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와 “내일 오후 2~3시 사이에 자택으로 법원 등기 우편이 도착하는데 수령 가능하냐?”라고 물었다. 그 시간에는 집에 사람이 없다고 답하자 발신자는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문자로 링크를 전송했다. 단순한 우편 안내처럼 보였지만, 해당 링크는 개인정보는 물론 금전적 피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정교한 보이스 피싱 수법이었다. 이처럼 교묘한 보이스 피싱 수법에 잠깐 방심하면 누구나 쉽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에 진화하는 보이스 피싱 수법과 실제 피해 사례를 짚어보고, 사회·제도적 대응 방안과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예방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점점 더 악랄해지는 보이스 피싱, 피해 규모도 커져
보이스 피싱 피해는 해마다 증가했는데, 특히, 올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8월 보이스 피싱 피해 건수는 16,765건으로 피해액은 약 8,856억 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건수는 124.7%, 피해액은 무려 184.8% 증가한 수치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피해액은 2021년 7,744억 원에서 2022년 5,438억 원, 2023년 4,472억 원으로 감소세를 보이다가 2024년에는 8,545억 원으로 급증했다.
최근 보이스 피싱 피해에서 주목되는 것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청년층의 피해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20~30대 피해 건수는 2024년 상반기 3,242건에서 2025년 상반기 3,748건으로 15.6% 늘었다. 이는 공공기관·금융기관·채용 절차 등을 빙자해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을 노리는 수법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 수도권 일부 대학에서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 중복 납부 안내’를 사칭한 문자 메시지가 발송돼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 최근 보이스피싱 연도별 발생건수 피해액. (출처:금융감독원)
보이스 피싱은 단순히 금전적인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심리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입는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는 취업 사칭 보이스 피싱에 속아 전 재산을 잃은 인물이 불안과 망상 증세로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많은 시청자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큰 공감을 표했다. 물론 극적인 설정이지만, 실제 피해자들 가운데서도 우울증·불면증·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립정신건강센터도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이스 피싱은 이제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도 주요 표적이 되고 있으며, 일상에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해킹과 AI로 무장한 보이스 피싱, 안전지대는 없다
보이스 피싱은 정교하게 준비된 말투, 실제 기관명, 영상통화, 문자 링크, 플랫폼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의 심리와 상황을 파고든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금융감독원, 경찰청의 자료와 실제 피해 사례로 주요 보이스 피싱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악성코드 설치 유도해 개인정보 탈취
보이스 피싱은 전화에 국한하지 않고 문자, SNS, 중고거래 앱, 오픈채팅, 채용 플랫폼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디지털 경로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고객센터 직원을 사칭해 문의 처리를 유도’하거나, ‘택배 배송 실패’, ‘통신비 미납’, ‘주차 위반’, ‘지인의 경조사’ 같은 상황을 가장해 링크가 첨부된 문자를 보낸다. 해당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코드가 설치돼 휴대전화에 저장된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이를 토대로 피해자의 재산을 노린다. 이처럼 다양한 경로와 수법이 동원되는 만큼, 단순히 모르는 전화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예방이 어렵고, 설령 지인 명의로 온 문자라 해도 링크가 확실치 않다면 함부로 클릭하지 않는 습관이 필요하다.
▶검찰, 경찰을 넘어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까지 사칭
기관사칭형은 보이스 피싱 수법 중 가장 오래된 유형이지만, 정교함은 해마다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검찰’, ‘경찰’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국가수사본부’ 등의 기관명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대부분은 “귀하 명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라는 긴급한 내용으로 전화를 시작한 뒤, “조사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과 통화하라”며 다른 번호로 연결한다. 이후 사건 번호·계좌 정지 예정·수사 협조 요청 등의 말을 덧붙여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과정에서 영상통화로 가짜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거나 실제 기관명의 위조 공문을 이메일로 보내고 가짜 홈페이지에 접속시켜 직원임을 확인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신뢰를 높인다. 무엇보다 링크가 첨부된 문자로 악성코드를 심어 이미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확보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ㄱ 씨는 자칭 ‘검사’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신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라는 말에 놀란 그는 금융감독원 조사를 빌미로 ‘어카운트인포’ 앱(계좌.카드.보험.대출.자동이체 등 금융 정보를 한눈에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 설치와 금융 정보 제출을 요구받았다. 이어 검찰 전용 메신저 설치, 별도의 휴대전화 개통, 원격제어 앱 설치까지 지시받았으며, ‘임시 보호관찰’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장소에서 매 시각 보고를 하도록 요구받았다. 심지어 사건 관련 문서를 읽으며 조사에 협조하게 됐고, 이후 ㄱ 씨 명의로 대출과 가상 자산 거래까지 하면서 자산을 탈취당했다.
▶채용 화상 면접을 이유로 전용 앱 설치 유도
주로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구직 사칭형 보이스 피싱은 사람인, 잡코리아 등 취업 플랫폼에 등록된 이력서를 바탕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쉽게 속는다. 범죄자들은 실존하는 기업으로 속이거나 유사한 기업명으로 문자를 보내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라는 안내 후 영상 면접을 유도한다. 이후 “면접 진행을 위한 전용 앱 설치가 필요하다”라거나 “보안을 위해 특정 메신저를 사용해야 한다”라며 APK 파일 설치를 요구한다. 이 파일은 악성 앱으로, 금융 정보를 탈취하거나 스마트폰을 원격 조종하는 기능이 포함돼 있다. 또한 신분증, 통장 사본, 공인인증서, OTP 등을 요구해 대포통장 개설에 악용하기도 한다.
지난해 20대 취업 준비생 ㅇ 씨는 채용 사이트에 게시된 한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인사 담당자로부터 “서류전형에 합격했고 화상 면접을 위해 앱 설치가 필요하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해당 공고는 유출된 기업 계정을 통해 실제 채용공고처럼 게시됐고, ㅇ 씨는 의심 없이 악성 앱을 설치하며 각종 보안 설정을 해제했다. 다음 날 ㅇ 씨의 휴대전화는 작동이 마비됐고, 해외 송금과 소액결제가 무단으로 발생했다.
▶말투, 습관, 목소리까지 같은데... 더욱 교묘해진 메신저피싱
가족, 친구, 교수, 선배 등의 계정으로 메신저를 보내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거나 “급하게 송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메신저 피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방식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지인의 말투, 이모티콘, 표현 습관까지 모방하고 내밀한 정보까지 언급하며 피해자를 속게 만든다. 심지어 사진이나 AI로 만든 지인의 음성 메시지까지 활용해 신뢰도를 높인다. 이는 피해자의 SNS 계정, 오픈 채팅 대화, 커뮤니티 게시글 등을 사전에 파악해 일상과 인맥 정보를 분석한 뒤 접근하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은 계좌번호 대신 간편송금, QR결제, 문화상품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송금을 요구하며, 피해자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 “급한 부탁”을 앞세운다.
지난해 12월, 20대 대학생 ㅂ 씨는 어머니로 속인 메신저 메시지를 받았다. “휴대전화가 고장 나서 다른 기기를 쓰고 있다”라며 급히 100만 원 송금을 요청한 것이다. 상대는 이모티콘과 말투까지 평소 어머니와 흡사하게 사용했기에 ㅂ 씨는 의심하지 않고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 이후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야 보이스 피싱임을 알았다. 경찰 조사 결과, 범죄자들은 ㅂ 씨의 SNS 계정을 해킹해 가족관계와 생활 방식까지 분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힘겨운 서민의 절박함을 이용한 금융 보이스 피싱
대출이 필요하거나 대출이 있는 서민에게 은행 직원이라면 전화해 “대출이 가능하다”라거나 “기존 대출을 상환하면 더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라며 전용 앱 설치, 보증금·수수료 납부,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는 등 수법이 점점 악랄해지고 있다.
은행 대출이 있던 ㅎ 씨는 한 시중은행 직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저금리 전환 대출이 가능한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라며 전용 앱 설치를 요구했다. 전용 앱 설치로 ㅎ 씨의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조종하게 된 범죄자는 “신용등급을 높여야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고, 신용등급은 금융거래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일정 금액을 입금해야 한다”라고 설득했다. 대출금 이자를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었던 ㅎ 씨는 결국 추가 대출을 받아 대출금 상환인 줄 알고 보이스 피싱 계좌로 송금했고, 이후로도 신용등급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일정 금액을 송금했으며, 가상 자산 거래까지 강요받았다. 나중에야 보이스 피싱임을 안 ㅎ 씨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금만 남았다.
보이스 피싱, 막을 수 있다.
보이스 피싱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각심이다. 어떤 이유로든 돈, 개인정보, 앱 설치 등을 요구한다면 보이스 피싱을 의심해야 한다. 요즘은 AI를 이용해 가족이나 지인의 목소리, 심지어 얼굴까지 똑같이 만들어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수상한 연락을 받으면 직접 전화해 확인하는 등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링크를 포함한 문자나 메시지는 일단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도 매우 중요하다.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 정보포털(FINE)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사이버범죄 예방 정보 페이지에서 보이스 피싱 관련 번호, 사례, 대응법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니, 방문해 보는 것도 보이스 피싱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잠깐의 부주의로 악성 앱 설치가 의심되면 휴대전화 전원을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고,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하면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계좌 송금의 피해를 봤다면 최대한 빨리 경찰 또는 은행에 신고해 보이스 피싱범이 송금을 요구한 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스럽다면 본인 명의의 계좌도 함께 신청하는 것이 좋다.
경찰청은 현재 ‘전기통신 금융사기 통합 신고 대응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보이스 피싱 의심 번호를 직접 조회해 볼 수 있으며, 피해 발생 시에는 바로 상담 및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경찰청은 보이스 피싱 단속을 위해 2025년 현재, 전국 수사 부서에는 전담 수사 인력 400명을 증원했고, 피해 접수 시 즉시 계좌 지급정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했다. 신고 보상금도 최대 1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상향했으며, 특별단속기간에는 24시간 감시 체계를 가동해 범죄 추적과 피해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한국인터넷진흥원 지난 4월부터 ‘악성 문자 엑스레이 시스템’을 운영 중인데, 하루 수십만 건에 달하는 문자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보이스 피싱 의심 문자를 자동 탐지하고 차단하는 기술이다. 특히 금융기관, 택배사, 공공기관을 사칭한 링크나 앱 설치 유도 문자를 중점으로 분석해 통신사와 공유하고, 수신 단계에서 차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문자 전체가 아닌 URL만 분리해 검증하므로 개인정보 침해를 최소화했다. ‘악성 문자 엑스레이 시스템’은 시범 운영에서 99% 이상의 탐지 정확도를 보여 보이스 피싱 피해 차단 효과가 기대된다.
이와 함께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지난 5월 ‘국민피해대응단’을 출범시켜 보이스 피싱 문자 유포 경로를 역추적하고, 이동통신사·단말기 제조사와 협력해 취약 계층 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문자 발송 단계에서부터 악성코드를 식별해 차단하고, 피해자의 휴대전화에서 감염된 앱을 자동으로 탐지해 알림 및 치료 서비스까지 연계하려는 기술적 시도도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도 법률 개선과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보이스 피싱 피해자 보호를 위한 ‘무과실 배상책임제’를 추진 중인데, 이는 피해자가 전적으로 속았어도 일정 부분은 금융기관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해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더불어 금융사, 통신사, 수사기관이 보유한 보이스 피싱 정보를 통합해 AI가 실시간 분석할 수 있는 ‘의심 계좌 탐지 플랫폼’ 구축도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해 의심 거래가 발생하면 신속히 지급정지와 조사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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