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 학기 시험 기간이 오면 적지 않은 학생이 족보를 이용해 시험공부를 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족보 사용에 대한 찬반 의견은 대학 내에서 자주 언급되는 논제다. 족보를 얻는 것 또한 능력이라는 찬성 의견과 족보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이미 불공평하다는 반대 의견이 항상 맞서왔다. 이 같은 족보의 양면성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족보 사용 실태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해봤다.
족보, 대학의 문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을 뜻하는 ‘족보’. 과거 조선 후기에는 부유한 상인들이 양반의 족보를 사고팔며 신분 상승을 꾀했다. 현재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대학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대학생들이 교양.전공의 족보를 사고팔아 학점을 높이는 모습이다. 현재 많은 대학생이 족보를 통해 수업의 중요 내용, 시험 유형 등을 파악하는 등 족보를 시험 지도서처럼 사용하거나 족보만으로 시험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충북대신문에서는 학내 족보 사용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우리 학교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족보를 사용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있다 61.5%(123명) ▲없다 38.5%(77명)라고 응답했다. 족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123명의 학생은 ▲선배 및 동기 58.54%(72명) ▲학교 커뮤니티(에브리타임, 충대전 등) 이용 17.07%(21명) ▲족보 사이트(해피캠퍼스, 유니스터디, 전대모 등) 이용 13.82%(17명) ▲기타 10.57%(13명) 순의 방법으로 족보를 구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대학가에서 족보가 팽배해온 이유에 대해 한국지방교육연구소 이정미 센터장은 “대학교육의 학업성취 또는 성과를 ‘학점’으로만 인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 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건호 교수는 “족보 자체는 예전부터 있던 문화”라고 말했다.
족보, 불공평한 경쟁
대학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족보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은 갈린다. 몇몇 학생은 족보를 옹호하고, 또 다른 학생은 비판한다. 족보에 대한 논쟁의 중심에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족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불공평하다 85.5%(171명) ▲공평하다 14.5%(29명)의 결과가 말해 주듯 대부분의 우리 학교 학생은 족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족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학생들은 족보가 ▲정보력에 따른 성적 ▲진정한 공부의 상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 ▲저작권 침해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정보력에 따른 성적은 자신의 실력에 맞는 성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시험에서 족보라는 정보력이 개입돼 성적을 조작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족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시험에는 자신의 실력 외에 정보력 같은 부차적인 요소가 개입되면 안 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 학교 농업생명환경대의 A 학생은 “오직 자신의 실력과 지식만이 필요한 시험에 왜 정보력이 영향을 미치는지 의문”이라며 “소수에게만 정보를 준다는 것은 족보 사용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한, 족보의 유무에 대한 공평성 문제에 대해 동국대 박상철(행정학과·15) 학생은 “족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은 양을 공부한다 하더라도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건호 교수는 “소수만 정보가 공유돼 불공평이 심화될 수 있고 이는 곧 성적의 차이로 이어진다”며 “공정한 경쟁의 의미가 퇴색된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족보를 이용하면 공부방법이 획일화돼 진정한 공부가 상실된다는 것이다. 족보를 이용하면 족보에 제시된 문제 유형이나 수식만 외워 시험을 보거나, 아예 족보를 커닝페이퍼로 만드는 일도 벌어진다. 경상대 이준권(영어영문학과·15) 학생은 “나는 족보를 이용해 공부한 적은 없는데, 나름 열심히 공부한 과목이 족보로 공부한 학생들 때문에 만족할 만한 성적을 받지 못하면 속상하다”며 “족보로만 공부하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생략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정미 센터장은 “학생들이 전적으로 족보에 의존하게 되면 학업 몰입 및 학문탐구를 위한 노력의 기회를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그런 획일화된 공부만 한다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활용할 수 있는 핵심역량을 습득하기 힘들어진다”며 “대학에서는 다양한 교육적 활동과 비판적 사고를 풍부하게 경험해야 하는데 이러한 문화로 인해 사회에 나가 쓸 수 있는 역량이 저하된다”고 밝혔다.
세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된 인간관계의 회의감은 진정한 의미의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저 족보를 구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람을 취급하게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에 대해 A 학생은 “족보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누군가와 친해지려는 친구를 종종 보는데,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기보다는 수단으로 대하는 것 같아 그런 친구는 멀리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상철 학생은 “족보로 공부하는 사람은 뭐든 먼저 앞서간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탐구해 성취하기보다는 아부나 아첨을 통해 빠르게 성공하려는 심리만 발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홍익대 김해진(건축학과·18) 학생은 “족보로 인해 선후배 간에 불필요한 친목 도모, 동기간에 다툼 등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어 족보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은 저작물인 시험문제를 허락 없이 소장 및 배포하는 행위가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담은 창작물이다. 따라서 시험문제 또한 교수의 저작물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저작권위원회 김기홍 법률상담원은 “시험문제는 교수 개인의 저작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어 허가 없이 가지고 있거나 공유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시험문제의 공유 및 판매는 저작권법 제32조(시험문제로서의 복제) 위반일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족보, 공부의 나침반
반면 족보를 얻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다. 이들은 ▲공부 효율 제고 ▲해당 과목의 중요한 부분 파악 ▲과목별 공부 시간 분배에 활용 ▲시험 유형 파악 등 족보가 공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족보를 가진 것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족보를 이용해 공부하는 방법만 문제가 된다는 견해이다. 우리 학교 최정묵(기계공학과·15) 학생은 “족보를 통해 이전 기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공부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며 “족보를 통해 시험문제와 답만 외우는 공부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족보는 해당 과목의 중요한 부분을 알게 해 줘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경상대 문성재(사회교육과·17) 학생은 “족보 때문에 어느 부분이 중요한지 알게 되고, 그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서 공부하다 보니 실력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족보는 해당 교과목의 이전 기출문제를 모아놓았기에 공부의 방향성을 제시해 더욱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시험문제 유형 또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에 대해 김해진(건축학과·18) 학생은 “족보를 통해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며 “전 범위를 공부하기보다는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큰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해 시간을 줄이고 다른 과목에 더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 학교의 B 학생은 “어떤 교수님은 시험 범위가 아닌 곳에서 시험문제를 내는 일도 있다”며 “그 교수님 과목의 족보가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시험문제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화여대 박지연(수학과·17) 학생은 “학생회가 주도해 모두에게 족보를 준 일이 있었다”며 “족보를 통해 미리 시험문제 유형을 파악할 수 있어 시험공부를 수월하게 한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정미 센터장은 “족보는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해 낯설고 어려운 교과목에 대한 학업 성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일부 장점은 있다”고 전했다. 또한, 김건호 교수는 “해당 과목의 중요 부분을 쉽게 알 수 있어 공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족보 문제, 해결 방안이 있을까?
‘족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주체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교수의 역할(매년 다른 시험문제 등) 72.5%(145명) ▲제3자의 역할(기관, 학칙 등) 15.5%(31명) ▲학생의 역할(족보를 만들지 않는 것, 자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 등) 10.0%(20명) ▲기타 2.0%(4명) 순으로 답했다.
위 결과에서 보듯 많은 학생이 족보 문제 해결를 위해서는 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학생들은 교수가 전년도 기출문제를 모든 학생에게 공개하거나 매년 새로운 시험 유형으로 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상철(행정학과·15) 학생은 “교수가 시험마다 다른 문제를 내게 된다면 족보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또 A 학생은 “교수가 모든 학생에게 기출 문제를 공유한다면 모두에게 공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족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3의 기관에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경상대 이준권(영어영문학과·15) 학생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족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제일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학교 측에서 학칙이나 기타 방침을 정해 모든 교수가 기출문제를 공개하게 하거나, 아예 시험문제 관리를 철저히 해 문제 유출을 막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한 박지연(수학과·17) 학생은 “교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며 “족보가 있더라도 자체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족보를 사고팔거나, 인맥을 이용해 족보를 구하는 모습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부적절한 족보 문화 해결에 대해 이정미 센터장은 “교수가 수업에서 학생의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과 사고를 유도하는 교수법을 활용하고, 학점 위주의 평가가 아닌 학생의 교육적 경험과 교육 과정, 그리고 학생의 핵심역량에 대해 평가한다면 족보는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학생은 족보에서 벗어나 좀 더 탐구적인 자세의 공부, 그리고 자체적인 의미의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건호 교수는 “학생 입장에서 생각하면 교수에게 관련 학생 모두에게 족보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학점 경쟁이 점점 과열되고 있는 대학 내에서 공정한 경쟁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족보를 놓고 벌어지는 공평성 논란은 교수와 학생, 모두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선할 의지를 가질 때만 해결될 수 있다. 부적절한 족보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은 양심적인 경쟁을 하고 교수는 족보 문제 해결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조희수 기자 heesoo9803@cbnu.ac.kr
박시현 기자 sihei@cbnu.ac.kr









조희수 & 박시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