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 강간, 아동학대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연일 들끓고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악질의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격언으로 잠재우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해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입장과 범죄자의 인권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대립하며 가치판단적 요소에서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찬반 논란 휩싸인 흉악범 얼굴공개
지난달 7일 검거된 안산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얼굴이 공개되면서 범죄자 인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후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지난달 17일 새벽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한 상가 2층 공용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용의자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흉악범 인권에 대한 문제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흉악범 얼굴공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라고 주장한다. 지난 2009년 검거된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경우 한 신문사에 의해 언론에 얼굴이 공개된 사례가 있다. 당시 흉악범에 대한 얼굴공개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시기이다 보니,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공익보호, 범죄예방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흉악범 얼굴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권 침해 논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정민(청주시 흥덕구.33) 씨는 “상대적으로 죄질이 나쁜 범죄자의 경우, 범죄의 대상이 된 희생자들에 대한 심각하고 모욕적인 인권 유린행태를 보여 왔기 때문에 자신의 인권이 보장되길 기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며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반면 흉악범 얼굴공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달랐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다기에는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는 것이다. 김명희(경기도 고양시.41) 씨는 “흉악범의 경우 이미 얼굴을 제외한 신상이 거의 다 공개돼있기 때문에 이미 공익적 측면에서의 알권리는 충분히 충족된다고 생각한다”며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범죄자가 누군지 알고 싶은 호기심 충족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며 복수심 혹은 혐오심에 의한 우발적 사고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흉악범 얼굴 공개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가장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피의자에 대해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기고 얼굴을 공개한다면, 판결을 받기 전부터 흉악범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고 이후 변호사 선임 등이 어려워 질 수 있기 때문에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찬성 측은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증거가 분명하고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한 상태라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찰과 언론이 얼굴을 공개했던 흉악범들은 대부분 범행을 자백한 상태였고 증거가 분명했다는 것이 찬성 측의 주장이다.
흉악범 얼굴공개, 기준은 있을까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검거된 이후 얼굴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 2010년 3월, 여론이 민감해지자 국회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특강법 제 8조 제 1항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를 모두 충족하는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의 경우 수사기관은 얼굴, 성명, 나이 등 신상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특강법 개정 이후 경찰은 김수철, 오원춘, 박춘풍, 조성호 등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특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해서 무조건 얼굴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현장을 담당하는 경찰서의 서장을 위원장으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열리고 그 안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회에서는 범행수법의 잔혹성, 범죄예방 가능성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안산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조성호의 경우 ‘범행수법이 잔혹하고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됐다’는 위원회의 결정이 있었고, 이에 따라 얼굴이 공개됐다. 반면 7살 소년을 학대해 숨지게 한 친부와 계모의 신상에 대해서는 학대당해 숨진 소년의 누나를 보호할 필요가 있어 친부와 계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에서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신상 공개 여부가 지나치게 위원회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결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가 공개여부를 결정하다보니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달 9일 “아직까지 신상 공개 사례가 많지 않아 다소 혼선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흉악범 신상 공개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국 사례 벤치마킹, 적용 어려운 부분 많아
흉악범 신상 공개에 대한 새로운 매뉴얼 수립에 앞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흉악범 신상공개를 시작한 나라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김승기(청주시 흥덕구.29) 씨는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개인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인 만큼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국민의 관심이 높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난 1월 세 살짜리 딸을 학대해 사망하게 만든 친모의 얼굴과 신상을 그대로 공개한 바 있으며 미국에서는 친조카를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살인범의 얼굴을 지난해 12월 언론에 공개했다. 이처럼 선진국의 경우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신상을 비교적 많이 공개하는 편이지만 이 같은 사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 미국 등에 비해 흉악범 얼굴 공개 여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는데 이후 무죄로 밝혀진 사례도 다수 발견되고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은 인권, 흉악범의 인권도 권리인가
결국 찬반 측의 논쟁이 가장 심화되는 부분은 ‘인권’과 관련된 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흉악범의 얼굴 공개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흉악범의 초상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찬성측은 얼굴공개에 따른 피의자의 인권침해보다 피해자의 인권과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또한 지난 2010년 특강법을 개정하게 된 근거도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이 범죄자의 인권보다 더 크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범죄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피의자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와 더불어 피의자 가족이 죄인처럼 살아가야 해 연좌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규빈 객원기자
wilsher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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