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 스스로 학교를 떠나며 아래와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중략)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진정한 교육’에 대한 회의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획일적인 제도권 교육의 한계로 인해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제천의 간디학교나 전남의 한빛고등학교 등과 같이 중·고등학교 수준의 대안학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대학수준의 대안학교는 설립조차 드물어 국내에 있는 대안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그 중 기존 대학의 한계를 보안해 진정한 배움을 지향하고자 설립된 대안대학 중 한 곳인 ‘노마소이 풀뿌리 사회지기학교(이하 풀뿌리 사회지기학교)’를 지난달 26일 찾아갔다. 이날 열린 수업은 ‘공동체 탐방’이라는 제목의 수업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그 의미가 쇠퇴해진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고, 현재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 직접 찾아가보는 수업이다. 수업현장을 엿보니 학생 중심의 수업임이 분명했다. 학생과 교수라는 신분에 대한 차이 없이 동등하게 서로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부분 기존 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해주는 주입식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학생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게 한 후 스스로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학생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방식의 수업이 시행된다. 이번 수업이 첫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공동체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예정된 두 시간의 수업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진지한 태도로 그들의 수업을 이끌어갔다.
풀뿌리 사회지기학교가 기존의 대학과 다른 것은 수업 모습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기존의 대학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입학에서부터 다르다. 흔히 기존의 대학은 입학시험이나 성적에서 나타난 숫자나, 자료 중심으로 학생을 서열화하여 합격과 불합격을 나눈다. 이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만들고 점차 모집인원을 늘리고 있으나, 주관적인 평가기준 때문에 각종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달리 풀뿌리 사회지기학교에서는 입학을 위한 시험이 없다. 가르치는 이들과의 면접과 다양한 방식의 공개경연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으로 입학을 결정한다.
명칭도 다르다. 이곳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이 없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만 존재할 뿐이다. 배우는 이는 단순히 지식을 받기만 하는 기존의 수동적인 교육대상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배움을 실천하는 학생이라는 의미다. 가르치는 이 역시 배우는 이와 상하관계 없이 배우는 이를 보다 올바른 교육으로 함께 이끌어가는 존재다. 가르치는 이는 각 분야의 전문가로, 배우는 이가 매 학기 듣고 싶은 수업을 정해 직접 가르치는 이를 찾아간다.
이곳에서 행해지는 수업방식이 능동적인 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인지 풀뿌리 사회지기학교에서는 강의실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체화당’이라는 카페에서 주로 토론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고정된 곳은 아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현장 어느 곳이든 그곳이 강의실인 셈이다. 사실 체화당에서 강의를 하고 이에 따른 토론을 하는 교정학습보다는 직접 현장에 참여하고 경험을 해보는 수업이 많다고 한다.
풀뿌리 사회지기학교가 일반 대학교들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바로 교육과정이다. 배우는 이는 ‘터닦기’와 ‘길찾기’, ‘사회지기’ 과정을 거쳐 졸업하게 된다. 터닦기와 길찾기는 자신의 적성과 관심분야에 맞는 전공영역과 방향을 찾는 과정이고, 사회지기 과정에서는 ‘정치지기’, ‘문화지기’, ‘경제경영지기’의 전공에 따른 체험 위주의 수업이 주로 이루어진다. 한 학기는 3개월 가량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한 해에 4학기를 개설한다. 방학이 학기의 대부분을 차지한 기존 대학의 교육과정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이곳에서는 기존의 학생을 평가하는 제도인 학점이나 학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점이나 학위는 학생을 소위 일렬 세우기식으로 평가해 진정한 배움에서 소외시킨다는 이유다. 학점 대신에 하나의 수업을 마칠 때마다 가르치는 이가 배우는 이에게 쓰는 평가서가 있고, 배우는 이가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모은 포트폴리오가 있다. 과목명과 학점만이 나오는 성적표가 아니라 배우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성적표다. 또한 기존의 학위나 추천서 대신 배우는 이의 생각이나 자세, 발전가능성, 개인의 특성과 자질의 내용이 담긴 추천서를 발급해준다.
수업이 끝난 후, 19살의 조민강 씨는 자신을 학생회장이라 쑥스럽게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취업이나 스펙을 위한 기존의 대학보다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말 자신이 흥미 있는 것을 배우는 이 곳이 바로 대학(大學)다운 대학 아닐까요?”
남소연 기자 suwon1995@cbnu.ac.kr








남소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