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ㄱ 학생은 성적 장학금을 받을 생각으로 잔뜩 들떴다. ㄱ 학생의 학점은 4.25로, 한 과목을 제외하면 모두 A+를 받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받아 본 등록금 고지서에는 납부할 금액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우리 학교의 성적 장학금 중 제일 낮은 등급인 C급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는 최근 점점 더 심각해지는 학점 상향 평준화, 즉 ‘학점 인플레이션(이하 학점 인플레)’의 여파였다.
“대학생 10명 중 9명이 A.B 학점” 코로나19가 만든 ‘학점 인플레’
학점 인플레는 ‘학점’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대학에서 학점을 후하게 주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대학들은 절대평가를 도입하거나 재수강·삼수강과 같은 이른바 ‘학점 세탁’ 제도를 통해 학점 인플레를 적극적으로 권장해 왔다. 장기화된 취업난 속에서 학점이 취직을 위한 기본적인 충족 사항이 되자, 취업률을 무시할 수 없는 대학들이 앞다퉈 학점을 후하게 준 것이다.
이러한 학점 인플레 현상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더욱 심각해졌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1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대학 재학생의 10명 중 9명(87.5%)이 과목별 B 학점 이상을 취득했다. 이 수치는 지난 2019년보다 15.8% 포인트나 상승한 것으로, 특히 과목별 A 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은 33.7%에서 54.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오늘날 학점 인플레의 원인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로, 지난해 일부 대학에 등장한 선택적 패스제가 있다. 선택적 패스제는 학생들이 학점 성적을 급락 성적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선택적 패스제를 통해 학생들은 A∼D 학점으로 표기된 성적을 그대로 유지할지, 혹은 등급 표기 없이 패스로 성적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패스를 선택할 경우 해당 과목은 학점 평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특정 과목에서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 유리하다. 이는 비대면 원격수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평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들끓자, 성적을 받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두 번째로, 성적평가 방식의 변화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로 인해 평년 대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비대면으로 치러진 중간·기말시험에서는 집단 커닝 등 부정행위도 다수 적발됐다. 따라서 성적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와 불만은 여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성적평가 방식이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우리 학교를 포함한 여러 대학이 절대평가로 전환하거나 상대평가 방식을 유지하되 성적평가 기준을 완화했다. 이렇듯 기존의 성적평가 방식과 비교해 성적을 후하게 주는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평균 학점은 더욱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학생의 이탈 방지를 위한 측면도 있었다. 지난해 매일경제가 입수한 대학별 신입생 자퇴 현황에 따르면, 우리 학교는 신입생 2,955명 중 270명이 이탈하면서 지역 소재 국.공립대 34곳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 익명의 대학 강사는 “등록금을 돌려받지도 못하고, 학교 시설 이용도 불가능하고, MT 등 행사도 취소된 마당에 학생들을 잡아둘 유일한 방법은 학점이다. 대학 측에서 ‘학점을 후하게 주라’고 권고하는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깔려 있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학점 인플레는 비대면 수업으로 소속감이 약화된 학생들의 만족도 향상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학점 인플레 대유행 속, 우리 학교는?
지난해 1학기, 우리 학교는 대면 수업을 수차례 연기한 끝에 결국 전면 비대면 원격수업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성적평가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 학교 학사지원과 이민근 팀장은 “갑작스러운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수업이 어려워졌고, 부득이하게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대체해야 했다.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모두 혼란스러웠던 비대면 원격수업은 기존의 대면수업과 비교할 때 수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러 대학에서 성적평가 방식을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우리 학교도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지난해 1학기부터 성적평가 방식을 완화하게 됐다”라고 새로운 성적평가 방식의 배경을 밝혔다.
코로나19로 완화된 지난해 1학기의 성적평가 방식은 올해 1학기까지 유지되고 있다. 현재 우리 학교는 ▲Ⅰ유형 ▲Ⅱ유형 ▲절대평가로 강의를 구분해 Ⅰ유형은 A등급 인원을 50% 이하로 규정한 준상대평가, Ⅱ유형과 절대평가는 절대평가로 성적등급 비율을 조정한다. 이는 기존의 성적평가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전공.교양 과목인 성적평가Ⅰ 교과목의 A등급 인원을 전체 수강생의 30% 이하, A등급과 B등급의 합산 인원을 70% 이하로 규정했다. 그리고 A.B.C등급을 합친 인원은 해당 과목의 전체 수강생의 9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어서 인증평가.세미나.외국어.실기.실습 교과목 등이 해당된 성적평가Ⅱ 교과목은 A등급 인원을 35% 이하로 유지하도록 했다.
성적평가 방식이 상당히 완화된 만큼, 우리 학교도 학점 인플레의 영향을 피할 순 없었다.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의 ‘2021년 학점 인플레 최소대학 전국순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학교의 졸업생 3,240명 중 1,204명인 37.2%가 백분율 90점 이상을 기록했으며 평균 백분율 점수는 88.15였다. 백분율 점수는 ▲95점~100점 ▲90점~94점 ▲85점~89점 등 5점 급간의 구간을 나눈 것으로, 백분율 90점은 우리 학교와 같은 4.5점 만점 체계에서는 B+와 A에 위치한다. 즉, 지난해 우리 학교 졸업생 10명 중 4명이 B+이상의 졸업학점을 받은 것이다. 이는 지난 2019년의 백분율 점수 86.67에 비해 다소 상승한 수치다. 졸업학점은 4년 성적 평균인 까닭에 지난 1년간의 성적 상승 추이에는 소폭 반영됐지만, 학점 인플레의 급격한 추세를 볼 때 당장 올해 졸업생부터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처럼, 이제는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정론이다. 따라서 대학도 더이상 미봉책으로 버틸 수는 없다. 이민근 팀장은 “우리는 지난 20학년도 1학기부터 21학년도 1학기까지 벌써 세 번째의 ‘코로나 학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교육부의 원격수업 훈령도 제정됐고, 학내 구성원 모두 현 상황에 나름대로 적응했다. 따라서 언제까지나 전면 비대면 원격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고, 언제까지나 완화된 성적평가 방식을 부여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가 되면 성적평가 방식을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재학생부터 취준생까지, 학점 인플레에 ‘휘청’
그렇다면 학점 인플레 속 우리 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해부터 고학점 학생의 수가 기존보다 크게 늘면서 성적 장학금의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꾸준히 성적 장학금을 받았던 우리 학교 민주희(경영학부·19) 학생은 “지난해 완화된 성적평가 방식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 2019학년도 2학기에는 등록금 전액 감면을 받았지만, 코로나19 이후 2020학년도 2학기에는 부분적으로 등록금감면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점 인플레의 영향으로 높은 학점을 받은 학생이 많아져, 평점 하락이 이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느슨해진 성적평가 기준에 대해 허탈감이 드는 한편,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아도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 보니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는 악순환도 우려되고 있다. 우리 학교 김가희(산림학과·20) 학생은 “학점 인플레 현상으로 노력 대비 좋은 성적을 받는 사례를 보고 허탈감을 느꼈다”라고 전했고, 정은진(화학과·20) 학생은 “학점 인플레로 인해 어느 정도 꾸준한 참여도만 보이면 최저 성적이 보장되다 보니, 큰 성적 욕심 없이 어느 정도의 참여도만 보이고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또 ㄴ(정보통신공학부·20) 학생은 “지난해는 본가에서 비대면 원격수업만 들었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수업을 녹화해 미루는 등 점점 나태하게 생활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학점 인플레의 혜택을 누린 이른바 ‘코로나 학번’과 ‘비(非)코로나 학번’ 간의 차별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입대 등으로 휴학한 학생들은 추후 졸업 시점에 똑같은 코로나 학번으로 취급돼 불리한 부분이 있으리란 예상이다. 올해 군 휴학한 우리 학교 정성현(천문우주학과·20) 학생은 “학점 인플레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휴학한 학생들은 군 제대 후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극심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 입대한 우리 학교 김민규(러시아언어문화학과·19) 학생은 “이제는 높은 학점이 취업 시장의 이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외활동이나 자격증, 또는 직무능력 향상으로 경쟁력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취업 시장에서 블라인드 채용은 더욱 확대될 공산이 높다. 지난해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39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직무역량평가’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2.1%가 과거보다 직무역량평가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서류.면접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로는 ▲프로젝트 수행 경험(29.7%) ▲관련 인턴 경험(19.7%) ▲전공(16.2%) 등 실제 업무와 관련된 수행 경험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해 학생들의 학점이 눈에 띄게 상향되면서 올해부터는 기업들이 학점을 성실성이나 학업성취도 척도로 보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학점의 중요도도 낮아졌다. 지난해 취업정보업체 진학사캐치가 20대 취업준비생 557명에게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펙(복수 응답 가능)’을 묻자 ▲인턴 경험(66.7%) ▲출신 학교(44.2%) ▲자격증(40.8%) ▲전공(39.7%) ▲어학 성적(30.2%)에 비해 ▲학점(27.1%)은 후순위로 밀렸다. 졸업을 앞둔 우리 학교 박진현(국어국문학과·16) 학생은 “4년 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학점이 취업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 확실히 부담되긴 한다. 당장은 학점이 조금 더 높게 나오는 것이 좋지만, 노력의 가치는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2년째 이어진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학점 인플레는 학생들의 새로운 부담이 됐다. 하지만 노력 여부, 실력 정도와는 무관하게 책정된 학점은 거품일 뿐이다. 상아탑이란 칭호도 다 옛말이라지만, 진리.정의.개척을 교시로 하는 우리 학교가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대학의 역할은 학생 교육과 더불어 제대로 된 평가를 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고해 볼 때다.
양서영 기자
ysyoung@chungbuk.ac.kr








양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