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전두환 前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자 광주의 시민과 대학생, 고등학생 등 너나할 것 없이 민주화를 부르짖는 운동에 참가한다. 여고생들도 시민군들을 위해 밥을 짓고 부상자들을 치료했으며 사망자들의 입관을 도왔다. 나이 어린 중학생도 자발적으로 시민군의 기지를 청소했다. 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민군은 시위를 계속했다. 계엄군은 폭력적인 진압을 강행해 시위대를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고 발포를 하는 등 사상자가 속출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친구가 계엄군의 총에 쓰러졌다. 27일 새벽, 도청을 진압하는 계엄군에 의해 시민군이 체포되는 것으로 5․18 민주화 운동은 일단락됐다”
격정의 80년대, 광주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때를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당시 광주 대동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던 김효석 씨는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됐다. 검정고시를 거쳐 82년 전남대 철학과에 진학 한 후에도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해 10년간의 수배생활을 보냈고 현재 동서남북 포럼에서 상임이사를 맡아 5․18의 정신을 널리 전하고 있는 그를 만나 요즘 대학생들의 참여 문제와 오늘날 대학생들이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는 그가 그 순간을 회상한 것이다.
“8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경색되었던 시절이었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들이 학생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것이 현실이에요.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역할을 시민단체가 대신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대학생들의 사회적 역할이 줄게 된 것이 관심이 줄어든 것의 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라며 원인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곳곳에서 대학생들이 촛불시위를 일으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숫자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학생들은 참여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우리 대학생들의 역할을 묻자 그는 “나와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는 “먼저 나와 세계에 벌어지는 일을 살피고 독서와 토론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잘못된 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고쳐나갈 수 있어요”라며 “요즘은 껍데기에만 치중하고 영혼은 빈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 커요”라고 우려했다. 그가 말하는 대학생의 역할 두 번째는 자기중심적이고 물질 만능 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웃에 대한 관심이 더 적어지는데 나와 이웃을 한 뿌리로 보는 공동체 정신과 나눔의 의식,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항거하는 저항정신을 가져야 해요”. 그는 “불의를 미워하고 당당하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학생, 그것이 바로 오늘날 갖춰야 할 대학생의 모습이다"라고 말하며 “우리 대학생이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나팔수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반유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