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꿈은 화가였다”

 장혜용 화가를 만나고자 청주대에 있는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녀는 꽃과 석류 열매가 은은하게 수놓인 색감 좋은 개량 한복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예전부터 오방색(빨강, 노랑, 파랑, 흰색, 검정의 다섯 가지 기본색으로 우리 선조가 즐겨 썼던 색)을 특히 좋아했다는 장 화가의 말처럼, 그녀에게 잘 어울려 보였다. 우선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들어 봤다. 장 화가는 “6․25 때 태어났지만 비교적 다복한 집안에서 자랐다”며 “아버지가 고(古)건축을 하시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미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해서 미래의 꿈은 언제나 화가였다는 그녀는 “중․고교를 거치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 가서도 그림을 전공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장 화가는 서울대학교 회화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대학 진학 전까지는 계속 서양화를 그려 왔기에 자신이 한국화를 전공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니 교수님들이 서양화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묵화 등의 동양화도 가르치고 있었다”라며 “당시 재능이 보였던지 교수님들이 서양화보다는 한국화를 전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유화는 냄새도 나고 독성이 좀 있어서 몸이 약한 나에게는 자연적인 먹으로 그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결국 한국화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창조와 고민의 30년

 장혜용 화가의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양화와 다르다. 먹으로만 그려서 색이 거의 없는 수묵화와 같은 그림은 더더욱 아니다. 장 화가는 “지금 작품은 대부분 아크릴로 그린다”며 “그렇게 하기까지는 사실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 작품을 만든다는 건 창조력을 내보이는 작업이다”며 “섬세함이나 테크닉보다 창조적인 것을 원했고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70년대 초반부터 추상을 시도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동양화에서 추상을 하기로 하고 수많은 시도를 했다고 설명한다. 장 화가는 “종이를 찢어도 보고 붙여도 보고 물감이나 먹을 뿌려도 보고 굉장히 실험을 많이 했다”며 “그렇게 한 10년간 고민의 시간을 보내면서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게 됐고 그 오방색만으로 선과 여백을 표현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이 거기에서 끝난 건 아니었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장 화가는 “하지만 계속 추상을 하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내가 ‘몰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며 “자꾸만 뭔가 허하고 겉도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 화가는 결국 인물과 추상을 접목시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창조성과 더불어 항상 생각하던 것이 바로 ‘한국성’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얼’을 떠올렸다”면서 “그 얼의 기본은 민족의 ‘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우리 민족의 춤사위에 수묵과 채색을 접목했다. 그렇게 또 그녀는 고민과 창조적 작업 속에 10년을 보냈다.

“‘모성’은 우주의 모티브”

 장 화가는 결코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녀는 자꾸만 변화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장 화가는 “30년간 오방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나니 세상의 많은 색을 쓰고 싶었다”며 “어느 시점부터 파스텔톤 핑크, 보라 같은 색에 빨려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그 후 작품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욱 치열하게 했던 장 화가는 마침내 인간의 ‘모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엄마’는 모든 우주의, 인간 행위의 모티브”라며 “그 존재는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고 사랑하므로 나 역시 화가나 교수라는 직함보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인식을 강하게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작품인 ‘엄마의 정원’에서는 그녀의 모성에 대한 자각이 엿보인다. 장 화가는 “‘엄마의 정원’에서 정원은 생명의 파라다이스 같은 것을 의미하고 그 따뜻함과 싱그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모노톤으로 작품을 그렸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간 중간 그림이 그려진 책자를 꺼내 일일이 설명하던 그녀는, 작품을 통해 따뜻하고 인자한 ‘모성’을 보여주는 천생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엔 불행한 화가도 있겠지만 자신처럼 행복한 화가도 있다면서 “저를 그냥 ‘흥’을 그리는 민속 작가라고 해 주세요”라고 말하던 그녀의 웃음은 마치 세상 모든 어머니의 미소를 함축한 듯한 한 폭의 따뜻한 그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