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A 씨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명품 하울’ 영상을 발견했다. ‘하울(haul)’은 원래 ‘세게 끌어당기다’라는 뜻으로, 인터넷 방송 등에서 구매한 물건을 품평하는 내용을 담은 영상 제목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이를 일컫는 단어가 됐다. 명품 하울 영상의 주인공인 유튜버 B 씨는 한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두고 ‘본인같이 젊은 20대에게 잘 어울리는 감성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명품 소비는 유튜버 같은 ‘인플루언서’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Z세대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많은 사람이 ‘FLEX(원래는 ‘운동으로 몸을 풀다’의 뜻이지만, 현재 ‘부를 과시하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단어)’라는 단어와 함께 자신이 구매한 명품 의류 혹은 잡화류를 게시하고 있다. 이처럼 ‘비싼 물건을 사다’와 같은 의미를 담은 단어들도 등장하는 상황 속에서 Z세대는 명품을 얼마나 소비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명품에 반한 Z세대
지난해 9월 9일에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발표한 ‘패션 명품 브랜드 인식 및 소비 실태 조사-밀레니얼(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과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가 생각하는 명품(이하 밀레니얼과 Z세대가 생각하는 명품)’에 따르면, 조사 기간인 지난해 8월 12일에서 16일을 기준으로 최근 6개월 내 패션 제품 구매 경험이 있는 전국 15세~34세 남녀 500명 중 63.4%가 명품 브랜드의 패션 제품을 소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명 중 3명의 15~34세 남녀가 명품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스마트학생복에서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중·고등학생 358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들의 명품 소비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명품(액세서리, 의류, 신발 등)을 구매한 경험은?’ 항목에 56.4%가 ‘구매한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의 ‘밀레니얼과 Z세대가 생각하는 명품’ 보고서에서는 10대(149명)의 59.5%가 ‘모두가 알아보는 명품을 구매하고 싶다’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명품 지갑을 2회 구매한 적이 있다는 조연서(구미시 산동·19) 씨는 “한 번쯤 명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명품 브랜드의 지갑이 일반 브랜드의 지갑보다 소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수리와 같은 서비스와 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명품 소비에 매우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명품 소비 및 보유 추세는 10대뿐만 아니라 20대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의 ‘2019년 연령대(20~50대)별 명품 매출 신장률(2018년 대비 기준)’을 보면, 20대의 명품 매출 신장률이 신세계백화점은 24.4%, 현대백화점은 28.8%로 연령대 중 제일 높았다. 명품 화장품을 1년에 2회 정도 구매한다는 구현지(대구광역시 중구·22) 씨는 “화장품을 살 때 브랜드를 따지는 편이다. 브랜드 네임이 있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명품을 구매하곤 한다”며 “흔히 말하는 로드샵(거리나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학교 주변 등에 소규모로 연 가게) 상품보다 명품 브랜드 상품이 사람들의 후기도 많고 제품 색상이나 케이스 등이 더 예뻐서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나심비’와 재미를 추구하다
이처럼 Z세대가 명품 소비의 새로운 소비층이 된 여러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Z세대의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Z세대는 본인이 중시하는 가치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다. <90년대생 소비 트렌드 2020>의 저자이자 ‘SSG닷컴’의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자인 곽나래 작가는 “Z세대는 소득 수준의 향상, 소셜 미디어의 확산 및 개인이 원하는 가치에 대한 집중, 이른바 나심비(‘나’+‘심’리+가성‘비’의 합성어로, 가격과 성능을 비교한 기존의 소비 형태가 아닌 본인이 만족할 수 있다면 소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심리)으로 인해 명품 소비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1~2년에 한 번 정도 명품을 구매한다는 이광희(동두천시 하봄암동·24) 씨는 “명품을 구매하고 후회해 본 적 없다. 명품을 구매하며 1~2년간 열심히 살아갈 명분을 스스로 부여할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상징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또한, Z세대는 비교적 재미있거나 유희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맞게 명품 브랜드 기업들의 Z세대를 향한 마케팅 방법도 변화하는 점 역시 Z세대의 명품 구매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최지혜 박사는 “최근 Z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명품 브랜드들은 끊임없이 타 브랜드와 협업을 시도해 무겁고 전통적이거나 권위를 내세웠던 이미지를 보다 가볍게 했다”라고 말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신지연 연구원은 “‘밀레니얼과 Z세대가 생각하는 명품’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에게 ‘명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구찌(GUCCI)’였다”며 “해당 브랜드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내놓거나, SNS 마케팅을 시도하는 등 과거 명품 브랜드의 행보와는 다른 파격적인 변화를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FLEX와 불안감의 공존
또한, Z세대가 명품에 집중하게 된 사회.문화적인 요인으로는 ‘FLEX’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지난 2018년 국내 힙합 음악 장르에서 주로 사용된 단어 ‘FLEX’는 어느새 유행돼 Z세대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신지연 연구원은 “흔히들 2018년 국내 힙합에서 가수들이 ‘FLEX’라는 단어와 함께 명품 브랜드를 음악 가사에 넣고 명품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명품에 대한 유행이 번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밀레니얼과 Z세대가 생각하는 명품’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모두가 알아보는 명품을 갖고 싶다’에 ▲동의 48.4% ▲보통 37.4% ▲비동의 14.2% 순으로 답했는데, 이는 밀레니얼 및 Z세대 2명 중 1명이 이른바 ‘보여주기식 소비’를 원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고용 불안, 정치 및 경제의 불안정성으로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본인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Z세대의 명품 소비 증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학교 심리학과 박상희 교수는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더 근시안적인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좌절감을 해소하고 싶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명품과 같은 사치품을 소비하고 과시하는 행위를 통해 통제감과 만족감을 일시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수 있으므로 사치품 구매도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치품 소비 자체가 사회적인 규범이 되면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치품을 구매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올바른 소비란 무엇인가
‘밀레니얼과 Z세대가 생각하는 명품’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에게 ‘명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위 브랜드 3가지는 ▲구찌(41.2%) ▲샤넬(24.8%) ▲루이비통(7.2%)이다. 소위 말하는 ‘고가’의 명품을 소비하는 Z세대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곽나래 작가는 “Z세대의 명품 소비가 마치 새롭고 놀라운 문화적인 현상처럼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자금 대출이나 집안 사정 등의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굳이 고민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선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소비 성향에 대한 고민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해도 늦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Z세대의 명품 소비를 자기만족과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종으로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편으로 걱정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사치품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자기 계발에 힘쓰는 시간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박상희 교수는 “소비는 물질주의를 강화한다. 물질주의는 행복감과 만족감, 삶의 의미를 느끼기 어렵게 만들며, 타인과의 유대감 역시 감소시킨다. 본인의 재정적인 여유 내에서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는 존중해야 하지만, 불안감이나 좌절감 해소의 목적이거나 과시욕으로 인한 명품 소비가 늘어난다면 이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지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지연 연구원 역시 “본인 만족용 소비는 존중하지만,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기 바란다. 타인의 기준에 본인의 소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소비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훗날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소비를 하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본인의 경제적 상황에 맞지 않는 과한 소비는 확실히 본인 스스로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라이프 사이클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명품 소비를 위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명품을 소비함으로써 본인의 개성을 찾고 만족감을 얻는 행위는 오히려 Z세대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명품 소비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무엇이 올바른 소비인지 Z세대 스스로가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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