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특별한 이들을 만나보는 충북대 신문의 ‘사람과 사람’ 코너에는 인터뷰 대상이 되는 그 인물들에 대한 취재기자들의 애틋함,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혹시나 인터뷰 약속을 잡지 못할까 봐 시작되는 고민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듣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인터뷰 순간, 그리고 한정된 지면 때문에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중요한 내용을 정작 기사에 싣지 못할까 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기사 작성과 편집의 순간까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거쳐도 막상 신문이 나오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코너가 ‘사람과 사람’이다.
이번 창간 특집 기획에서는 ‘사람과 사람’ 코너를 통해 소개됐던 이들 중 독자들이 궁금증을 가장 많이 나타냈던 인물과 그 밖의 몇몇 인물들을 선정해 기사에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 소개됐던 인물의 작품 사진과 설명 등을 담아 보았다. 또한 ‘사람과 사람’을 위해 직접 취재를 했던 기자들의 인터뷰 당시 에피소드 등을 통해 취재 뒷이야기를 담아 봤다.
못다 한 이야기 Ⅰ - KBS 박미영 기자 편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
지난 802호 ‘KBS 박미영 기자 편’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 있게 삶을 사는 자랑스러운 ‘동문’에 대한 독자들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새삼 알 수 있었다. 해당 신문이 발행된 이후 독자 의견란에는 “사람과 사람에서 우리 동문 이야기를 읽으니 자긍심이 생겼다”, “인터뷰 내용 중 기사에 싣지 못한 다른 이야기는 더 없느냐”라는 등의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선배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자부심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에 지면 관계상 당시에는 싣지 못했던 KBS 박미영(00학번․사회학과 졸업) 기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다음은 박 기자가 직접 말한 KBS 입사의 전 과정이다.
교수님께 조언 구하는 것 두려워 말아야
요즘은 1,2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 나 같은 경우 당시까지는 취업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주변에서 취업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런 강박도 덜했다. 그저 무작정 중학교 때부터 막연히 기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혼자서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여러 정황이 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스스로 책을 많이 접했던 것이나, 전공으로 사회학을 선택했던 것이나,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KBS에 지역 할당제가 생긴 것이나, 우연한 기회에 국회 인턴 경험을 한 것이나…놀랍게도 그러한 모든 것이 운명처럼 앞에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다는 것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존경하던 선생님이 늘 해주시던 말씀인데, 구태의연한 표현 같지만 그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다.
사실 취업 준비에 특별한 룰은 없을 것이다. 각자 자기의 성향이나 특성에 맞게 준비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는 학기 중에 따로 취업 준비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냥 학과 공부와 수업에 최대한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신문이나 시사 잡지 등은 많이 읽었다.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텝스 등의 영어 시험, KBS에서 요구하는 한국어 능력 시험공부 등은 방학 때 몰아서 했다. 학원을 특별히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혼자서 끙끙대다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럴 땐 과감히 교수님의 조언을 들었다. 교수님 연구실 문턱을 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쉽지만, 교수님 만나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교수님들이 자극을 많이 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다. KBS 입사 준비를 할 땐 자기 소개서부터 시작해 전형 과정 전체를 거치며 어린애가 칭얼대듯 교수님께 많은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도 과에 신문기자 출신인 교수님이 계셔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도움을 청할 때마다 용기를 주시고 많이 북돋아 주셨다. 자신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면접 때 무작정 ‘아는 척’은 금물
나는 한 번의 고배를 마시고서야 KBS에 입사할 수 있었다. 첫해 3개월가량의 총 5차에 걸친 전형 과정은 정말 피를 말렸다. 첫해 KBS 사장단 면접까지 갔지만 결국 떨어졌고, 그 후 온갖 회의와 불안이 밀려왔었다. ‘떨어뜨릴 거면 진작 떨어뜨리지 왜 최종 면접까지 올려놓고 떨어뜨렸나’하는 생각도 했었다. 당시는 몸무게가 지금보다 6킬로그램이나 덜 나갔을 때다. 그땐 정말 입사 전형이 사람 진을 빼놓는 것 같았다.
첫해 최종 탈락하고서 나를 추스르는데 중점을 뒀다. 서울대에서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 다시 시험을 보기로 했다. 사실 대학원 공부는 학부 공부보다 더 힘들었지만 별 고민 없이 다시 한번 입사 지원을 했었다. 물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일을 진행했다. 한번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지 마음은 비교적 편안했다. 첫해엔 면접 때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곤 했었는데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나를 표현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신중히 들으려 했다. 나중에 보니 누가 봐도 ‘너무 말을 잘한다’, ‘정말 아는 것이 많다’고 느낄 만한 사람들이나 너무 자기 주도적으로 리드했던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모두 떨어졌다. 입사 후 얘기를 들어보니, 기본적으로 기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숙고하는 내 태도를 눈여겨봤다는 선배도 있었다.
전형 과정 중에는 카메라 테스트가 있는데, 나를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웃음). 방송에 나와서 혐오감을 주지 않을 정도면 된다. 그 후 수원에 있는 KBS 연수원에서 합숙 면접을 하게 되는데 두 명 아니면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뤄 토론하도록 한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 같았다. 짧은 보도 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써 보는 것도 있고 각각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가지고 비평하는 것도 있었다. 아까 말했던 ‘신중히 듣기’와 ‘담백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기’ 전략은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못다 한 이야기 Ⅱ - 극단 새벽 이상관 대표 편
‘연극인’의 무대 밖의 삶
지난 796호에 소개됐던 극단 새벽의 이상관 대표는, 그야말로 ‘연극인’이다. 87년에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다분히 ‘연극을 위한 목적’으로 인쇄 기술을 배워 인쇄소를 차린 후 곧바로 프로 연극 무대로 뛰어들었다. 연극에 푹 빠진 20년 인생이 후회 없다던 그는 무대 밖에서 어떤 모습의 인쇄소 경영인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버지일까. 이번에는 당시 지면에 싣지 못했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다음은 취재했던 김은영 기자와 이 대표의 일문일답이다.
-극단과 함께 20년째 운영 중인 인쇄소 이름이?
“똑같다. 극단 이름이 새벽이지 않나. ‘새벽 인쇄사’다. 중문이랑 정문 사이에 있다. 근데 20년간 한 가지 사업을 했다면은 공장을 짓든 빌딩으로 이사를 가든 사업이 번창해야 하는데 그렇진 않다. 그저 풀칠할 정도다. 결론적으로 사업가로는 실패한 거다. 마음 한구석에 줄곧 딴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웃음).”
-결혼하셨을 텐데, 아내는?
“내가 83학번이고 아내는 우리 학교 86학번이다. 그리고 지금 새벽 단원이다. 집사람은 나보다 더 유명하다. 우리 집사람은 극단 창단 멤버인데 그만큼 열정 있는 배우다. 나보다 활동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유명하다. 연기를 아주 잘한다.”
-아내 자랑 같다.
“아니다. 워낙…뭐 그냥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는 거다(웃음).”
-자녀는 어떻게 되나?
“중학교 2학년짜리 하나 초등학교 2학년짜리, 5학년짜리 이렇게 셋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듯하다.
“그냥 애국하는 마음으로 셋은 낳기로 한 거다.”
-자녀도 연극 보러 오나?
“우리 큰딸은 연극이 나오면 언제든 ‘기대가 크다’고 ‘열심히 하라’고 한다. 애들은 어려서부터 무대에 앉혀 놓기도 하고 집사람이 눕혀 놓기도 하고 해서 자연스럽게 연극을 좋아한다. 그런데 가끔은 애들이 너무 빠르게 커 가는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하다. 이놈들이 불쑥 커 있는 거다. 어느 순간 집에 들어갔는데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애들 이만큼 자랄 동안 나는 뭐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잘 봐주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아버지를 잘 따르고 좋아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웃음).”
-연극 연습은 어떻게 이뤄지나?
“보통 저녁 7시 연습 시작이다. 하지만 연습에 단원 한 명이 빠지면 그 장면을 못해서 상대 배역이 힘들어진다. 단원끼리 조화롭게 주고받는 게 중요한 거다. 하지만 단원 모두 생업이 있으니 거기에 스케줄을 맞추다 보면 8시쯤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11시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변명 같지만 그러다 보니 애들을 잘 못 돌봐주게 된 거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자랑스러운 아버지인 것 같아 연극을 하면서 절대 후회한 적은 없다. 이 정도면 연극인으로서의 삶, 가장으로서의 삶 모두 나름대로 충실히 해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못다 한 이야기 Ⅲ - 장혜용 화가 편
장혜용 화가의 ‘엄마의 정원’ 연작 中
‘사람과 사람’ 코너에는 유달리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소개된다. 하지만 지면이 한정돼 그들의 그림 등 ‘작품’들을 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집 기획을 맞아 지난 803호에 소개됐던 장혜용 화가의 작품과 미술 평론가의 설명을 담아 봤다.
미술 평론가 신항섭 씨는 ‘엄마의 정원’ 연작을 보고 “그림의 소재는 한 가족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다”며 “여기에 대자연에 대한 동경과 꿈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추가되었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다양한 동식물이 생장하는 숲의 이미지를 원색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이상적인 대자연의 풍경을 묘사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엄마의 정원’은 어머니가 가꾸는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망과 염원을 화초를 가꾸는 어머니의 모습에 일치시킴으로써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전개되는 것이다.
장혜용 화가는 “특히 왼쪽의 그림은 에메랄드 그린이라는 굉장히 예쁜 초록색을 썼다”며 “정원에서 딴 꽃을 한 아름 안고 꿈을 꾸는 사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이 색깔 덕택에 극대화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