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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나연&김채완&이상헌
낙태죄 폐지, 자기결정권인가? 태아의 생명권인가?
제 941 호    발행일 :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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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낙태죄 조항인 <형법 제269조>와 <형법 제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4명, 단순위헌 3명 등 7명이 위헌 의견을 표시함으로써 2/3를 넘긴 것이다. 이에 대해 찬성하는 측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측은 태아도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낙태죄 폐지 논란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봤다.


낙태죄 제정과 시대의 변화

  낙태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다. 1912년, 일본 형법을 조선에 적용해 시행된 <조선형사령>은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낙태를 시술한 의료진은 3개월 이상 5년 이하 징역형을 처벌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독자적인 법체계를 갖추면서 낙태죄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지만 1953년 법전편찬위원회가 내놓은 형법은 낙태죄 조항을 포함했다. 당시 형량은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2만 원 이하의 벌금형 ▲낙태를 시술한 의료진은 2년 이하의 징역형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인구가 줄어들자 낙태를 사회적 범죄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다만 특수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자는 여론이 형성됐으나 입법이 되지는 못했다. 이후 1973년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 <모자보건법 8조(현재 14조)>가 만들어졌다. <모자보건법>은 ▲부모에게 유전학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만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1970년대 이후, 인구 증가로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낙태는 암묵적으로 비범죄화됐다. 하지만 1985년 대법원은 의사의 낙태 시술은 사회 상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해 사문화 돼가던 낙태죄를 부활시켰다. 1987년에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아를 낙태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태아 성 감별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제20조>에 대해 위반 시 처벌을 의사면허 취소 및 3년 이하 징역으로 강화했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2012년 8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낙태죄가 헌재의 심판대에 올랐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8명 중 4명만이 위헌으로 판단해 합헌을 결정했다. 하지만 낙태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실제로 201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는 15.8건으로, 당시 가임기 여성을 1,000만 명으로 본다면 한해 낙태 건수가 15만 8,000건이 넘는다. 하지만 낙태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기소되더라도 처벌 수위는 매우 낮았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17년 사이 낙태죄 1심 판결은 53건에 불과하고, 판결도 83%가 선고유예(21건)와 집행유예(23건)였고, 징역형은 5.7%(3건)에 그쳤다.
  우리 학교 법전원 이경재 교수는 “대부분의 낙태 행위는 혼자서 또는 아는 사람들(공범들)과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거나 발각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경찰 등 수사당국이 이를 발각하기 어려우므로 수사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처벌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낙태 수술을 받는 경우 의사와 모의 하에 이뤄지며, 의사는 돈을 받고 수술을 해주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거나 외부에 알리지 않아 역시 발각이 어려워 처벌된 건수가 매우 적었을 것이다. 설령 기소된다고 해도 형(1년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이 낮기 때문에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고, 처벌된다고 해도 벌금형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낙태죄, 66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지난달 11일, 헌재는 낙태죄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재판관 9명이 헌법불합치 4명, 단순위헌 3명, 합헌 2명의 의견을 낸 결과였다. 먼저,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산부인과 학계의 주장에 따라 모체를 떠나 독자생존이 가능한 시기를 임신 22주 내외로 판단하고 임신 22주까지를 ‘결정가능기간’으로 제시했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임신 14주까지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여성이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는 낙태죄 폐지의 즉각적인 무효화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한시적으로 법을 유지하고 ▲임부의 결정 가능 기간의 조율 ▲결정 가능 기간 중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관한 확인 여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 절차적 요건을 추가 여부 등은 입법재량으로 보고 내년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다.
  헌법불합치 판단이 내려진 낙태죄 법 조항에 대해 형사법 전문 박현민 변호사는 “<형법 제269조>의 자기 낙태죄는 그 주체를 임부로 하고 있어 낙태라는 행위를 한 임부 자체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며, <형법 제270조의 업무상동의낙태죄>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라며 “그 주체에 있어서 낙태의 시술이 이루어지면 임부는 <형법 제269조>에 의해서, 낙태 시술을 한 의사 등은 <형법 제270조>에 의해서 처벌받게 되며,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내년 12월 31일까지 효력이 유지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낙태죄에 관련한 법엔 <모자보건법>과 <의료법>도 있다. 형사법 전문 안영길 변호사는 “만약, 이번 결정 중 3인의 헌법 위반 의견에 따른다면 즉시 소급하여 효력을 잃게 된다”라며 “일정한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적응 사유 등이 있는 경우 형법상의 낙태죄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규정은 이번 헌재 결정의 대상이 아니므로 그 효력이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따라 국회에서 새로운 입법을 하게 되면 현재의 <모자보건법> 규정의 내용이 형법 규정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태아 성 감별 행위 등을 금지한 <의료법 제20조>는 낙태죄와 관련한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박현민 변호사는 “사실상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허용된 낙태의 ‘범위’를 새롭게 규정하는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허용되는 임신중절의 범위로, 부모의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피해에 의한 임신, 혈족 또는 인척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할 우려 등을 들고 있어 이 범위를 적절히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경제적 문제를 허용대상으로 할 것인지, 허용을 한다면 과연 임신 몇 주차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이에 허용대상 범위의 확장과 허용 시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고, 그 합의는 국회의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를 둘러싼 의견 대립

  헌재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던 날, 헌재 앞은 어느 곳보다 뜨거웠다. 여러 단체와 개인들이 낙태죄 폐지에 대한 의견을 시위를 통해 전달했고, 이날 오후 3시 헌재의 판결이 발표되자 희비가 엇갈렸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23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 행동’은 이번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헌재의 이번 결정은 경제 개발과 인구 관리의 목적을 위해 생명을 선별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 그 책임을 전가해 왔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중대한 결정이다. 비록 헌재가 해당 조항들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명확한 위헌결정으로 완전히 입장을 모으지 못하고 다시 입법자들에게 변화의 책임을 넘긴 것은 아쉬우나, 이번 결정에서 단순위헌 의견 재판관 3명, 헌법불합치 의견 재판관 4명의 의견으로 압도적인 위헌 의견이 제시된 것에 우리는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반면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낙태죄폐지반대 국민연합’ 외 65개 단체는 “낙태죄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낙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덜 위험한 시기에 숙련된 의료인에 의해 안전한 낙태를 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태아의 생명권을 지나치게 가볍게 인식한 판단이며, 생명권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대수롭지 않은 사유에 불과하다.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태아의 보호법익과,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가능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기본권을 동일 선상에서 저울질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주장하며, “가장 힘없는 사회적 약자인 태아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이들이 여성의 인권과 행복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매우 위선적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낙태 반대 의사회’ 차희제 회장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낙태 시술 거부권에 대한 글이 올라왔는데 30년가량 산부인과 의사로 일해온 나 또한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를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인데 멀쩡히 살아 있고 앞으로 인간이 될 잠재성을 가진 태아를 죽이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론은?

  지난달 9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성관계 경험이 있는 전국의 만16~44세 여성 2만 6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현행 낙태죄를 폐지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폐지해야 한다 77.3%(1만 923명) ▲유지해야 한다 22.7%(9,677명)의 응답을 받았다.
  낙태죄 폐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황수빈(대전광역시 서구·21) 씨는 “아직 우리 사회는 임신에 대해 남성보다 여성이 져야 할 책임이 더 크다. 임신은 여성 혼자 한 것이 아닌데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몇몇 남자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 생명은 존엄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고통받을 수 있는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므로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계병(청주시 봉명동·52) 씨는 “불법으로 자행되는 낙태로 인해 임부의 건강이 악화되고, 버려지는 신생아 등 각종 사회문제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 물론, 합법화되면 낙태에 대한 죄의식이 옅어질 수도 있지만, 이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아람(창원시 성산구·25) 씨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는데 실수로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경우, 아이를 낳으면 아이와 부모 모두 불행한 인생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물론 생명은 존엄하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나은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신수지(구리시 인창동·24) 씨는 “다운증후군과 같은 선천적인 장애를 검사해서 알게 되더라도 법률상 낙태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면 불법이다. 태어나기 전에 장애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부모에게는 가혹한 일이다”고 말했다.
  반면 낙태죄 폐지를 우려하는 한희란(인천광역시 서구·35) 씨는 “낙태죄 폐지는 생명윤리붕괴의 시작을 의미한다. 2개월 된 태아는 손가락, 발가락이 만들어져 움직이며, 심장이 뛴다. 그런데 낙태죄가 폐지되면 엄연한 생명체인 태아를 죄의식 없이 살해할 수 있으니 심각성을 느낀다. 만약 이전부터 낙태가 합법적으로 만연하고, 생명윤리가 무너졌다면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현형(서울특별시 강서구·29) 씨는 “보수주의 기독교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낙태를 반대한다. 여성, 태아 모두 소중하지만, 낙태가 허용되면 무분별한 낙태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도 낮아질 가능성도 크다. 잉태되는 순간 태아는 인간의 생명을 가졌고, 그것을 없앤다면 엄연한 살인행위다”라고 주장했다. 김은주(용인시 수지구·25) 씨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반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낙태죄가 폐지되면 무분별하게 낙태 시술이 이뤄질까 봐 우려된다. 또한, 낙태는 임부의 건강도 해칠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체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고 밝혔다.

낙태죄 헌법불합치의 의의

  낙태죄가 제정되고 66년 만인 지난달 11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많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법의 해석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경재 교수는 “지난 66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고 이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법에 대한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이는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에서 큰 변화를 겪고 있는데, 간통이나 혼인빙자간음죄 등이 헌재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양성민 변호사는 “헌법은 철학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정치적인 성향이 짙은 법이므로 현실에서 시행할 때는 시대정신에 맞게 법을 해석해 적용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에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 된다는 지금의 우리 사회 시대정신이 반영돼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것이다”라고 전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은 활발해진 우리나라의 여권신장 운동과도 관계가 있다. 권태호 변호사는 “1953년 낙태죄가 처음 규정될 당시 여성의 지위는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열악했다. 최근에는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고, 발언권도 세졌다. 이는 최근 사회나 국가의 질서 유지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 사조와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는 태아의 생명권보다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더 큰 무게를 두는데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달 11일 성명에서 이번 헌재 판결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국제적으로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상충하는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며 “낙태를 국가가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안전한 낙태 조건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낙태를 여성의 권리와 관련짓는 해석은 해외에서도 발견된다. 김광재 교수의 논문 <낙태문제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는 여성의 낙태 자유는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할 권리에서 도출된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의학적 필요가 아닌 낙태를 할 수 있는 경우로 임부가 곤궁한 상황에 부닥친 경우가 있는데, 프랑스 행정최고재판소는 곤궁한 상황에 처한 경우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임부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임신 12주 이전에는 자유로이 낙태할 것을 임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낙태죄를 폐지한 미국의 사례

  우리나라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전까지 OECD 36개 회원국 중 5개국(▲한국 ▲뉴질랜드 ▲폴란드 ▲칠레 ▲이스라엘)만이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국민 대다수가 천주교 신자인 아일랜드조차 지난해 5월 25일 낙태죄 폐지를 국민투표에 부쳐 2/3의 찬성으로 157년 만에 낙태죄를 폐지했다.
  하지만 현재 낙태죄를 폐지한 국가 대부분은 지금의 우리처럼 많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도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에 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례가 있기 전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이 판례는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가 낙태의 권리를 포함하는지에 관한 것이었고, 미국 연방 대법원은 낙태의 권리가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하며, 여성은 임신 6개월(24주)까지는 자신의 의지로 낙태의 선택권을 가진다고 판결했다.
  이후 미국의 각 주는 세부적인 낙태 관련 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미국의 41개 주는 자격 있는 의사에 의해서만 낙태 시술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27개 주는 낙태를 하려는 경우 일정한 숙려기간(보통 24시간, 최장 72시간)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43개 주에서는 태아가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약 20∼24주 사이)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며, 19개의 주에서는 예외적으로 태아가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 이후 낙태를 하게 되면 담당 의사 이외에 다른 의사가 반드시 진료에 참여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임부의 낙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규정도 두고 있는데 미국의 19개 주는 낙태를 하려는 임부에게 의사의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하는데, 그중 5개 주에서는 낙태와 유방암의 관련성에 대한 정보를 임부에게 알려 주고, 13개 주에서는 낙태 시술 과정에서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8개 주는 낙태 시술과 여성의 정신건강의 상관성에 대한 정보를 임부에게 알려주고, 10개 주는 초음파에 대한 정보(태아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태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를 임부에게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내년 12월 31일까지 국회는 낙태죄와 관련된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헌재의 판결 이후에도 낙태죄 헌법불합치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형법 및 관련법 개정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이에 대해 권태호 변호사는 “안전한 낙태를 위한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내고, 낙태를 줄이는 낙태법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낙태죄 조항만을 개정해서는 불충분하며, 임신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완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 정보제공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된 여러 법이 함께 개정돼야 한다. 더불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도 대중의 시선과 사회적 여건 때문에 낙태를 하는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 임부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그러한 사회로 변해야 한다. 임신 전이든 임신 직후이든 임부들이 마음 놓고 상담 및 지원을 받으며, 아이를 낳으면 국가와 사회가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환경이 조성돼야 낙태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또 양성민 변호사는 “이번 헌재의 결정문에도 나와 있듯이 임신주기를 삼등분해 처음 3분의 1의 시기에는 낙태를 허용해주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12주는 사람으로서 형상을 갖추는 시기, 24주는 모체로부터 독립해서도 살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법을 개정할 때 어느 시기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신중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 개정과 별개로 낙태를 줄이는 방안으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성교육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그는 “인공임신중절 당시 콘돔, 자궁 내 장치 등의 피임을 사용한 비율은 12.7%에 불과했고, 질외사정법.월경주기법처럼 불완전한 피임 방법이 47.1%, 응급 피임약 복용을 포함해 아예 피임하지 않은 비율이 40.2%로 나타나 아직도 피임 관련 교육이나 피임 실천 의지가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해당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 단체에서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을 더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 예방을 위해 지속해서 학교 성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며, 성교육 재능기부를 희망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신청을 받아 낙태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바꿔 나가고 생명의 책임감을 느끼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66년 만에 변화의 발걸음을 내디딘 낙태죄.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그 무엇도 경시될 수 없기에 어떻게 관련 형법 조항을 개정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모두를 보장할 수 있는 이른바 ‘낙태를 줄이는 낙태법’이 제정돼, 낙태죄가 폐지돼도 오히려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 높아지는 바람직한 변화가 있길 바란다.                             

권나연 기자
enjoy1208@cbnu.ac.kr
김채완 기자
kimchaewan@cbnu.ac.kr
이상헌 기자
rkrkdh123@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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