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새벽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은 온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피해자가 피의자와 일면식도 없었던 관계에서 범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신분열증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정신질환자=범죄’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경찰은 이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스마트 워치 보급’과 ‘행정 입원’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경찰은 신변 위해 우려가 있는 여성에게 ‘웨어러블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기로 했다. 현재 경찰은 1,000여 대의 웨어러블 스마트워치를 운영하고 있으나 추가로 1,000여 대를 확보, 운영키로 했다.하지만 실효성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자는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지난 20일 강남역을 찾아갔다.
끊이지 않은 추모 행렬
지난 22일 기자는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다. 강남역에는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국화꽃과 포스트잇으로 도배돼 있었다. 추모객들은 국화꽃을 놓고 포스트잇에 추모 글을 적어 붙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KBS, SBS, JTBC, 채널A 등 언론사의 취재열기도 눈에 띄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지난 17일 새벽에 발생했으며 범인은 피해자를 2~4차례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났고, 경찰은 9시간 만에 범인을 검거했다. 범인은 피해자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고 범행 이유에 대해 “평소 여자들한테 무시를 당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런 발언은 여성들을 분노케 했고 ‘여성혐오 범죄’라는 주장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특히 경찰조사 결과, 피의자가 화장실에서 마주친 남성 6명이 모두 나가길 기다렸다가 여성이 들어오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알려지면서 ‘여성혐오 범죄’라는 인식이 만연해졌다. 이 때문에 트위터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0517am1)’라는 계정이 개설되기도 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은 “이번 사건은 남자와 여자 간에 존재하는 계급에서 비롯된 여성혐오 범죄라고 생각한다”며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사회적 관계에 있을 때 이런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경희대 이혜진 학생은 “기사를 접하고 친구들과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직접 와서 추모에 참여하니 마음이 더 무겁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사건을 접한 중앙대 한규원 학생은 “답답한 마음이 들어 직접 분위기를 느껴보고 사건에 대해 바르게 판단해 추모하고 싶었다”며 “여성혐오라는 논란도 있지만 논란을 만들기 보다는 희생자 추모에 더 힘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 날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아온 한승진(안양시 만안구.29) 씨는 “이번 사건은 단순히 여성혐오가 아니라 빠른 경제 발전에 비해 미흡한 제도적 발전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추모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을 찾았다. 하지만 몇몇 추모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강남역을 찾아오기도 했다.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는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포스트잇과 국화꽃 근조화환 등이 있다. 그러나 이를 훼손하는 사람도 있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지키고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떤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다. 추모 공간을 지키는 한 여성의 말에 따르면 추모하는 여성들의 다리 사진을 찍어 ‘일베’에서 일명 ‘신상털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지난 18일에도 한 남성이 ‘몰카’를 찍다가 이곳을 지키던 여성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이 날도 지나가던 한 남성이 10번 출구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보고 “이런 추모 행위가 오히려 여성혐오를 조장한다”며 포스트잇을 훼손하려고 했지만 이곳을 지키고 있는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고 ‘재물손괴미수죄’로 연행됐다.
강남역 살인 사건, 묻지마 범죄인가?
하지만 이번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는 언론 발표를 통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묻지마 범죄’로 선을 그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22일 ‘프로파일러 5명이 구속된 피의자 김모 씨(34)를 면담한 결과 조현병 증세에 의한 범죄라고 분석됐다’고 밝혔다. 조현병은 신경전달물질이나 뇌 등에 이상이 생겨 사회적 관계에 장애를 겪는 질환이다. 주로 나타나는 증상은 망상, 환각, 상황에 맞지 않는 생각과 행동, 감정 표현 사라짐, 말수와 행동 줄어듦 등이다. 실제로 피의자는 조현병으로 2008년 이후 총 6차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의자는 지난 1월초 퇴원 당시 주치의로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지난 3월에 가출을 하면서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대부분 ‘정신분열에서 기인한 묻지마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번 사건은 혐오 범죄의 종류에서 벗어난 사건”이라며 “혐오 범죄는 혐오하는 대상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피의자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로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관이 치안활동 중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병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해 ‘행정입원’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입원은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의사의 동의를 거친 후 지자체장이 입원을 결정하는 제도’다. 기존 정신보건법 제 26조에 따르면 경찰이 매우 급박한 상황에만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지난 19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법안에서는 일상근무로 요건이 완화됐다. 이에 대해 이수정 교수는 “경찰 내에 있는 전문 인력이 정신질환자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면 실효성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은 지난 26일 ‘강남역 살인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로써 8일 동안 진행된 경찰수사는 마무리 됐다. 최종 수사결과에 대해 경찰은 ‘피의자에게는 표면적인 범행동기가 없고 피해자와의 관계에서도 직접적인 범행촉발요인이 없어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성급한 사건 규정에 대한 우려의 시선
하지만 지난 25일 발생한 ‘부산 묻지마 폭행 사건’의 피의자 또한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자의 범행가능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의 피의자는 2000년 6월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2003년부터 2011년 사이 경남의 한 정신병원에서 약 4년간 입원해 정신장애 치료를 받았다.
실제로 2011년부터 2014년 대검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정신장애 범죄가 증가 추세에 있다. 2011년 흉악(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을 저지른 정신장애 범죄는 499건으로 그 중 우발적 동기에 의한 범죄는 170건이었다. 2014년에는 731건으로 그 중 우발적 범죄는 232건이었다. 또한 2011년 폭력(폭행, 상해, 협박, 공갈 등)을 저지른 정신장애 범죄는 1,156건으로 그 중 우발적 범죄는 611건이었다. 2014년에는 1,544건으로 그 중 우발적 범죄는 821건이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신질환자는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걱정을 표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23일 성명서를 통해 ‘여성 혐오나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성급히 지목함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갈등, 조현병에 대한 과도한 분노와 혐오 등 사회적 갈등이나 불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한 ‘자발적인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사회적, 국가적 테두리 안에서 전문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아 섣부른 판단은 할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은 단편적인 것으로 더 자세한 것은 조사를 끝마쳐야 알 수 있다. 현재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진술과 증거로 이번 사건을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 학교 사회학과 남재봉 교수는 “피의자의 상태는 정상인이라고 볼 수 없으며 현실에서 벗어난 사고를 가지고 있다”며 “피의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고 정상인과 같은 맥락에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함부로 해석할 수 없다”고 전했다.
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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