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사회에 발을 디뎌 실수투성이인 햄스터, 북극곰과 춤추는 세계 정상들의 유쾌한 그림, 상상만으로 만들어보는 키보드 ASMR까지. 현재 AI 콘텐츠는 큰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AI가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쉽게 AI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넘쳐나게 된 AI 콘텐츠를 즐겁게 소비하는 이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인터넷 속 저품질의 쓰레기(슬롭)처럼 보인다. 어느덧 우리의 알고리즘 속에 들어온 AI 슬롭,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거 본 적 있지? AI 슬롭의 정체

통나무로 이뤄져 있는 야구 방망이와 불쾌하게 생긴 얼굴을 가진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 파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상어의 모습을 한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등 이외에도 AI로 만들어진 수많은 캐릭터가 있다. 이 캐릭터들은 순간이동, 거인화, 슈퍼 점프 등의 능력이 있다. AI 슬롭의 대표주자이자, 올해 상반기 숏폼 생태계를 강타한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이다. ‘이탈리안’이라는 명칭이 붙은 건 해당 캐릭터들을 이탈리아어의 특유 발음으로 우스꽝스럽게 부르기 때문이다. ‘브레인롯’이란 뇌가 썩는다는 의미로, 숏폼에서 짧은 시간에 도파민만 발생시키고 아무런 영양가 없는 콘텐츠라는 의미다. 브레인롯을 즐겼던 우리 학교 강나현(지구과학교육과·25) 학생은 “억양이 재밌어서 친구들과 즐겁게 밈으로 소비했어요. 특유의 발음을 따라 하기도 했고, 친구들한테 릴스를 많이 보내곤 했죠. 과방 칠판에 캐릭터를 그린 선배도 있었어요”라며 관련 경험을 전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 밈도 시들해질 무렵, 숏폼에는 AI 음성과 AI 생성 이미지로 만들어진 저품질 콘텐츠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우리 학교 최아름(국어교육과·25) 학생은 “최근 CCTV 같은 구도로 등장하는 야생동물 관련 숏폼을 봤어요. 토끼랑 멧돼지가 같이 있어서 혹시라도 잡아먹는 줄 알고 걱정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두 동물이 사람 손가락을 내밀더라고요. 영상이 정말 사실적이었는데, 그 포인트에서 AI인 걸 알아차렸어요.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들까요?”라며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전했다.
이렇게 의미도 맥락도 없이 무분별하게 생성된 저품질 AI 콘텐츠가 양산되는 가운데, 이를 지칭하는 ‘AI 슬롭(AI slop)’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슬롭’은 원래 동물에게 주는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이미 우리의 인터넷 세상에 스며들어 누구나 AI 슬롭을 접하게 됐다. 앞선 사례들과 같이 일부는 생성형, 일부는 합성 후 편집에 가깝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짧고 강한 훅을 반복해, 품질보다 노출을 더 앞세운다는 특징을 가진다.
쓰레기라고 불리는 이유, UX의 악화
문제가 되는 것은 ‘슬롭’이라는 명칭이 보여주듯, 결국 사용자 경험(UX) 악화다. UX란 사용자가 제품, 서비스 또는 시스템을 이용할 때 전반적으로 느끼는 경험을 의미한다. UX는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감각적, 인지적, 감정적 요소를 모두 포괄하고,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과 브랜드 신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AI 슬롭으로 분류되는 영상은 같은 보이스와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노출해 보고 싶을 것을 보지 못한다는 점, 비슷한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사용자에게 노출돼 피로감을 유발하는 점,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리게 해 콘텐츠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 등의 불편을 만든다. 이러한 불편이 뒤섞여 UX를 갉아먹고, 결국 사용자는 스킵과 차단을 반복하다가 플랫폼을 이탈하게 된다.
이 같은 UX 악화 뒤에는 생성형 AI의 보편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특히 OpenAI에서 개발한 Chat GPT가 등장하면서 AI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많은 사람이 큰 관심을 가졌다. 이후 Google에서는 Gemini를, Microsoft에서는 Copilot를, 국내 기업인 네이버에서도 CLOVA X를 출시했다. 인터넷에는 이미 다양한 생성형 AI 서비스가 출시돼 있으며, 특정 분야에 맞춤화된 서비스도 적지 않다. 접근성이 워낙 좋고 비용이 크게 부담되지 않아 누구나 쉽게 AI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AI의 장점에 유희성이 결합하면서 AI 슬롭처럼 품질이 떨어지는 무분별한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중앙대 AI학과 이재성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저질 콘텐츠가 인터넷을 가득 채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AI로 만들기가 너무 쉽다 보니, 좋은 작품보다 AI 슬롭이 더 많아질 거예요. 질 좋은 콘텐츠를 보는 게 어려우니, 결국 UX가 전체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기업과 지자체에서도 생성형 AI를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아무렇게나 만든 AI 슬롭이 모든 AI 생성물에 대한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교수는 “AI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비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게 심각해지면 AI 기술 발달을 발목 잡을 거예요. AI를 이렇게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 아닌데 말이에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밈’이라고 하기엔 찝찝하다는 목소리
AI 슬롭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 학교 최아름(국어교육과·25), 김주안(국어교육과·25) 학생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처음 AI로 만든 콘텐츠를 봤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아름 처음에 AI로 만든 콘텐츠를 봤을 때 전혀 눈치를 못 챘어요. 제가 처음 본 AI 영상이 떡볶이가 가득한 수영장에 어떤 여자가 들어가서 손으로 떡볶이를 집어 먹는 영상이었어요. 목소리도 기계음이 아니라 정말 사람처럼 들려서, 단순히 괴랄한(괴상하고 발랄한) 영상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올해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그게 AI가 만든 콘텐츠였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 이후로는 영상을 볼 때 ‘혹시 이거 AI가 만든 건 아닐까?’하고 한 번쯤 더 의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주안 초창기에는 좀 조잡하다 보니, 누가 봐도 AI로 만들었다고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매우 정교해졌죠. 최근에 알게 된 일인데, YTN에서 AI 앵커를 사용하더라고요. 처음엔 자연스러워서 AI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그 앵커의 눈이 카메라를 봐야 하는데, 뭔가 다른 쪽을 보는 거예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영상 마지막에 ‘AI Y-GO 앵커’ 표기가 나오면서 AI인 걸 알았어요.
Q. AI 슬롭을 본 적이 있을 텐데 이런 무분별한 콘텐츠가 많아지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아름 지금도 AI한테 질문하면 가끔 잘못된 정보를 진짜처럼 알려주는 경우가 있잖아요. 게다가 AI를 활용하면 거의 무한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요. AI 의존도는 점점 높아질 텐데 이렇게 검증하기 어려운 자료나 콘텐츠를 생각 없이 계속 접하다 보면 제 사고는 멈춰버리고 아둔해질 것 같아요.
▷주안 요즘은 레시피 같은 간단한 해결법을 검색하면 AI가 쓴 듯한 비슷한 글이 많아 실제 경험담을 찾는 데 예전보다 시간이 더 필요해요. 이것이 자칫 AI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면 AI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이탈리안 브레인롯처럼 AI 슬롭을 놀이로 소비하는 경우도 있는데, AI 슬롭을 ‘밈’으로 볼 수 있을까요?
▶아름 저희보다 어린 집단에서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걸 보면 밈으로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AI 슬롭은 아예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잖아요. 현실과 맞으면 영상을 보면서도 생각이란 걸 할 텐데, 꿈속 동화 같으니까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밈은 아닌 것 같아요.
▷주안 밈은 유희적인 측면이 다가 아니잖아요. 어떠한 공감이나 현실을 반영해야 해요. 좋은 밈은 시간이 지나도 재밌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수명이 너무 짧았어요. 시간이 지나도 이런 AI 슬롭이 밈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봐요.
Q. 소비자와 플랫폼 운영자는 AI 슬롭을 각각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아름 너무 이상적일 수 있지만, 플랫폼 운영자는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소비자는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플랫폼 운영자는 논란이 일어나지 않게 최소한의 도덕성을 적용해 플랫폼을 관리하고, 소비자는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AI 리터러시를 키워야 해요.
▷주안 소비자가 너무 유행에 편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집단적 유행에 편승하지 말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으면 해요. 플랫폼 운영자는 AI 생성물에 대한 검열을 통해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콘텐츠를 걸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 슬롭에 대응하기 시작한 플랫폼
유튜브는 지난 7월 15일, 채널 수익화 정책을 재정비했다. 반복(repetitious) 콘텐츠 명칭을 ‘비진정성(inauthentic) 콘텐츠’로 변경하고, 대량 생산·반복형 영상은 수익화 대상이 아니라고 명확히 했다. 유형별 예시로는 ▲남의 텍스트 낭독으로만 구성된 영상 ▲이미지 슬라이드쇼로 해설.서사 없이 반복되는 영상 ▲탬플릿 재탕으로 차이 없이 찍어낸 대량.유사 영상 등이다.
한편 이미지 검색이 주로 이뤄지는 ‘핀터레스트’에서도 생성형 AI 콘텐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핀터레스트는 디자인이나 예술 쪽 분야에 속한 사용자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를 찾아보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인기 키워드를 검색하면 AI 생성 이미지로 도배되면서 사용자들 사이에 불만이 치솟았다. 이에 핀터레스트 측은 ‘AI 수정(AI Modified)’이라는 라벨을 붙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용자가 AI 이미지를 덜 보도록 하는 설정도 시범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밈으로 소비한 AI 생성물의 이름은 AI 슬롭이다. 맥락도 표시도 없이 퍼지는 저품질의 생성물은 UX를 악화시킨다. 플랫폼은 최소한의 도덕성과 규제를 통해 저품질 콘텐츠를 걸러내고, 사용자 역시 무엇을 소비할지 구별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플랫폼의 방향은 AI 자체를 금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문제는 AI 슬롭으로, 맥락도 해설도 편집도 없이 재탕하는 콘텐츠다. 반대로 부가가치를 더해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창작자에게 여전히 수익화를 허용한다. 해법은 AI 금지가 아니다. ‘AI를 사용하되, 창의적이게’. 이 최소한의 합의가 위태로운 UX를 지킬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이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는 모두 AI로 생성하였습니다.
김륜휘 기자
rhwwww@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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