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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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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건&민성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일하는 밥퍼가 남긴 희망과 숙제
제 987 호    발행일 : 2025.06.02 

우리나라, 예정보다 빨리 초고령사회 진입

  유엔은 한 나라의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사회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1,024만 4,550명에 달하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통계청이 2021년에 전망한 초고령사회 진입 시기인 2025년보다 1년 앞선 결과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복지 정책의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충청북도는 지난해 10월, 기존 시니어 일자리 사업과 차별화된 ‘일하는 밥퍼’(이하 밥퍼)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높은 참여율에 힘입어 올해부터는 사업을 대폭 확대 시행 중이다.

소일거리로 사회 기여 기회 제공과 생활 도움

  밥퍼는 공원 무료 급식에 의존하는 취약계층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를 통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지 사업이다.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면 참여할 수 있으며 마늘, 더덕, 대파, 쪽파 같은 농산물 전처리 작업이나 공산품 단순 조립 같은 소일거리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충청북도가 참여 연령 기준을 법정 노인연령(만 65세)보다 낮은 만 60세로 정한 이유는 더 많은 어르신이 함께하고 다양한 연령대가 어울려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어르신들은 하루 3시간, 주 5일 이내로 활동하고, 대가로 시간당 온누리상품권 5,000원을 받는다. 이는 전통시장 활성화도 함께 노린 설계다.
  작업장은 공동 작업장 형태로 운영되며, 현장 관리자도 배치돼 돌봄이 가능하다. 또한 자연스러운 대화와 교류를 통해 고립감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덕분에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거나 무료 급식에 의존했던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관계망 복원에 도움을 주고 전통시장도 활성화하는 ‘일석삼조’ 효과를 내고 있다.
  밥퍼 사업 참여 신청은 수시로 가능한데, 함께하는 나눔회(070-4242-3355)와 대한노인회 시군지회(청주 상당.서원 기준, 043-255-0422)에 연락해 신청할 수 있고, 작업장을 직접 방문해 접수가 가능하다. 접수 이후 신청자의 거주지 인근 작업장에 자리가 확보되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 밥퍼는 청주, 음성, 괴산 등 충북 전역으로 확산 중이며, 작업장과 일감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이를 벤치마킹해 올해 4월부터 ‘서울형 일하는 밥퍼 봉사단’을 출범시켰고, 충남과 세종도 밥퍼 도입을 위해 수요 조사를 진행 중이다. 충청북도 노인복지과 고현정 주무관은 “적어도 충북에서만큼은 어르신이 식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며 “일을 통해 자립하고 연결되는 복지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본 진짜 밥퍼...어르신들의 함박웃음

  굵은 봄비가 내리던 지난 5월 9일, 기자는 육거리시장 안 밥퍼 작업장을 찾았다. 공식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지만, 이른 아침부터 이미 어르신들은 자리를 잡고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비가 거세서 오늘은 많이 안 오실 줄 알았어요”라는 기자의 말에 한 어르신은 “우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와”라며 웃었다. 실제로도 작업장 안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고,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마늘을 다듬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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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거리 시장에 위치한 ‘일하는 밥퍼’ 작업장 내부.

  기자도 위생모와 장갑을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어르신들과 함께 마늘을 다듬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의 자리는 고정석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테이블이 세 줄로 배치돼, 중앙은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양옆에는 비교적 나이가 적은 어르신들이 앉도록 구성됐다. 이는 ‘소장’이라는 직책으로 현장을 총괄하는 소윤호(65) 대표의 의도였다. 소 대표는 “저뿐만 아니라, 비교적 젊은 양쪽 어르신들이 중앙에 앉은 어르신들의 안색이라든지, 몸 상태를 자연스럽게 살피게 하려는 의도다. 또 무거운 건 절대 어르신들이 못 들게 하고, 움직이실 때도 옆에서 꼭 함께하신다”라며 작업장 운영의 철학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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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과 마늘을 다듬으며 이야기하는 김동건 기자.

  한 시간 남짓 소일을 함께하며 어르신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니, 마늘을 다듬는 손길만큼이나 대화도 자연스럽고 활기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늘이 떨어지면 직접 가져오고, 부족한 테이블엔 서로 소쿠리를 건넸다. 작업량에 대한 부담은 없고, 오직 3시간의 즐거운 시간에 집중된 공간이었다. 이 점이 기존 시니어 일자리와 비교해 밥퍼가 인기 있는 이유였다. 시니어 일로 20년 가까이 학교 식당일과 체육관 청소 일을 했던 ㄱ(청주 모충동·82) 어르신은 “이제 나이가 많아 시니어 일자리는 힘에 부친다. 이건 하루 3시간만 하니 힘들지 않다. 무엇보다 앉아서 일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할 수 있어 좋다. 작업에 대한 재촉이 없는 것도 좋다”라고 말했다. 이순옥(청주 율량동·70) 어르신도 “여기 오기 전에는 집에서 TV만 봤다. 나이 먹으면 어디서 써주지도 않고 써준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여기 오면 여럿이 모여 간단한 소일거리를 함께 하며 이야기도 나누니 힐링도 되고, 돈도 생겨 좋다”라며 미소 지었다.
  밥퍼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하루 3시간 일한 대가를 이틀마다 3만 원의 온누리상품권으로 받는데, 이는 최저임금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에 대해 충청북도는 해당 활동은 노동이 아닌 봉사활동으로 <충청북도 자원봉사활동 지원 조례 제16조>에 따른 운영이라고 밝혔다. 소윤호 대표는 “하루 3시간 중 1시간 반은 임금을 드리는 근로 시간이고, 나머지 1시간 반은 봉사 시간으로 운영한다. 근로 시간으로써 어르신들 전부 산재보험도 들었다. 봉사 시간 1시간 반은 봉사활동으로써 1339 봉사활동에 3시간씩 채워드리고도 있다.”라며 “전처리 업체에서 마늘을 가져와 다듬는 건데, 이윤이 거의 없다. 솔직히 어르신들이 다듬는 양이 업체가 원하는 것보다 많이 적다. 그래도 업체는 생산성을 따지지 않고 우리 측에서도 재촉하지 않는다. 사실 어르신들에게 지급하는 15,000원 중 5,000원만 업체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서 부담했었다. 하지만 이제 100% 지자체 예산으로 실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만일 최저임금을 지키라는 외부의 압박이 생기면 어떡하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소 대표는 “지금처럼 조례 적용이 아닌 최저임금법 적용을 해야한다면 당연히 법을 따라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운영하기는 어렵고,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라는 의견을 주었다. 

복지의 사각, 밥퍼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

  밥퍼 사업의 목적은 ‘60세 이상 어르신의 사회적 고립감 해소’에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80~90대 고령 어르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윤호 대표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85세 이상 어르신은 참여가 쉽지 않다. 지금 우리 작업장에 90대 어르신이 세 분 계시는데, 작업 내용이나 지시 사항을 인지하는 등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작업은 천천히 해도 되지만, 소통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관리 측면에서 일부 연령 제한이 불가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밥퍼에도 참여할 수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별도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밥퍼 작업장에서 만난 ㄱ(청주 금천동·80) 어르신은 “그나마 움직일 수 있어 여기에 나오지만 언젠가는 이 일도 못 할 상황이 올 거다. 나라에서 의료와 요양 지원을 해주면 좋지만, 결국 그 비용을 젊은 세대가 부담한다고 생각하면 미안하고 마음이 무겁다”라며 조심스러운 속내를 드러냈다.

모든 어르신이 행복하려면? 초고령사회 속 우리에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 이윤경 선임연구위원은 밥퍼 사업이 많은 어르신이 만족하는 사업이지만, 모두에게 맞춘 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일자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오히려 ‘강요된 노동’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이윤경 연구위원은 “정책 연구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저는 반대예요. 건강이 안 좋은데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거잖아요. 그건 일자리가 아니라 복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소득이 필요한 분들이라면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고, 자아실현을 원하는 분들에겐 자원봉사나 문화 활동처럼 사회적 참여가 중심이 되는 방식이 맞겠죠”라고 말하며 이제는 서비스 공급자 중심의 복지 틀에서 수혜자 중심의 복지가 확대돼야 함을 강조했다.
  수혜자 중심의 복지에 사활을 다하고 있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신체적.기능적 제약이 있는 고령 후기 노인과 더불어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부머 세대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편입되며, 새로운 고령층이 된 세대이다. 그들은 몸도 건강하고,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하기에, 자아실현이나 사회 참여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정책이 필요하다. 결국, 오늘날 노인복지 정책은 단일한 정답을 가질 수 없다. 고령 후기 노인의 사회적 고립과 기능 저하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한 동시에, 새로운 노인 세대인 베이비부머들의 적극성을 수용할 수 있는 체계도 함께 요구된다. 결국 질병, 빈곤, 고독, 무위의 노인의 4고(苦)를 고루 아우를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이윤경 연구위원은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에 초점을 둔 복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노인이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 즉 ‘그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적 비전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노인의 소득 보장보다도, 지역사회에서 노인이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오래된 개념이지만,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정서적 안정이나 공동체 유대감 때문만이 아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통, 주택, 복지, 돌봄 등 다방 면에서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교통체계는 노인이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고, 단독주택 등에서는 낙상 등 안전사고의 위험도가 높다. 이에 따라 주택 설계나 리모델링 방향도 노인의 생활 특성을 고려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능이 크게 저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최소한의 돌봄만 지원되면 생활이 가능한 노인들이 시스템 부재로 인해 시설로 이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는 당사자에게도 큰 심리적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국가 재정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개인의 복지 향상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의 재정 효율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방향이다.
  현재 수혜자 중심의 에이징 인 플레이스 사업으로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이 있다. 2023년 7월 충북 진천군, 전남 여수시 등 전국 12개 시군구에서 시범사업 중인 이 사업은 요양원 퇴원을 바라지만 자립을 힘들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의료, 건강관리, 일상생활 지원으로,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업은 기존의 공급자 중심 서비스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어르신 한 사람마다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며 맞춤 노후를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시설이 아닌 거주 지역에서의 에이징 인 플레이스 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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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시의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출처=여수시청)

  초고령사회가 된 우리 사회는 밥퍼를 비롯한 노인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모두가 맞이할 나이이고 시기일 것이다. 실버로 물들 우리 사회에서 노인 복지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동건 기자
dongard@chungbuk.ac.kr
민성원 기자
sungwon0985@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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