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 우리는 – 학교생활
가장 먼저 우리 학교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1999년 당시, 우리 학교는 숫자로만 건물명이 정해졌다고 한다. 우리 학교 이미선(사학과卒·98) 선배는 “그 당시 건물번호는 건물이 지어진 순서대로 붙여졌는데 04동, 58동 식으로 불렀다”라고 말하며 당시를 추억했다. 당시 새내기들이 건물을 찾을 수 있던 방법은 학교 안내지 혹은 학교 신문에 소개된, 손으로 그린 학교 약도였다. 현재 우리 학교에는 학교 곳곳에 설치된 학교 안내 게시판이 있고, 휴대폰으로도 학교 전체 약도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각 신입생 단체 채팅방에 과대표들이 학교 약도 사진을 고화질로 올려줘 다들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수강 신청 방법을 알아보자. 1999년 당시, 인터넷이 막 전국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PC방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 수강 신청을 위해서는 도서관과 학교에 있는 컴퓨터를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중요했다. 이미선 선배는 “컴퓨터나 교내 강의 책자를 통해서 수업시간표를 확인한 후 인트라넷에 접속해 수강 신청을 했다”라고 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학교는 모바일과 온라인, 두 가지 서버로 제공되는 개신누리 사이트로 수강 신청을 한다. 우리 학교 구철현(응용생명공학부·18) 학생은 “수강 신청은 항상 PC방에서 하는데, 아무래도 한 학기 시간표를 짜는 일이다 보니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동네에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PC방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 학교 박지은(간호학과·19) 학생은 “1학년이다 보니 조교님이 대부분 짜주시는 편이라 교양 중에 바꾸고 싶은 것만 따로 수강 신청하는데, 아무래도 휴대폰이 손에 익숙하고 데이터 속도도 빨라 모바일 서버를 사용한다”라고 밝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술도 발전해 출석을 부르는 시스템도 변화했다. 1999년에는 아무리 수강생이 많아도 교수님이 일일이 한 명 한 명 호명했다면, 지금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출석 체크를 한다. 우리 학교 박지은 학생은 “이번에 듣고 있는 교양 교수님 중 한 분은 직접 출석 체크 링크를 만드셔서 그날의 수업 암호 입력 후 각자 이름과 학번을 적는 형태로 출석 체크를 했다”며 “아무래도 대형 강의는 인원이 많다 보니 출석 부르는데 10분이 넘게 걸리기 마련인데, 이런 출석 시스템을 통해 수업의 효율과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이 바뀐 것은 공강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1999년에는 놀 거리가 많지 않아 학교 벤치나 잔디밭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많았다. 또 교내 음주가 교칙에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강 시간에 잔디밭에 앉아 술을 마시는 학생도 있었다. 우리 학교 이미선 선배는 “당시에는 코인노래방과 이색카페 같은 놀 거리는 없었기 때문에 공강 시간에는 과 자료실에서 공부하거나 학교 주변 산책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반면 지금은 매우 다양한 놀 거리가 있다. 코인노래방과 PC방은 물론이고 룸카페, 만화카페, 고양이카페, 영화관까지 아무리 긴 ‘우주 공강(주로 대학교에서 너무 긴 공강 시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도 대학가 주변에 시간을 때울 곳이 많다. 구철현 학생은 “나는 PC방과 코인노래방을 자주 애용하는 편인데, 주변 사람 중에는 공강이 길면 학교 근처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또 박지은 학생은 “학교 주변 만화카페에 가서 만화를 보거나 보드게임 카페에 가서 게임을 하기도 하는데, SNS에 소개된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도 자주 간다”고 말했다.
그 시절 우리는 – 대학문화
그렇다면 그 시절 대학문화는 어땠을까? 1999년 3월 2일 발행된 제646호 충북대신문에 의하면 1999년 2월 8일부터 3월 1일까지 단과대별로 2박 3일 동안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를 진행했다. 학생회가 진행하는 새터는 학교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행사로 주로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이뤄졌다. 새터에서는 신입생 간의 동기의식 고취, 대학이란 이런 것, 선후배 간의 친화 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반면, 지금은 대학 입학 전인 2월에 단과대별로 학내에서 하루 동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주로 각 단과대 합동강의실에서 ▲성폭력예방교육 ▲장애인식개선교육 ▲MBTI(성격유형검사) ▲동아리 공연 ▲레크레이션 등을 진행한다.
우리 학교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개신대동제(이하 대동제)가 99년도에는 ‘잡은 손 굳게 잡고’라는 주제로 개최됐는데,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 다음 날인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됐다. 그 당시 축제 준비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1999년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김신일(심리학과卒·93) 선배는 “당시는 학생들이 직접 준비하는 게 많았다. 현수막 글씨도 직접 썼는데 한 과에 한두 명씩은 잘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 전체가 현수막으로 도배가 됐는데 학생회 복도, 또는 빈 공터마다 색색의 현수막 천이 내걸렸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당시 학교와는 ‘주막’ 문제로 많이 다퉜다. 과거 대학 축제는 ‘술’과 떼어놓기 어려웠는데 학교에서 주막을 못 하게 해 물리적인 충돌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요즘 대동제 준비는 주로 축제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이뤄지는데, 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심혈을 기우리며, 현수막 설치는 물론이고 부스나 무대 설치 등은 외주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진행한다. 또 현재의 대동제에서는 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대동제 기간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교내에서의 음주 행위는 전면 금지돼 있다.
1999년 대동제와 지금의 대동제는 프로그램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1999년도는 학생운동권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철폐를 기원하는 마라톤 ▲전통혼례 ▲통일맞이 견우직녀 한마당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반면, 현재의 대동제는 ▲보물찾기 ▲귀신의 집 ▲놀이기구 ▲먹거리존 ▲포토존 ▲휴식존 등 주로 오락과 흥미, 그리고 휴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진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대동제 모두 저녁 본무대는 학생들의 가요제로 구성되지만, 축하공연 가수에 차이가 있다. 1999년의 대동제 본무대는 ‘희망새’, ‘천리마’ 같은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축하 무대를 장식했지만, 올해의 대동제에서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중가수나 힙합가수들이 축하 무대를 꾸몄다.
그 시절 우리는 - 실생활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실생활은 어땠을까? 먼저 우리의 손에서 뗄 수 없는 ‘휴대전화’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현재 스마트폰 보급률 전 세계 1위 국가이다. 이를 증명하듯 우리는 손바닥 크기만 한 휴대전화에 우리의 모든 시간과 정보를 담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당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통신기기는 ‘삐삐’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선 호출 단말기였다. 1990년대 후반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삐삐는 1999년도부터 휴대폰에 밀려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당시 휴대전화는 말 그대로 휴대 ‘전화’였기에, 카메라 기능과 같은 부가 기능은 없었고, 문자와 전화 기능 외에 간단한 기본 서비스만 이용 가능했다.
통신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듯이, 영화나 음악을 즐기는 방법도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영화관을 찾는 것보다 넷플릭스(Netflix)나 왓챠 플레이 등의 구독형 서비스를 이용해 영화를 즐기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에는 주로 CD나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음악을 감상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멜론(Melon), 벅스(Bugs) 등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패션은 어떨까? 20년이 흐른 지금, 놀랍게도 우리는 90년대 패션을 ‘뉴트로(Newtro)’라는 이름으로 즐기고 있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의미한다. ‘아빠 재킷’으로 불릴 정도로 품이 넉넉한 오버사이즈 재킷, ‘배바지’라고 불렸던 하이웨스트 진, 한 쪽에 다리 두 개를 다 넣어도 될 정도로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 이외에도 배기팬츠, 크롭티, 뷔스티에, 링 귀걸이 등 90년대 당시 X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션 아이템들을 입은 젊은이들을 지금 길거리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함께한 순간 이젠 주말의 명화 됐지만’이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99학번들의 캠퍼스 라이프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 스크린이나 브라운관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추억이 됐다. 무려 20년의 세월을 앞선 그때의 이야기에 지금의 우리는 울고 웃기도 하고, 그때의 패션과 문화를 소비하며 살아보지도 못한 시대를 동경하기도 한다. 20년의 시간이 더 흐른 후, 그때의 우리는 또 어떤 방식으로 기록될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도 예쁜 명화로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은 선명하다.
조희수 기자
heesoo9803@cbnu.ac.kr
박채연 기자
patty990303@cbnu.ac.kr
정윤채 기자
sunwillris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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