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개봉한 <내 머릿속에 지우개>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 수진(손예진)과 건축가 철수(정우성)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멜로영화다. 당시 ‘젊은 치매’라는 신선한 소재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영화가 선보인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치매는 노인을 넘어 청장년 세대도 위협하는 질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나친 음주, 흡연, 전자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청장년층에서도 치매환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우리나라 치매인구가 64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보고 있다. 이중 청장년층 치매라고 불리는 ‘초로기 치매’환자 수는 8,000여 명에 이르고, 최근에는 20대 환자도 확인되고 있다. 더 이상 치매가 노인성 질환이 아닌 것이다.
2024년 치매환자 100만여 명에 이를 것
치매는 ‘정신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병이다.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부족해 발생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로선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다양한 약품이 출시됐지만 이는 치매속도를 늦추는 것일 뿐 완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충청북도 광역치매센터 신성미 홍보.지원팀장은 “치매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진행만 늦출 수 있는 병”이라며 “치료보다도 생애주기별로 치매예방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인식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우리나라의 치매환자 수가 64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4년에는 치매환자가 10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노인 10명중 1명은 치매환자인 것으로 이미 노년세대에서는 치매가 일상화 되고 있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노인들은 치매에 대해 하소연했다.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중앙공원에서 만난 박내홍(청주시 상당구·75) 씨는 “주변에서 치매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증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며 “만일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선영석(청주시 상당구·75) 씨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요양센터에서 지낼 수 있지만 대다수의 노인들은 그럴만한 형편이 못될 것”이라며 “가족들의 부양의지도 중요하지만 정부에서도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실제로 치매가족의 부양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치매인구가 급증하면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6일 충청북도 영동군에서는 80대 치매환자가 하천에서 숨졌고, 충주시에서는 70대 노인이 요양병원 보일러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또한, 잘못된 사회적인 인식이 치매를 심각한 상황으로 이끈다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실제로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본인이 치매임을 인식하는데 평균 2년의 시간이 걸렸고, 전체 치매환자 중 30%는 아직 검사도 못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청북도 광역치매센터 신성미 홍보.지원팀장은 “보통 치매를 정신병자나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본인이 치매에 걸렸어도 인식이 좋지 않다보니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껴 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사회적인 인식개선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치매 100만 시대를 앞두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치매대책’
치매는 중증으로 넘어가면 개인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만큼 부양할 가족의 부담과 비용이 눈덩이처럼 쌓이게 된다.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치매환자 돌보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연 10조 3,000억 원인 것으로 집게됐다. 우리나라 복지예산의 약 10분 1의 수준인 것이다.
충북보건과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지훈 교수는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치매환자도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결국에는 세금을 더 걷는 방법 외에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분담과 예산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분담이 중요한 시기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치매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중앙치매센터를 중심으로 각 시도마다 광역치매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 김은경 주무관은 “중앙치매센터와 광역치매센터를 통해 치매에 대한 업무, 홍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노인을 돌보는 치매 파트너 사업을 이어나가 잠재적인 환자를 찾아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광역치매센터를 통해 보건복지부에서는 치매관리체계를 구축해 치료.예방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하지만 취재결과, 각 광역치매센터의 예산, 인력, 교육 등이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충청북도의 경우, 65세 이상의 치매환자 수는 2015년 2월말 기준으로 총 8,551명에 이르지만, 예방.치료를 담당하는 충청북도 광역치매센터의 관리 인력은 단 9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운 것이다. 김지훈 교수는 “중앙정부만으로는 사실상 모든 지역의 치매를 관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시군구 중심으로 생활 밀착형으로 치매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입장이지만, 문제는 지자체의 치매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시군구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치매센터’가 서울특별시와 일부 광역시 중심으로 설치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한 도 단위의 경우 ‘지역치매센터’설치에 엄두를 못 내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복지건강본부를 중심으로 치매전담팀을 구성해 각 25개구의 지역치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복지건강본부 김형숙 팀장은 “서울시는 고령인구가 많다 보니 광역치매센터로는 관리가 힘들어 각 구마다 지역치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간호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서 치매환자를 검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반면 청주시의 경우는 각 구마다 지역치매센터가 설치되지 않았고, 치매를 관리하는 담당관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 단위로 갈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충청북도 내 5개 군이 치매환자 수용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이 지역의 치매환자들은 방치되고 있다.
더 이상 노인성 질환이 아닌 ‘치매’
최근 들어 65세 이상의 노년이 아닌 청장년층에서도 치매질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초로기 치매’라고 한다. 초로기 치매는 음주.흡연.스트레스 등 다양한 환경 요인이 발병의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로기 치매가 오면 일상생활이 둔해진다. 이런 증상이 오면 노년층은 치매로 의심하기 쉽지만, 청장년층은 건망증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시기를 놓쳐 중증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치매검진 도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치매검진 프로그램이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특히 청년층의 경우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이에 대한 치매검진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현 치매검진 도구는 노년층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실상 50세 이하의 치매검진은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검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취재결과에서도, 대다수의 청장년층은 치매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학교 김나영(경제학과·14) 학생은 “치매가 청년층보다는 노인성 질환이라는 인식이 많다보니 모르는 것이 많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홍보 및 관리가 제대로 이뤄져야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현(정보통신공학부·15) 학생은 “평소에 치매라는 병을 잘 모르고 있었다”며 “대다수 젊은이들은 치매가 멀게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청장년층이 치매에 걸리면 이들에 대한 복지대책이 전무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만약 65세 이상의 노인이 치매에 걸리면 치매상담센터, 장기요양보험, 재가복지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청장년층의 경우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신청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기자는 치매보호자를 가정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걸어 장기요양보험의 신청을 요청했다. 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장기요양보험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인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청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상 청장년층의 치매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대가 치매발병 여부 결정 시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대가 치매발병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는 20대부터 음주, 흡연, 각종 전자기기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신성미 홍보.지원팀장은 “청년층의 경우는 본인이 치매하고 멀다는 인식이 많다 보니 음주, 흡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치매는 뇌에 독성물질이 쌓이기 때문에 걸리는 것이므로 청년층부터 관리를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3잔 이상의 폭음을 하면 뇌손상으로 인해 치매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식품의약안전처가 만 15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음주량을 조사한 결과, 20대의 86.7%가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음주량을 넘긴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문가들은 청년층 사이에서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불리는 ‘블랙아웃’ 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이는 ‘블랙아웃’ 현상 자체가 알코올이 지나치게 뇌혈관을 자극해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뇌에 악영향을 주면 결국 ‘경도인지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미 홍보.지원팀장은 “흡연으로 인해 뇌에 혈관이 막히면 자연스레 혈관성 치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잦은 폭음의 경우 소뇌를 위축시켜 기억상실의 증상을 일으켜 치매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청년세대의 스마트폰 중독이 치매발병의 새로운 원인으로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현재 20대의 스마트폰의 소유비율은 92%에 이르고, 13.8%가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에 속한 상황이다. 신성미 홍보.지원팀장은 “전자기기 사용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머리 쓰는 일이 사라져 치매에 걸리기 쉽다”며 “치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대학생 치매파트너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대학생 치매파트너사업같이 노년이 아닌 청년층대상으로도 치매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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