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신문방송사 충북대신문 The Chungbuk Times 교육방송국
전체기사종합취업대학사회광장사람특집문화동영상뉴스포토&만평학술현상공모전문학
최종편집 : 2026.09.07 월 19:58
사회
사회 섹션
확대축소프린트
 최송희
어제 같은 2년, 세월호를 되돌아보다
제 906 호    발행일 : 2016.05.02 

2014년 4월 16일 9시경 김내근(안산시 단원구.47) 씨는 일을 하던 중 전화로 딸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딸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소식을 접한 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봤다. 하지만 그의 딸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이 날 침몰한 배에는 단원고 학생과 일반인을 포함한 476명이 타고 있었다. 침몰한 배는 세월호이며 구조된 승객은 172명이다. 295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나머지 9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지난달 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였고 약 1만 5천 명이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는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으며 그 다음날에는 약 3천명이 찾아 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23일과 24일 안산 화랑유원지(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곳)와 단원고를 찾아갔다.

1.jpg


유가족 대기실을 지키는 이유

  지난달 23일 오후 3시쯤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이하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입구에 도착했다. 유원지에 분향소가 위치해 있어서인지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분향소를 많이 찾았다. 가족 외에도 연인, 친구와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고 저녁 시간까지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날 분향소를 찾은 연세대 경제학과에 재학중인 익명을 요청한 한 학생은 “시험공부를 하는 중에 뉴스를 보고 세월호 사고 장면을 봤다”며 “구조되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기력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변에 있는 친한 사람들이 세월호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화랑유원지 입구에서 쭉 가면 정부합동분향소가 있고 양 옆으로 컨테이너 건물들이 늘어섰다. 컨테이너 건물에는 경찰과 구급대원이 상주하고 있고 행정지원실과 유가족 대기실이 있다. 먼저 분향소에 들린 뒤 유가족 대기실로 찾아갔다. 사실 이렇게 찾아오기 전까지 유가족 대기실이 있는 줄 몰랐다. 유가족 대기실에는 고 김민지 양의 아버지인 김내근 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컨테이너 두 개를 이어 놓은 대기실에는 적막함이 가득했고 그는 연신 담배를 피우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김내근 씨는 1주일 내내 대기실을 지키고 있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분향소를 많이 찾을까 궁금했다. 그는 “지난달 15일에 나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사람들이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평일에는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20~30명 정도 평균적으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왜 매일 유가족 대기실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김내근 씨는 “아직 해결된 것이 없다”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정부에서 아직까지도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구체적인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며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그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김내근 씨는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사고가 발생하고 배가 가라앉기 전까지 2시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구조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의도적인 사고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정부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혀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국정원과 세월호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하는 등 여러 의혹과 증거가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성주 변호사는 “정확한 진상 조사를 위해서는 침몰된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세월호는 6천 톤에 이르는 거대한 배”라며 “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어 인양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절단하라는 의견이 있지만 조사 대상이기 때문에 온전한 상태로 보존해 인양해야 한다”고 말하며 “아직까지 확실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이 연장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정확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내근 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유가족 대기실에는 세월호 희생 학생의 부모들이 반별로 밤샘 당직을 서고 있다. 고 임세희 양의 아버지 임종호(안산시 단원구.45) 씨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복직하지 않고 있다. 그는 시민.종교 간담회를 다니며 진상 조사를 위한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 현재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생업을 포기한 부모는 70여명 가량 된다. 김내근 씨도 그 중 하나로 그는 의류업계에 종사했었다. 생업을 포기한 그는 현재 대출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8억이라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8억 원이라는 보상금에 대해 인터넷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시체 장사’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8억 원의 보상금은 여행자 보험 1억 원, 각종 기부 단체에서 받은 성금 3억 원, 재해재난 시 받는 정부 위로금 3억 원, 해양수산부에서 준 1억 원이 합쳐진 금액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도 명백한 사고이므로 보상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내근 씨는 “정부에서 주는 위로금은 30년 전 도시 근로자의 임금 기준”이라며 “하지만 위로금을 받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보상금도 문제였지만 유가족들이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생활에 어려움을 줬다. 익명을 요구한 ‘정인이 아빠’는 “사고 후 보건소에서 가족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하기 위해 왔었지만 경황이 없어 치료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현재는 치료를 제공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고가 발생하고 많은 시간이 흘러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데 끝까지 세월호를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유품들

  다음날 아침 기자는 화랑유원지를 다시 찾았다. 그 전날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품을 볼 수 있다는 허락을 받고 직접 유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재 유품은 유가족 대기실 건너편 1개의 컨테이너 박스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 올해 1월 21월에 팽목항에서 가져온 이 유품들은 세월호 사고 당시 수습된 희생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유품 수습은 지난 2014년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됐다. 사진작가들의 도움으로 세척 전 유품을 상하좌우로 모두 사진으로 남겼다. 사고 당시 유가족들이 사고 처리 때문에 유품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진도군청이 유품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 때 찾아가지 않은 유품 및 유류품 1,159점이 정부합동분향소로 오게 된 것이다. 원래 1년이 지난 유품들은 관내 소속으로 돼 진도군청에서는 유품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3개월간의 실랑이 끝에 유가족이 소유할 수 있게 됬다. 지난달 1일 416기억저장소가 주관한 세탁 행사에서 진도에서 정부합동분향소로 올라온 1,159점 중 209점의 유품이 세탁됐다. 4.16 가족협의회 분과장 정성욱 씨는 “2014년 7월 달에 유품을 찾을 때는 배에 뻘이 쌓이기 시작해 뻘을 빨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이 과정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많은 유품이 나왔는데 핸드폰과 카메라부터 시작해서 캐리어 등이 나왔고 신발은 대부분 한 짝씩 발견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세척된 운동화 등의 유품에도 흙물이 들어있었다. 남은 유품들은 계속해서 세탁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유가족들은 정부합동분향소에 올라온 유품을 잘 찾아갔을지 궁금했다. 이에 정성욱 씨는 “세탁 과정에서 희생자들의 유품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웠다”고 했다. 유품들은 현재 관리번호, 접수일자, 품명, 특징, 수량 등을 기록한 박스에 담겨져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어 이를 찾아간 유가족들은 10명뿐이다.

2.jpg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기억교실

  화랑유원지에서 4.16 가족협의회의 도움으로 희생자들의 유품을 살펴본 후 고잔동에 있는 단원고로 향했다. 사고가 난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찾아오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칠판에는 희생 학생들을 기억하며 써놓은  여러 문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물건들이나 문구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있어 현재 교실을 찾아오는 추모객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4.16가족협의회 분과장 정성욱 씨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추모객 중 아이들을 생각하며 칠판에 적어 놓은 문구를 지우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다.
  요즘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억교실’은 존치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이 재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달라며 ‘기억교실’을 없애자고 주장해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부모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임종호 씨는 “기억교실이 계속 있어도 바뀐 것이 없고 기억하고 싶은 장소가 아니지만 존치돼야 아이들을 기억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달 9일 ‘기억교실’ 존치 문제를 비롯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육 정상화 협약이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단원고등학교 교육 정상화 협약은 3월 8일 존치교실 관련 3차 협의회에서 만든 '제안문'을 토대로 작성될 예정인데 ‘기억교실’ 내 물품 등을 안산교육지원청 강당에 원형 그대로 임시 이전하고 단원고 앞에 교육원이 건립되면 영구 보존하는 방향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2학년이었던 아이들은 명예 3학년이 됐고 아이들이 쓰던 10개의 교실은 현재 ‘기억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각 교실에는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해 놓아둔 꽃, 과자, 음료수, 사진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목록보기
최근기사
D등급에서 9월 투표까지, 충북대·교통대 통...
학생들의 선의 노린 포교 수법, 개인정보 제...
<양심의 빈자리> 학내 공용공간, 잘 사용하...
고물가 시대, 학교 주변에서 찾은 가성비 밥...
원청교섭 나선 정부기관, 노란봉투법 현실은....
사회 More
원청교섭 나선 정부기관, 노란봉투법 현실은...?
구사일생한 홈플러스, 현장은 ‘반쪽 정상화’
2026년 되찾은 노동절, 2026년 되찾은 노동절,
늘어나는 불법 온라인 도박, 청소년이 위험하다
돌보는 사람들의 하루, 충북재활원 사회복지사를 만나다
연애도 직장도, 사람 대신 AI와 고민 상담하는 청년들
현도면 재활용선별센터, 절차 논란 속 주민 반발 지속
<현장르포> 국회를 향한 조리실무사의 외침, 학교비정규직...
그땐 몰랐던, 급식 노동자 이야기
부당해고 판정에도 움직이지 않는 KBS
전체기사 종합
취업
대학
사회
광장
사람
특집
문화
동영상뉴스
포토&만평
학술
현상공모전
문학
동영상뉴스
수습기자모집
PDF자료실
지난호보기
신문사 소개 기사제보 독자참여 개인정보 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

28644 충북 청주시 서원구 충대로1,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발행인 : 직무대리 유재수 | 주간 : 이장원 | 부주간 : 신꽃비)

행정실 : 043-261-2934    충북대신문 : 043-261-2936    The Chungbuk Times : 043-261-2935    교육방송국 : 043-261-2953

Copyright ⓒ 2008 충북대학교 신문방송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