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몇 천 년 동안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서사 도구였던 붓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쓰임이 줄어들더니 지금은 키보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서예와 그림을 그릴 때나 사용하게 된 이 붓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가 공예가 유필무(50) 장인이다. 35년의 세월을 붓과 보내며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필장 유필무 씨를 청원군 ‘마동 창작마을’에서 만났다.
소년, 붓을 만나다
1960년 충주 앙성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유필무 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어린 나이로 뚝섬의 여러 공장들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던 그는 친척 어른의 소개로 붓 공방에 들어가게 됐다. 붓을 처음 만난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습자 시간에 쓰던 작은 붓들은 그저 글을 쓰는 도구라 여겼는데 공방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붓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참으로 귀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붓을 만들면 귀한 일을 하며 산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붓장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옛 방식 따라 우리 전통 붓 재현…”
모필(毛筆)이 대부분인 요즘, 유 씨는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재료로 붓을 만든다. 초필(草筆), 태모필(胎母筆), 갈필(葛筆), 억새필, 고필, 계호필 등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은 식물성 소재인 띠풀, 칡, 억새, 볏짚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공하는 과정부터가 굉장히 복잡하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은 여러 차례 찌고 건조하는 과정을 2개월에서 3개월 정도 거치고 촉이 될 부분을 5천 번에서 많게는 1만 5천 번을 두드려야만 붓으로써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요. 오랜 시간 찌고 두드려야 비로소 하나의 붓으로 탄생할 수 있는 거죠”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한 초필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유 씨는 “미수체라는 독자적인 필체를 남긴 허목 선생은 ‘갈필이 없었으면 미수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모필로는 나타낼 수 없는 갈필 특유의 질감과 자유로운 느낌. 그런 것들 때문에 초필을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 재료로 붓을 만드는 것이 지금 시대에는 새로운 것일 수 있지만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재현하는 것일 뿐이에요”라고 말한다.
마음에 부는 바람, ‘초심’으로 잠재우다
유 씨의 붓이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붓을 만들기 때문이다. “붓촉을 염료로 염색을 하는 등 기존의 붓과 차별화를 두려고 해요. 유필무만의 붓이 될 수 있도록 내 느낌을 살려 공을 들이고 계속 정을 주는 거죠”라며 붓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칠보공예와 도자공예 방식을 붓을 매는데 접목시켜 붓대에 글자를 새기고, 비단실을 두르는가 하면 단청 기법을 적용해가면서 자칫 평범해 질 수 있는 붓을 고고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에게도 붓을 매 오면서 부딪히는 경제적 어려움에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힘들고 지쳐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는 처음 붓을 만났을 때의 ‘초심’을 생각해요. 수입산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붓이 흔한 것이 되어 버렸지만, 나는 원재료는 흔할지 몰라도 아주 귀하고 아름답게 붓을 매서 세상에 내놓고 싶습니다. 힘든 순간이 와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기에 약해질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전통문화에 더 많은 관심 가졌으면
유 씨는 현재 아이들이 직접 붓을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을 1년에 한 두 차례 진행하고 있다. “작업 시간은 줄어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붓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통문화를 알리는 일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라며 붓 체험 프로그램이 증대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밝혔다. “젊은 사람들은 빠른 것과 편한 것만을 좋아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어요. 우리 전통문화에는 느림의 미학이 담겨져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요즘 학생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전통문화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애석합니다”라며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은 요즘 세태에 아쉬움을 표했다.
“영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리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다 적극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취업 준비로 바쁜 학생들에게 긴 여운을 남겨준다.








반유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