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 100만 명을 향해 가는 우리 사회. 흔히 고시의 메카로 불리는 노량진 학원가는 취업을 향한 이들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최근 노량진 고시촌에서는 다소 낯선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노량진 학원가 식당에서 근무하는 최모 씨는 “요새 들어 교복 입은 학생들이 한 손에 공무원 시험 책을 끼고 식사를 해결하고 간다”며 “앳되보이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공딩’, 공무원 시험과 고등학생의 합성어로 최근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대변하는 신조어이다. 대입 학원 대신 공무원 학원에 다니는 그들의 발걸음을 쫓아가 본다.
학업이 아닌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우리나라 정부는 올해 국가직 공무원에 대해 27년 만에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은 22만 2,650명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 응시했다. 이는 취준생의 34.9%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그만큼 공무원 시험에 대한 인기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고등학생의 비중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인사혁신처에서 실시한 연령별 9급 공무원 접수현황에 의하면 18~19세 응시자는 2010년 642명에서 지난해 2,153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18~20세 9급 공무원 합격자 또한 2014년 112명에서 지난해 179명으로 60%가량 증가했다. 정부는 2013년부터 9급 공무원 시험과목에 수학, 사회, 과학 등을 선택과목으로 채택했다. 공무원 시험의 열풍은 이러한 정부 정책에 부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공무원 시험에 대한 고등학생의 열기를 몸소 체험하고자 기자는 노량진 학원가를 찾아가 고시생으로 위장 취재에 나섰다. 상담을 받고자 공무원 학원 '아모르이그잼'에 방문했으나 로비는 상담을 받기위해 방문한 고시생들로 붐볐으며 기다림 끝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자는 고등학생들이 학원의 자습 혹은 수업의 분위기를 흐릴까 걱정이 된다는 식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그는 "방학이라 그런지 확실히 고등학생들이 많이 학원을 다닌다”며 “상담건수도 지난달 대비 약 30%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고등학생 수강생의 40%가 학원에서 상위권의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며 “규칙적 생활이 몸에 익숙해 그런지 시험 준비에 더 열심이다”라고 말했다. 9급 공무원 시험 온라인 강의 사이트인 '에듀월'에 따르면 수강생 중 고등학생의 비율이 2013년 5.3%에서 2014년 25.3%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좁아지는 청년들의 ‘직업 문’
현재 우리 사회는 극심한 청년 취업난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2%로 2000년대 들어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다. 게다가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비정규직의 33%에 해당한다. ‘공딩 현상’에 있어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취업 현실에 주목했다. 그는 "장기간 이어지는 취업난과 신입사원들에게까지 희망퇴직 강요 사태들이 10대에게까지 심각한 현실문제로 다가온 것"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청년실업이 국가적인 문제로 부각되면서 2012년 이래로 정부는 국가 공무원 채용인원을 늘렸다. 일부 시각에서는 정부가 청년 취업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며 비난했다. 예산 확충과 같은 좀 더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선한승 박사는 45세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의 줄임말인 사오정, 오륙도나 20대의 희망퇴직 등 최근 벌어지는 기업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천민자본주의적 사고는 민간기업의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이런 기업문화에 염증을 느낀 일반 서민들은 좌절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직장인을 위한 소셜네트워크 사이트 블라인드가 지난해 직장인 6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7%가 "올해 희망퇴직 시행 과정에서 회사가 퇴직을 압박하는 것을 보거나 실제 본인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방식에 있어서도 다소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를 보인다. ▲희망퇴직 거부 시 인사 발령, 정리해고 등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압박(32.8%) ▲희망퇴직 대상자로 정해졌다는 통보(29.4%) ▲부서별 인원 할당으로 반드시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는 압박(12.5%) ▲지속적인 면담, 망신주기, 폭언 등 심리적 모욕감(8.1%) ▲하던 업무 박탈, 다른 직원들과 물리적 격리(8.1%) 등 각종 불합리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대한민국 조기열풍 이제는 취업까지?
미래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고등학생이 취업현실에 부딪혀 꿈을 향한 날개가 접히는 사회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 학교 교육학과 서범종 교수는 "고등학교 과정 중 모든 활동의 초점을 공무원 시험에만 맞춘다면 문제가 있지만 학교 생활과 적절히 병행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열심히 준비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길 바라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부합하는지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며 조언을 남겼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5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평생직장(56.9%) ▲연금 등 노후보장(26.7%)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5.1%)라는 결과가 나왔다. 직업선택에 있어 자신의 적성과 흥미보다 현실적 문제에 집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홀랜드 진로상담연구소 안창규 소장은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복한 인생에 다다르는 길”이라며 “취업, 사회적 인식, 명예만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현재 획일화된 교육제도로 인해 학생들이 자기 진로에 맞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며 “어린 나이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걱정만 늘어 놓고 응답하지 않는 사회
치열한 취업난은 구직 활동을 아예 단념해버린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족을 양성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우리 나라 대졸자 중 니트족 비율은 24.2%로 OECD 국가 중 3번째에 해당된다. 대학을 가도 실업자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선한승 박사는 "취업 현실을 직시한 고등학생들이 좀 더 일찍 구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택한 것"이라며 “단지 여러 선택지 중 공무원 시험이라는 하나의 수단을 통해 이뤄진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과 국가가 자신들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버린 학생들이 자구책을 스스로 마련했다”며 “공딩들에 대한 걱정은 그만하고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국가 혹은 대학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적극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우리 사회의 청년 세대를 흔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불렀다. 갈수록 더 많은 것을 포기하길 요구하는 사회로 인해 N포 세대가 되어버린 청소년들. 이제는 이들의 행보에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때가 아닐까.
이은별 기자
silverstar@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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