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부터 8일, 불과 닷새 동안 세 명의 택배 노동자가 폭염으로 인해 숨졌다. 극심한 폭염이 이어진 이번 여름,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폭염으로 사망한 노동자 소식이 끊기지 않았다. 살인적인 폭염을 무릅쓰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여름은 목숨을 앗아가는 공포의 계절이 됐다.
안전하고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 카트 노동자
폭염특보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지난 7월, 홈플러스 동청주점 주차장은 차의 열기까지 더해져,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오후 3시경, 주차장 내부의 온도는 34도에 육박해 조금만 걸어도 땀이 쏟아졌다.
“요즘 점점 더 더워지고 있는데, 일하시기 힘들진 않으세요?” 동청주점 카트 노동자 정석인 씨에게 말을 건넸다. 열기 때문인지 발그레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주차장에서 일할 때 조금 후끈거리는 게 조금 힘들죠. 엄청 더울 땐 주차장에 환풍기를 틀어줘서 훨씬 낫죠.” 그를 따라 일을 조금 도우니 기자는 금방 지치고 힘들어졌다. 열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카트 하나를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정석인 씨는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일을 놓지 않는다. “그래도 여긴 얼음물을 마실 수 있게 얼음과 생수가 비치돼 있어 바깥에서 일하는 거보다 백번 낫죠. 평소엔 휴식 시간도 자율적으로 갖고, 휴게실에 에어컨도 있어서 시원하게 쉴 수 있어요. 다만 주말에 손님이 몰려서 바쁠 때는 1시간도 못 쉬는 것 같아요.”
동청주점의 카트 노동자는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일하고 휴게실에서 10분 쉬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휴게실 안 냉장고에는 얼음과 생수가 채워져 있어 노동자의 더위를 식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만, 고객이 몰리는 주말은 휴식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객들이 사용할 포장용 박스를 채우고, 주차장 곳곳에 놓인 카트를 옮기느라 정석인 씨는 여전히 분주하다. 정석인 씨는 “이 업장이 폐업할 때까지 안전하고 재밌게 일하고 싶어요. 매일 만 보 이상 걷는 일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데, 올여름을 무사히 보내면 좋겠어요”라며 기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 카트 노동자 정석인 씨.
휴식 없이 시간에 쫓기는 택배 노동자
지난 8월 12일 세종우체국에 근무하는 이복규 택배 노동자의 하루를 동행했다. 아침 7시, 현장에 도착하니 택배 노동자들은 분주히 택배 상자를 트럭에 싣는 인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한 인수 작업은 오전 9시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몸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인수 작업장은 외부로 개방된 지붕이 있는 시설로 실내보단 실외에 가까웠다. 노동자 4명이 작업하는 공간에는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어서 작업장은 너무 덥고 습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물량을 본인이 알아서 트럭에 실어야 하므로 휴식도 개인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할당된 업무를 정해진 시간에 마치려면 고작해야 커피 한잔 마실 정도의 여유만 있다. 그나마 작업장 내 창고에 얼음물이 있어 더위를 조금 식힐 수 있었다.
이복규 씨는 “인수 작업을 마치면 땀을 한 양동이는 흘린 느낌이에요.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덥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올해는 얼음 생수의 소중함이 엄청나게 느껴져요. 사실 우리 현장에서도 한 분이 쓰러졌어요. 온열질환으로 응급실 가신 분이 충청 지역에 꽤 계세요. 그래서 소금과 이온 음료를 항시 복용하고 있어요. 워낙 더우니까 얼음물도 먹고, 화장실이라도 있으면 씻고, 물도 끼얹고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정말 위험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오전 9시부터 본격적으로 배송을 시작했다. 이날 배송될 물량은 320개, 택배 노동자 한 명이 배송하려면 족히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인수 작업 3시간을 포함하면 이복규 씨는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이복규 씨와 함께 택배 배송을 하다 보니 느껴지는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택배 배송트럭은 지하 주차장을 출입해야 하므로 화물 탑의 높이가 낮았다. 그래서 택배 노동자는 허리를 굽힌 상태로 물품을 정리할 수밖에 없어 만성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또한 배송 과정에서의 잦은 승하차는 무릎관절에 무리를 줘 무릎 통증도 생겼다. 택배 노동자는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서 항상 시간에 쫓긴다. 압박감에 잠깐의 휴식도 없이 끼니마저 대충 때우기 일쑤다. 그나마 이동 중인 차 안이 유일한 휴식 공간이다.
또한, 상가가 배송지인 경우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배송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가까운 곳에 건널목이 없을 때는 4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일도 있었다.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택배 노동자였다.
아파트 단지 배송은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단지의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엄청난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기자가 동행한 날은 아파트 단지 2곳을 방문했는데, 각각 17개 동과 22개 동으로 규모가 상당했다. 이복규 씨와 기자가 함께 배송했는데도 한 단지를 마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배송하며 오르내림과 뛰기를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했고, 잠시 경험한 기자조차 무릎 통증을 느낄 만큼 고된 노동이었다.
폭염 속에서 더위를 피할 방법도 거의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에어컨 바람은 더위를 식힐 정도로 시원하지 않았고, 아파트 주차장과 도로변에 세워 둔 차는 햇빛과 열기에 뜨거워져 이동할 때도 금방 시원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싼 기름을 써가며 시동을 계속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택배 노동자가 많은 이유를 묻자, 이복규 씨는 “우리는 기후에 그대로 노출돼 있으니까요. 노동 조건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요. 일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해요. 같이 다녀봐서 알겠지만, 빵이나 김밥 같은 걸로 대충 때워요. 휴식 시간도 없이 잠깐 땀 닦고, 냉수 마시는 게 휴식의 전부예요. 지금은 워낙 건당 수수료가 적어서 최대한 물량을 많이 배송해야 겨우 최저 생계비 정도 벌어요. 끊임없이 자기 몸을 혹사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구조죠.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절대 택배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어요. 작업중지권도 특정 온도 이상이 돼야 요구할 수 있는 건데, 그 온도를 넘지 않으면 무조건 배송해야죠”라며 한숨지었다.


▲ 배송 준비 중인 택배 노동자 이복규 씨.
폭염 속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
폭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 기업 등 여러 주체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7월 17일부터 정부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경우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시간을 의무적으로 부여하는 방침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시행 중이다.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실효성 있는 작업장 대응 체계를 갖추도록 마련한 조치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이 폭염안전 5대 기본 수칙인 ▲물 자주 마시기 ▲실내·옥외 온도 관리 ▲주기적 휴식 ▲보냉장구 지급 ▲신속한 응급조치를 준수하는지 지난 6월 23일부터 지속적인 지도·점검에 나서고 있다.
또한 사업장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 및 배달 노동자를 포함한 이동 노동자가 쉴 수 있는 ‘이동 노동자 쉼터’를 지속적으로 개소하고 있다. 청주에도 지난 6월 18일 충북 최초로 이동 노동자 쉼터가 문을 열었다. 지난 7월 1일 기준 전국에 이동 노동자 쉼터는 모두 101곳이다.
한편, CJ대한통운은 혹서기 택배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 미배송에 대한 면책이 적용되는 ‘자율적 작업중지권’을 도입하고, 혹서기 기간 모든 작업장에서는 근무시간 50분마다 10분, 혹은 100분마다 20분의 휴식 시간을 의무 적용하도록 했다. 또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백업 기사 시스템을 도입해 택배 노동자의 휴식 여건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대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 ‘2시간 작업 시 20분 휴식’은 사업장에 있을 때는 적용이 되지만, 혼자 일하며 할당된 과업을 채워야 경제적 수입을 보장받는 구조에서 스스로 휴식 시간을 적용할 노동자는 많지 않다. 따라서 건당 수수료 인상 같은 노동자의 경제적 수입을 보장해 주는 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직업은 서로 다르더라도, 모든 노동자는 존중받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후 재난에 더욱 취약하다. 보호받지 못한 채 일터로 내몰린다면 여름철 노동자를 위협하는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폭염이 드리운 몇 번의 여름에도,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길 바란다.
민성원 기자
sungwon0985@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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