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무렵, 매일같이 우리 학교 중문의 화려한 밤은 시작된다. ‘OO포차’, ‘OO와 함께하는 노래방’.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이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다. 더 많은 손님을 모으기 위해 가게마다 있는 입간판은 하나 같이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최근에는 홍보효과를 높이기 위한 불법 입간판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업주나 관할구청에서는 입간판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이다. 방치되는 입간판으로 인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모습을 취재해 봤다.
화려한 간판 속에 숨겨진 이면
우리 학교 근처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중문.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형형색색의 입간판들이 저마다 가게 홍보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 건물 전체가 LED 간판으로 빼곡히 채워진 경우도 있었다. 기자가 취재 다닌 30분. 그 짧은 사이에도 방치된 입간판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겉으로는 멀쩡한 입간판이지만 그 속의 버팀대와 고정 못은 녹슬어 있었다. 아예 건물 벽에 녹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그대로 보일 정도였다. 장갑 낀 손으로 살짝 만져도 시커먼 주황색 녹이 묻었다. 일부 입간판은 철사로 묶어서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강풍이 불면 금방 지나가는 행인을 덮칠 우려가 있어보였다.
일부 업주들은 아예 옥외광고물 법안을 무시하고 불법 입간판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행 우리나라 옥외광고물 법안에는 지면과 3M 미만에는 돌출형 간판이 설치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 중문 업주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학교 박수아(주거환경학과.13) 학생은 “우리 학교 번화가에 있는 간판은 눈에 잘 들어오지만 오히려 번잡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입간판이 많다 보니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문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익명의 상인은 “생각보다 입간판 제작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게보다 더 큰 입간판을 세우려고 한다”며 “상인들끼리도 입간판을 바깥으로 빼야 광고효과도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사실 업주의 입장으로선 다른 간판보다 더 바깥으로 입간판이 나와야 홍보효과가 좋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 입간판 설치는 자칫 행인에게 인명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실상 입간판이 허공 위에 그대로 방치 있는 실정이다.
비가 올 때는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판마다 이어진 전선은 여기저기가 벗겨져 지나가는 행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감전을 방지하기 위한 플라스틱 덮개가 씌워진 곳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선과 덮개를 고정하는 핀은 빠진 지 오래고, 일부는 1.5L 생수통 윗부분을 잘라서 급한 대로 빗물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서원구 건설교통과 김용성 팀장은 “아무래도 중문만 아니라 산남동, 가경동과 같은 다른 지역도 관할하다 보니, 중문에만 불법 입간판 단속을 집중할 수는 없다”며 “결국 중문에 있는 입간판을 주기적으로 단속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남들도 이렇게 하는데요?”
지난 2008년 정부는 전국적으로 입간판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벌였다. 이때 집계된 입간판 수는 434만 개, 그중 청주시에 있는 입간판 수가 10만 3,000여 개에 달한다. 이중 절반 이 불법 입간판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이 조사가 입간판 수를 확인할 수 있는 최신자료다. 8년이 지난 지금에는 더 많은 불법 입간판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기자가 입간판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다수의 업주들은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고 항변한다. 사실 업주 입장으로는 입간판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입간판 홍보에 따라 가게 매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입간판을 설치.제작하는 청주 기획 김진덕 대표는 “대부분 술집이나 학원이 입간판 제작 문의를 많이 한다”며 “가격대도 10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보니 업주입장으로서는 입간판으로 하는 홍보가 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문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최병민(청주시.37) 씨는 “아무래도 술집의 경우는 간판이 매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며 “디자인, 글씨체, 폰트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손님이 가게 디자인에 따라 찾아오기 때문에 입간판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번화가를 자주 찾는다는 김은수(수학과.15) 학생도 “수업 끝나고 친구와 밥 먹으러 갈 때 가장 눈에 띄는 간판이 있는 음식점을 자주 간다”며 “간판 디자인이 좋을수록 손님도 더욱 많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매출을 올리려는 욕심에 일부 업주들은 불법 입간판에 손을 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학교 건축공학과 김기수 교수는 “실제 연구로도 입간판의 색깔, 모양, 조명에 따라 매출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업주들이 불법적으로 입간판을 개조하느냐에 따라 가게 수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근본적인 불법 입간판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입간판에 대한 마땅한 규제책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옥외 광고물 법안 위반’이라는 딱지로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는 것이 있지만, 실제로 업주에게 과태료를 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계도기간을 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실정이다. 김용성 팀장은 “충북대 번화가에는 대다수가 생계형 업주이기 때문에 구청차원으로 함부로 과태료를 무는 것이 쉽지 않다”며 “대부분 업주에게 계도기간을 주는 식으로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도기간을 줌에도 일부 업주들은 불법 입간판을 철거하지 않고 운영한다”고 전했다.
올바른 간판개선사업의 필요성
사실 청주시도 손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는 ‘옥외광고물 종합관리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청주시내 번화가를 중심으로 간판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에는 '함께 꽃 피우는 청주의 지역문화'라는 슬로건과 함께 표현가이드라인(모양, 색채, 조명)과 관리가이드라인(광고물 관리 시범구역, 불법 입간판 정비 방안)이 제정됐다. 이외에도 ‘아름다운 간판상’을 제정하고 모범적인 입간판을 둔 업주에게는 매년 상을 주고 있다.
청주시 광고물디자인팀 이승구 팀장은 “최근 특성화 거리 조성을 일환으로 2012년부터 육거리 시장, 한복문화의 거리에 간판개선사업을 진행했다”며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광고물심의위원회를 두고 매년마다 모범적인 업주에게 ‘아름다운 간판상’을 수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판개선사업을 통한 불법 입간판도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청주시에서는 1억 3,100만 원을 지원받아 남문로 한복문화의 거리일대에 간판개선사업을 벌였다. 기존에 간판만 정리하는 일반적인 간판개선사업과는 달리, 청주시는 정체성 있는 거리를 만들기 위한 디자인의 변화를 시도했다. 주로 한복에서 볼 수 있는 오방색을 소재로 하는 간판 디자인이 이루어졌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모범사례로 인정받아 부천시, 용인시, 고양시 공무원이 직접 방문하고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우리 학교 번화가의 입간판 개선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옥외광고물 종합관리 기본계획’의 실효성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다. 이는 표현가이드라인과 관리가이드라인의 구성이 지나치게 행정기관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기수 교수는 “시.군.구를 중심으로 간판개선사업을 하기보다는 업주가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인번영회 차원으로 자치규약을 만드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간판개선사업에 대한 업주들의 인식 향상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기수 교수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서울시 인사동을 꼽았다. 인사동의 경우, 상인번영회의 주도로 간판개선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 사이에서도 갈등이 크게 줄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한 간판개선사업을 추진한 인사동 상인번영회는 오늘날 외국인도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김기수 교수는 “하지만 무조건적인 간판개선사업은 좋지는 않다”며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선으로 이뤄져야지, 자칫 간판 디자인 획일화될 우려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승구 팀장도 “시청.구청차원으로 간판개선사업이 진행될 때는 최우선적으로 사유재산을 침범하지 않는 쪽으로 이뤄진다”며 “무엇보다 업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까지 충북대를 중심으로 하는 간판개선사업 계획은 없다”며 “향후 단계적으로 관련 예산이 책정되면 그때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호 기자
preference@cbnu.ac.kr








김선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