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쁠몰(플러스로 몰아준다는 뜻으로 성적을 + 학점으로 주는 과목)’, ‘꿀강(수업 부담이 크지 않고 성적을 잘 주는 과목)’ 이라는 단어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많은 학생이 강의를 선택할 때 학문에 대한 흥미와 관심보다는, 좋은 성적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수업을 더 선호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다. 또한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운 소수 강의를 피하고 대형 강의만 찾아 듣기도 한다. 이러한 부작용이 계속되자 최근 대학가에서는 기존 상대평가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학점 ‘무한 경쟁’ 속 상대평가
현재 우리나라 대다수의 대학이 상대평가를 도입한 이유는 ‘대학구조개혁평가’의 평가항목과 맞물려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4년 12월까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성적 분포의 적절성’(1점)을 평가항목으로 포함했다. 이 항목은 2000년대에 들어 절대평가 제도 시행 대학에서 심화한 ‘학점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도입됐다. ‘학점 인플레이션’이란 대학생들 대다수가 높은 학점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성적 분포의 적절성’ 항목은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대학의 성적부여를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의미와 같았다. 이에 많은 대학이 학사관리규정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변경했고, A·B 학점 부여 비율을 축소했다. 그러던 지난 2015년 1월, 교육부는 학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며 해당 항목을 삭제했다. 하지만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관리 노력’ 항목의 배점을 기존 3점에서 4점으로 높이면서, 여전히 많은 대학이 상대평가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상대평가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으로는 우리 학교와 충남대, 전북대와 같은 지역거점국립대와 수도권 소재 사립대인 경희대, 한양대 등이 대표적이다. 상대평가를 찬성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경쟁에 의한 실력향상을 그 장점으로 꼽는다. 경희대 추정우(작곡과·14) 학생은 “우리 학과의 경우 실기 위주의 수업이 많은데 이들 과목도 상대평가를 시행한다”며 “교수님의 평가 기준에 맞춰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며 노력하다 보면 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상대평가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 반면 상대평가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평가 기준이 불공정할 경우 자신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전북대 최은서(산림환경과학과·18) 학생은 “평소 상대평가나 절대평가 모두 나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했는데, 평가 기준이 불공정하면 상대평가가 나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알았다”며 “교양수업에서 일부 교수님이 자신의 소속 학과인 학생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등수가 밀려나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학교는 과거 모든 과목에 대해 일괄적인 상대평가비율을 적용해왔으나, 학생, 교수, 교직원의 의견을 수렴한 후 지난 2016년 5월 성적평가 방법을 일부 개정했다. 현재 우리 학교 학사운영규정에 따르면 과목과 학과의 특성, 수강반의 특성 등을 고려해 A.B학점 부여 비율에 차등을 둔 I 유형과 II 유형 중에서 성적평가 방식을 선택토록 하고 있다. 또한 사범대, 아동복지학과, 간호학과 등의 실습과목이나 수강인원 5명 이하 강좌는 예외를 적용해 담당 교수의 재량으로 성적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학교 학사지원과 수업팀 오슬기 주무관은 “우리 학교의 성적평가 방법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현행의 성적평가 방법을 유지할 계획”이라며 “향후 학생들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개선의견 제시가 있다면 추가 검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만큼 결실 맺는 절대평가?
최근 수도권 주요 대학은 성적평가 제도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변경하는 추세에 있다. 연세대의 경우 2014학년도 의과대 본과 1학년부터 절대평가를 실시했다. 절대평가 실시 이후 학생의 의사 국가고시 성적 분포 등을 분석해본 결과, 상대평가를 시행할 때보다 합격률이 높아졌고 합격자 대부분이 상위권 점수를 얻었다. 이러한 결과에 따라 연세대는 성적 상대평가제 원칙을 내년부터 폐지하고 평가방식을 과목별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도 기초교양과목인 ‘글쓰기’ 수업의 성적 평가를 올해부터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어 등 외국어와 수학.과학 등 기초교과목까지 모두 절대평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또한 지난해 2학기부터는 ‘타 학과(부) 전공교과목 평가방법 선택제도’도 시범 운영 중이다. 이 제도는 타 전공 교과목 수강 시 최대 9학점까지 등급제(A~F) 대신 교과목의 성취 목표를 충족하면 S(Satisfactory), 그렇지 못한 경우 U(Unsatisfactory)를 부여하고 S 또는 U를 받은 과목은 학점 평균 계산 시 제외하는 평가 방법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관계자는 “평가방식 전환은 상대평가제가 과도한 학점 경쟁을 불러왔기 때문에 시도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이정훈(국어교육과.18) 학생은 “글쓰기 수업이 절대평가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당황했었다”며 “하지만 성적평가를 절대평가로 진행하니 학생들끼리 서로 견제하기보다는 함께 공부해나가며 같이 성적을 잘 받자는 분위기가 조성돼 오히려 학습 능률이 올랐다”고 말했다.
고려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염재호 총장의 공약에 따라 2015학년도 2학기부터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했고 2017학년도 안암캠퍼스 기준 절대평가 강좌 비율은 66.50%에 이른다. 고려대 교무팀 관계자는 “2014학년도부터 현재까지 학점을 분석해보면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은 관찰되지 않았다”며 “교수들의 자율권이 보장되므로 교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절대평가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학생들이 절대평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대평가로는 학점을 잘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절대평가는 언제든지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어떤 방법이 현명할까
일부 대학에서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혼합한 ‘교수자율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경우 지난 3월부터 1년간 ‘학부 교수자율평가’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담당 교수는 상대평가 또는 절대평가를 택일하거나 두 가지 평가를 절충해 선택할 수 있다. 상대평가를 선택하더라도 기존의 상대평가와 달리 성적 등급별 인원 제한이 없으며, 평가 비율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절대평가의 경우 교수가 정한 절대적 기준에 따라 성적을 부여할 수 있으며,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되 최소 일정 비율을 보장하는 등 두 가지 평가를 절충할 수도 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박지연(수학과·17) 학생은 “상대평가를 시행할 때보다 학업에 대한 부담이 줄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절대평가를 시행하는 수업이 많은 학교일수록 기업 채용 시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포스텍의 경우에도 평가를 교수 재량에 맡기고 있다. 포스텍은 공대 11개 학과 전체 학생 수가 320명이므로 대형 강좌라고 해도 수강생이 최대 50∼60여 명에 불과해 교과목 대부분을 절대평가로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포스텍은 앞으로 ‘Pass/Fail’ 평가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 학생들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어떤 성적 평가방식을 선호하고 있을까? 우리 학교 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성적평가방식이 무엇인가요?’라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과목 절대평가 45.00%(135명) ▲전공 상대평가/교양 절대평가 20.00%(60명) ▲전공 절대평가/교양 상대평가 19.33%(58명) ▲전과목 상대평가 14.00%(42명) ▲기타 1.67%(5명)순으로 답했다. 전과목 절대평가에 답한 이선민(러시아언어문화학과.17) 학생은 “정원이 적은 학과 학생의 경우 전공 성적에 대해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Pass/Fail 제도가 적용된다면 학생들이 부담이 줄어들 것 같다”고 답했다.
임은희 연구원은 “획일적인 정책보다는 교수의 재량으로 전공과 과목의 특성을 반영한 효율적인 평가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학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제재도 학교별로 자유롭게 갖춰야 한다”고 전했다.
현실적인 수업 평가 방식으로 불리는 ‘상대평가’와 불필요한 경쟁을 막기 위해 시행하는 ‘절대평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는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어느 한 가지 방법이 절대적으로 더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학은 사회 구성원이 될 인재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곳이다. 대학에서부터 무한경쟁을 통해 못한 자와 나은 자를 구분 짓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과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한 학점 경쟁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들에게 성적 평가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희수 기자
heesoo9803@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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