학이 좋아 수학교육과에 왔지만 오히려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수학포기자의 줄임말)가 됐습니다. ‘1학년 땐 놀아야한다’는 말만 듣고 지금까지 놀며 학점관리는 하지 않았고, 모두가 한다는 토익, 토플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어디 취업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맏이인 제가 ‘선생님’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어떨 때는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꿈이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꿈을 찾는 것도 어렵고 지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좌절과 실망만 반복할 것 같습니다. 이런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 B학생의 증세
1학년 때 마냥 놀다 2학년이 되니 학점 걱정도 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생겼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고 시도는 하지만 마냥 놀았던 지난 1년의 습관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집중하는 것도 힘겨워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제 미래는 답이 없다는 걸 느낍니다. 그냥 힘들어요.
# 유재영(국제경영학과·15) 학생의 증세
저는 학과 동기보다 한 학년을 늦게 시작했습니다. 한 살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스무 살의 동기들과 놀며 1학년을 마무리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느끼듯이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지만, 제 생각은 여전히 고등학생 시절에 멈춰있었습니다. 이후 군대를 가게 됐고, 그 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학을 하고나니 저는 벌써 24살이 됐고, 나이의 무게에 짓눌려 있습니다. 여자 동기들은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른들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허탈합니다. 과거의 모습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는 제 모습이 한심합니다.
# 홍채원(지구과학교육과·17) 학생의 증세
제 대2병은 말기에 진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범대 입학 후, 저의 교사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학생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교사상과 통솔력이 있는 교사상, 이 둘을 한 번에 해낼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많이 가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교직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며 저만의 교사상이 잡혀가고 있고 대2병 증상이 어느 정도 진정됐습니다.
그들을 위한 처방전
서울시는 청년들이 일정기간 여행, 봉사, 인턴 등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하면서 진로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2018 청년인생설계학교’를 올해 처음으로 개설했다. 이는 맹목적인 스펙 쌓기와 구직 활동에 내몰려 자신을 깊이 있게 탐색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이 시대 청년들을 위한 학교이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갭이어란, ‘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며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통해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을 뜻한다. 갭이어 문화를 국내 최초로 도입한 사회적 기업 한국갭이어의 안시준 대표이사는 “이제는 갭이어가 정말 필요한 현실이 됐고,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진로를 찾아가는 것은 행복과 미래를 위해서 당연한 것”이라며 “갭이어를 갖는 것만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찾고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 행복한 미래를 설계해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대2병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순간은 마치 개학날 내가 모르던 숙제를 갑작스럽게 알게 돼,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과 같다”며 “지금부터라도 자기 인생의 방향이나 꿈을 찾는 시간을 가져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조언을 전했다.
이종연 교수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에 낙담하기보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시간적 여유를 내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연아 전임상담원은 “우리 학교 건강센터 학생생활상담소에서는 여러 심리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중 성격 관련 검사 및 STRONG(직업흥미검사)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자기 이해를 하는 것도 대2병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검사를 통해 알게 된 자신의 흥미와 연관된 강의도 들어보고 관련 서적도 읽어 보면서 자신의 흥미를 확실하게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아정체성 찾는 것을 늦추면 언젠가 다시 그 과정이 온다”며 “그 과정을 너무 막막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단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과정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민정 기자 minjung3898@cbnu.ac.kr
윤이나 기자 inajoa6338@cbnu.ac.kr








김민정&윤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