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에 대한 규제는 예부터 창작자의 자유와 사회 질서 및 청소년 보호라는 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다. 산업과 사회의 발전 그리고 오랜 논쟁 끝에, 현재는 자율규제라는 이름 아래 화해가 이뤄졌다. 이는 문화 산업 제반의 규제로까지 팽창해 그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는 ‘규제’라는 단어에 너무 매몰돼 그 목적에 대해 잊어버린 것 같다. “이 연령가에 이런 내용을 만들어도 돼요?”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연령가의 내용이 아이들에게 전달돼도 돼요?”의 문제임을.
웹툰 연령 등급, 15세? 18세?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종이책을 넘기며 보는 만화보다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 하며 보는 웹툰이 더 익숙한 시대다. 그만큼 웹툰이란 매체는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가파르게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정년이’, ‘이태원 클라쓰’, ‘모범택시’, ‘중증외상센터’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 만큼 문화 전반에 영향력도 대단하다. 하지만 그만큼의 커다란 사회적 책임도 존재한다는 의미다.
2000년대 초부터 다양한 웹툰 서비스 플랫폼이 생겨났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는 한국만화가협회와의 협의를 거쳐 2012년 4월부터 웹툰에 대한 자율규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해당 연령 등급에 적절한 내용인가?”에 대한 문제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지난 1월,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한 웹툰의 특정 화 내용을 두고 15세 이용가에서 18세 이용가로 연령 등급을 상향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평균 약 1,800개의 댓글이 달리던 웹툰은 해당화에만 4,997개(25년 2월 25일 기준)의 댓글이 달리며 독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었다. 성추행 및 남녀 주인공 간의 폭력적인 관계가 15세 이용가에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BEST 댓글(‘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15세 이용가로 유지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해당 웹툰은 현재 18세 이용가로 연재하고 있다.
그런데 연령 등급 상향 조정 공지가 올라온 이후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 연령 등급 조정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네이버 웹툰의 연령 등급 상향 조정은 며칠의 기간을 두고 시행됐는데, 그 기간에 앞으로 해당 작품을 못 보게 된 미성년자 독자층이 댓글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문제가 된 건 초등학생 정도의 매우 어린 독자가 이미 해당 웹툰을 즐겨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해당 웹툰은 15세 이용가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15세 이하의 어린 독자층이 꽤 형성돼 있어 성인 독자층을 놀라게 했다. 18세냐 15세냐로 논쟁을 벌이던 독자들은 모두 “그렇게 적은 나이의 아이들이 이 웹툰을 보는 건 부적절하다”라는 데 공감했다. 해당 웹툰의 애독자가 아니면 모를 수 있는 작은 사건이었지만, 우리에게 ‘어린 초등생들도 즐겨 보는 15세 이용가 웹툰’이라는 의문을 던져줬다.


(출처: 18세 이용가 상향 조정에 대한 독자의 댓글 반응 캡처)
웹툰 연령 등급, 이대로 괜찮은 걸까?
웹툰 연령 등급 분류에 15세 이용가가 생긴 건 얼마 되지 않았다. 2012년부터 자율규제가 시작됐지만, 플랫폼에 전체 연령가, 12세, 15세, 18세의 등급이 도입된 건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이하 위원회)의 권고 이후인 2019년 5월부터다. 이전에는 전체 혹은 성인으로만 나눴다.
어째서 기존의 2단계에서 4단계로 연령 등급을 세분화했을까? 현재 웹툰 연령 등급 제도의 기반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2018년 발행한 “웹툰 자율규제 연령등급 기준에 관한 연구”(이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연구는 웹툰을 전연령과 청소년이용불가의 두 가지로 나눴으나, 두 가지 연령 등급은 창작자와 독자 모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는 세분된 등급의 필요성에 대한 자문회의를 진행했는데, 1차 자문회의는 강제성 없는 가이드 형식의 세분된 등급을 긍정했다. 자문회의에서 윤영환 자문위원은 “12세 이용가를 13세인 자녀에게 보여줄 때는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음. 15세 이용가는 보여줘도 될지에 대해 고민하게 돼”라는 의견을 밝혔는데, 이는 세분된 연령등급이 아이들에게 수준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해 부모의 자녀 지도에 효과적인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앞선 한 웹툰의 사례처럼 초등학생도 15세 이용가 웹툰을 아무런 제재 없이 볼 수 있다. 연구에서 기대한 것처럼 현행 웹툰의 연령 등급 제도가 자녀 지도에 효과적인 가이드 라인이라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육 플랫폼 ‘스쿨잼’에서는 “콘텐츠 이용 시 15세 인증 도입” 찬반 설문을 진행했는데, 표본이 많은 설문은 아니지만 조사 당시 응답자에게 자신의 답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도 함께 수집해 유용한 분석자료가 된다. 해당 설문을 진행한 김주현 님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출처: 스쿨잼-[소소마켓 결과] 콘텐츠 이용 시 15세 인증 도입)
Q. 15세 인증 도입 설문 결과 학생, 학부모, 교사, 일반 성인 모두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아요. 물론 인원은 적지만, 인증 제도의 당사자인 학생들조차 그렇게 답변한 것이 놀라워요.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임에도 학생들이 15세 인증 도입에 찬성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설문 결과를 보면, 자극적인 콘텐츠를 좋아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예상과 달리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어요. 유해한 콘텐츠로부터 본인을 지키고 싶어 했고요. 또, 어른들은 해당 사항이 없어 유심히 보지 않는 연령 고지 화면을 아이들은 다 인식하고 있었어요. 연령 제한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어 시청 연령이 안됐는데 콘텐츠를 보게 되면 찜찜함을 느꼈고요. 그렇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안 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15세 인증 도입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Q. 15세 인증 도입 찬성 학부모들의 답변을 살폈을 때, 공통으로 본인이 단속할 수도 없다며 인터넷 공간에 우려를 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부모들은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요즘 학부모는 보통 80.90 세대인데요. 이들은 온라인 공간이 어떤 곳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본인의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고, 지금도 잘 이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공간인지 알고 있으니, 걱정도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설문 답변 속에서 학부모는 인터넷을 방비책이 없는 불안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어요. 온라인 어디든 콘텐츠가 워낙 많고, 그런 콘텐츠들을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고, 그 콘텐츠들에서 쉽게 영향을 받으니까요. 심지어 알고리즘이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시대니까 아이들에게 선별된 콘텐츠만 보여주는 것도 어렵잖아요. 불안할 수 밖에요.
Q. 15세 미만일 때에 15세 이상 콘텐츠를 접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대다수였어요. 주로 어떤 매체를 통했나요? 또, 학생들의 전반적인 감상은 어땠나요?
다양한 매체를 통했는데, 특히 유튜브와 웹툰 플랫폼을 이용했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어요. 웹툰은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콘텐츠로, 2019년부터 연령 등급제가 도입됐는데요. 웹툰별로 권장 연령 등급이 있지만 18세 이상 이용가 외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어 15세 미만 청소년들이 15세 이상 콘텐츠를 접하기가 너무 쉬워요. 유튜브 또한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앱인데요. 유튜브를 통해서는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화나 드라마를 요약, 정리해 주는 영상을 통해 15세 이상 콘텐츠를 접했다고 응답했어요. 아예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영상까지 보기도 했고요.
콘텐츠에서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부분이 나오면 잠시 놀라기는 해도 콘텐츠 보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어요. 해당 콘텐츠가 자신에게 자극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명확한 제재가 없고 흥미로워서 끝까지 콘텐츠를 소비했다고 해요. 자극에 약하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그렇기에 더더욱 15세 인증 도입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분명 현재의 연령 등급 제도는 연구가 기대한 바대로 수위를 가늠하는 주요한 지표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방비책이 없는 불안한 공간’인 인터넷에서 아이들이 접하는 콘텐츠에 부모가 개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설문에서 한 초등학생 학부모는 15세 인증 도입에 찬성하며 “요즘 스마트폰 없는 아이들이 없는데, 그 조그마한 기계 하나로 아이들이 접하는 세상이 너무나도 크고 넓습니다. 우리 애가 온갖 잡다한 콘텐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근데 그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다면 양육자인 부모가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빈틈없이 전부 다 커버하기는 어렵죠”라며 난감을 표하기도 했다. 연구의 예상처럼 가이드라인은 존재하게 됐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유튜브와 웹툰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꼽은 15세 이용가를 접하는 경로다. 그나마 유튜브는 유튜브 키즈라는 기업에서 제공하는 확실한지도 수단이 있지만, 네이버 웹툰은 그 어떤 수단도 찾을 수 없었다. “기업이 주체가 되는 자율규제라지만, 솔직히 네이버가 연령 등급을 제대로 규제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네이버 웹툰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양ㅇㅇ(대구.20) 씨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다. 그에게서 네이버 웹툰의 15세 이용가의 규제와 운용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들었다.
“네이버 웹툰은 단순히 이용자가 많을 뿐 아니라, 타 플랫폼들과 다르게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이 대부분이에요. 따라서 어린 독자들도 많은 웹툰 플랫폼이죠. 저는 그만큼 네이버 웹툰은 사회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책임이 막중하다고 봐요. 하지만 연령 등급 제도를 운용하고 관리하는 데에 너무 안일하고 또 게을러 보여요”라며 양 씨는 핸드폰으로 네이버 웹툰 앱을 켜 하나하나 아쉬운 부분을 지적했다.
네이버 웹툰의 연령 등급 제도 운용은 어딘가 부실했다. 화려한 작품 표지가 모인 홈 화면에선 18세 이용가를 제외하곤 겉으로 차이를 알 수 없었으며, 작품에 접근하는 데에도 전체 연령가와 차이가 없었다. 연령 등급 표시는 표지 상태에서는 당연히 확인할 수 없었으며, 처음 보는 작품을 선택해 들어가도 보이지 않았다. 작품 소개 공간에 연령 등급이 표시돼 있었으나, 긴 작품 설명보다 아래에 위치한 탓에 화살표 버튼을 눌러 자세히 봐야 확인할 수 있었다. 1화 맨 위에 연령 등급을 안내하는 문구가 삽입돼 있었으나, 작품 정보 창이 그 위에 띄워진 탓에 보이지 않았다. 전부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다수의 웹툰이 같은 상황이었다. 연령 등급을 안내하는 문구는 1화에만 삽입되기 때문에, 처음 작품을 누른 순간이 아니면 연령 등급은 내내 안내받을 수 없다. 양 씨는 “대부분은 웹툰을 볼 때 작은 글씨로 쓰인 작품 소개를 신경 쓰지 않아요. 더욱이 화살표를 눌러 자세히 보려는 사람도 거의 없죠. 과연 매번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연령 등급을 확인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요?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해 보세요. 과연 이런 상황을 제대로 된 연령 등급 안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라며 분에 찬 어투로 말했다.
15세 연령 등급의 제 역할을 위해서는
웹툰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의 콘텐츠들도 모두 연령 등급을 4단계로 나누고 있다. 각각의 주체가 자율적으로 연령 등급을 분류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통위의 SafeNet 등급 기준을 이용해 15세 이용가의 전반적인 수위를 어림잡을 수 있다.

(출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SafeNet 등급 기준)
방통위는 SafeNet 등급표를 기준으로 연령별 등급 권장 사항을 알리고 있다. 15세 이용가는 노출 2등급, 성행위 2등급, 폭력 3등급, 언어 2등급이다. 각 등급의 세부내용과 세세부내용까지 살피면 15세 이용가의 윤곽이 잡힌다. 콘텐츠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웹툰의 경우 위원회가 연령별 등급 기준으로 추가한 주제, 차별, 모방위험까지 고려하면 구체적인 수위를 그려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린 초등학생이 보기에 표현의 수위가 세며 적절한 관리나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보호법>은 특정 게임물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청소년 유해 매체(성인물)만을 상정하고 있어 이를 제재할 강제력은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야 4단계 연령 등급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15세 이용가 나이 인증이다. 영화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극장에서 15세 이용가 작품을 보려면 나이를 인증하거나 보호자가 동반하는 경우에만 관람이 가능하다.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는 사람이 16세 미만의 청소년일 경우에는 친권자 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나 라이엇 게임즈 등과 같은 곳에서 계정을 만들기 위해선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러 문화 콘텐츠가 <청소년보호법>이 메우지 못하는 빈틈을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웹툰도 하루 빨리 빈틈을 메우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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