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을까? 영화진흥위원회의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영화관을 찾은 관객 수는 총 2억 1,702만 명이다. 또한 영화 산업의 매출은 2조 2,730억 원으로 전년 대비 7.6% 상승했으며, 2014년 이후 3년 연속 2조원 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 국민이 한 번 이상 영화관을 찾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많은 관객들 중 시·청각 장애인들은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든다. 매년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영화 산업이 시·청각 장애인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자가 만난 시각장애인은 대사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국내 영화를 주로 보고, 청각장애인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외국 영화를 주로 관람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 영화를 보는 시각장애인은 대사와 효과음만으로 대략적인 내용은 파악하는 것이 전부이다. 청각장애인도 소리가 빠진 영상만을 봐야하기 때문에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것도 큰 불편함이지만 이보다 더 큰 불편함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대로 ‘취사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경우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장소에서 기호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서 볼 수 있지만, 시·청각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선영 사무국장은 “영화 관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가활동이지만, 장애인은 그렇지 못하다”며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아무 때나 볼 수 없고 애인이나 친구, 가족들과도 같이 영화를 즐길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의 장애인이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은 한 영화관에서 화면해설이나 한글자막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렵다”며 “장애인에 대한 근본적인 차별이 항상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부족한 배리어 프리 영화
한글자막 서비스와 화면해설 장치는 시·청각장애인의 즐거운 영화 관람을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다. 사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시·청각장애인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한국영화 한글자막·화면해설 상영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매년 20편의 영화에 대해 ‘배리어 프리’ 영화로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배리어 프리’ 영화란, 기존의 영화에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한글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를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배리어 프리 영화도 연 20편에 한정돼 제작되고 있어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김선영 사무국장은 “현재 제작되고 있는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만 모아 놓고 별도로 관람하는 ‘영화 관람 데이’라는 캠페인성 행사에서만 상영되고 있다”며 “상시로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배리어 프리 영화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했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작하고 있는 배리어 프리 영화는 개방형이다. 배리어 프리 영화는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나뉘는데, 개방형은 같은 영화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화면해설이 들리고 누구에게나 보이도록 자막이 삽입되는 형태이고, 폐쇄형은 보조기구를 통해 원하는 사람에게만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는 형태이다. 때문에 개방형 배리어 프리 영화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승규 활동가는 “영화관 측에서 골전도 이어폰과 특수 안경과 같은 보조기구를 제공해 준다면 시·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관람객이 다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골전도 이어폰은 일반 이어폰과 달리 관자놀이에 착용해 소리를 전달하는 보조기구이고, 특수 안경은 대사는 물론 음향효과까지 자막으로 전달할 수 있는 보조기구이다.
배려하지 않는 영화관의 현실
매년 성장하고 있는 영화 산업에 비해 시·청각장애인들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에 대한 투자는 미흡하다. 현재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는 장애인에게 관람료를 50% 할인해주고, 각 영화관별로 매달 ‘영화 관람 데이’를 통해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는 시혜성 짙은 행사일 뿐 근본적이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CGV는 영화관에 보청기를 구비하고 있긴 하지만, 획일화된 보청기만 구비하고 있어 장애 정도가 다른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상황이다.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하기에 열악한 상황에서 그나마 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에 비해 나은 상황이다. 시각장애인의 편리한 영화 관람을 위한 이어폰 및 화면해설 장치가 제대로 마련된 영화관은 거의 없으며, 이는 영화관뿐만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은 영화관에 가도 청각장애인에 비해 그 시설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훨씬 크다. 자신도 ‘저시력 장애인’이라고 밝힌 박승규 활동가는 “영화관 내부는 어둡기 때문에 통로부터 좌석까지 찾아가기가 굉장히 힘들다”며 “점자 블럭이나 팜플렛, 점자 표지판 등을 갖춘 영화관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충북시각장애인 복지연합회 박선영 사회복지사는 “영화관 내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블럭이나 표지판을 설치하는 것이 현행법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설치된 곳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권익은 법규상 보호되고 있어 영화관 맨 앞자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영화를 볼 수 있다. 이 또한 충분한 권익 보호라고는 할 수 없지만 법규로 의무화됐다는데 의미가 있다. 반면 시각장애인의 권익은 법적으로 보호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선영 사회복지사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는 시각장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법제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시각장애인들도 휠체어 좌석처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다면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동정 아닌 배려의 시선으로
배리어 프리 영화와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관 시설 부족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리나라 사회는 아직까지 장애인을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보다는 도움을 줘야하는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박승규 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장애인을 고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혜적인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며 “외국은 시·청각장애인도 고객으로 보고, 실제 고객 유치 차원에서 장애인에게도 영화 관람에 대한 편의를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화사업자들은 문화생활을 원하는 장애인들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요자로 바라봐야 한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평등한 문화생활을 누려야 할 고객”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문화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특정 장애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김선영 사무국장은 “예를 들면 장애인을 위해 제공하는 자막서비스에서 언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화면해설을 제공할 경우 글씨를 모르는 사람이나 어르신 등도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영화관에 경사로가 설치된다면 유모차를 타는 아기를 동반한 사람도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을 차별 없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의 당당한 수요자로 장애인을 바라본다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송희 기자
shinypin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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