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순간에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들의 열띤 응원 속에서도 태극기가 있었다. 지난 3일 개천절에도 우리 주변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하지만 펄럭이는 태극기마다 게양된 위치, 태극기의 크기, 깃봉의 색깔 등이 모두 달랐다. 지난 2007년부터 시행된 ‘대한민국국기법(이하 국기법)’에는 태극기의 게양 방법과 모양, 관리법이 명시됐다. 이 밖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 국기의 존엄성 유지, 국기 선양을 위한 활동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태극기는 국경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행사에서도 우리나라의 얼굴과 같은 역할을 한다. 기자는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태극기가 잘 걸려있는지,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
구체적 기준 없어 모호한 국기법
가정에서 태극기는 주로 광복절, 개천절, 3.1절 등 법적으로 정해진 국경일이나 현충일에 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 국기가 연중 게양돼야 하는 곳이 있다. 국기법 제8조 3항에 따르면,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청사 등에는 국기를 연중 게양해야 한다. 그리고 ▲공항·호텔 등 국제적인 교류장소 ▲대형건물·공원·경기장 등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장소 ▲주요 정부청사의 울타리 ▲많은 깃대가 함께 설치된 장소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소 등에도 연중 게양해야 한다.
기자는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기자가 살고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주변과 우리 학교 주변의 공공기관 및 대형건물, 그리고 경기장 등에 있는 태극기 게양실태를 취재해봤다. 그 결과 기자가 방문한 청주시의 구청, 주민센터, 경기장 등에서는 연중 게양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국기법 제8조 3항에 따르면 연중 게양해야하는 곳에서는 국기게양대와 함께 적절한 조명을 설치해야 하는데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대다수였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의정담당관 이홍석 서기관은 “야간 조명 설치에 관한 명확한 기준은 정해진 바가 없다”며 “국기게양대 밑에서 위로 태극기를 투사할 수 있는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날씨나 시간에 관계없이 시민이 야간에도 태극기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형건물과 은행은 비교적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연중 게양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창사거리에 위치해 있는 대형건물들을 조사한 결과, 연중 게양에 관한 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곳은 한 두 곳뿐이었다. 대부분 게양대가 있어도 태극기가 걸려있지 않거나, 잘못 걸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대형건물과 은행 모두 국기게양대 주변에는 어떤 조명 장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이홍석 서기관은 “은행의 경우 대부분 오후 4시까지 영업하므로 조명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허점투성이인 시행령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이하 시행령) 제11조 3항에 따르면, 국기게양대를 다른 기의 게양대와 같이 설치할 경우 다른 기의 게양대보다 높게 설치해야한다. 이에 따라 설치한 경우, 게양대의 수가 홀수인 경우에는 국기게양대를 중앙에 설치하고 짝수인 경우에는 앞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설치해야한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한 사창사거리의 한 대형건물과 조치원읍의 A은행은 국기게양대 높이가 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으로서 국기법의 시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시행령은 법률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범위를 포함하며 법규성을 지니는데, 주로 국기에 대한 경례 방법, 국기의 규격, 국기 게양 방법 등이 명시된다. 그러나 태극기를 관리하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기법 제10조 1항에 따르면, 국기를 게양하는 기관 또는 단체의 장 등은 국기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국기.깃봉 및 깃대 등을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나오지만,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은 시행령에도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실질적인 관리법에 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홍석 서기관은 “국기법에 관한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공무원에게 보급되는 훈령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고 답했다.
아무도 모르는 국기수거함
시행령 제22조에 따르면, 국기에 때가 묻거나 구겨진 경우에는 국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기를 세탁하거나 다림질을 해도 된다. 하지만 국기가 찢어지거나 색이 바란 경우에는 폐기해야 한다. 국기법 제10조 3항에 따르면, ‘국기가 훼손된 때에는 이를 지체 없이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해야한다’고 명시돼있다. 하지만 요즘 가정에서 소각을 하는 것은 화재 위험 등의 문제가 있어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이홍석 서기관은 “가정에서 훼손된 태극기를 버릴 때는 각 지자체에 있는 민원실이나 주민센터에 설치된 국기수거함을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09년 모든 지자체에 국기수거함 설치를 의무화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의 국기수거함의 설치율은 94.5%였다. 실제로도 청주 시청과 4개의 구청(서원, 청원, 흥덕, 상당)에 문의해본 결과, 국기수거함은 모두 설치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주민들의 이용률이 높지 않다고 답했다. 홍남희(청주시 서원구·47) 씨는 “태극기를 훼손하면 쓰레기통에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국기수거함에 넣어야 하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찾아가본 사창동 주민센터의 경우도 국기수거함이 비치돼 있었지만 살펴보니 수거된 태극기의 양은 한두 개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담당직원은 “국기수거함에 있는 태극기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거나 수거하지는 않고 있지만 주민들의 이용률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국기법’
국기법 제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국기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해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결국 국기법의 가장 큰 목적은 애국정신을 드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취업·주거난 등 개인의 생계를 걱정하는 계층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목적은 현실에 맞지 않아 보인다. 또한 애국심을 법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애국에 대해 강제성을 띄고 있다. 이는 사실상 반감을 살 수 있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사회학과 이항우 교수는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군부 독재 시절에 ‘애국’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며 “이러한 정치문화를 겪은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애국을 국가에 대한 강압적인 충성으로 느껴 반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90년대 이후 개인의 자유를 매우 강조하면서 신세대들은 애국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극기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 애국의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 보훈교육연구원 서운석 연구원은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도 애국”이라며 “눈에 보이는 애국의 방식보다는 국민이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가치를 알 수 있을 때 진정한 애국심이 우러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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