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신학 1층 구두 수선집의 활짝 열린 문이 기자를 반긴다. 세평 남짓한 수선집 안으로 들어서자 낮 동안의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훅’ 끼친다. 수백 개의 구두 굽이 담긴 테이블 뒤로 빵을 먹는 구두 수선사 최소영 씨(62)가 보였다. 지금 드시는 게 식사는 아니시죠?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가져온 음료를 조심스레 건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밥은 학교 식당에서 먹어요. 식사 시간은 따로 없고 대개 1시에서 2시 사이에 먹죠”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출근하는 것을 시작으로 저녁 6시 30분에 퇴근하면서 끝이 난다.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의 모든 일과가 이 소박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공간임에도 14인치 컬러 TV와 옷걸이에 걸린 외출복, 정수기, 비상식량인 듯한 컵라면까지 제법 구색이 갖추어져 있다.

 그가 이 공간에 처음 들어온 것은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2년이다. “내가 학교에 82년도에 들어왔으니까 28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17살 때예요. 구두 수선공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웠죠” 그 나잇대 이들의 유년이 그러하듯 그의 어린 시절도 어려웠다. 그는 그 시절을 아주 짧게 회상했다. “배고픈 시절이었어요. 어린 시절 이야기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배고픈 시절이었으니까 기술이라도 배워서 먹고 살려고 (구두 수선 일을) 시작한 거죠. 다른 일을 한 적도 있었어요. (수선 일을)하기가 싫어서요. 그래서 중간에 이 일을 중단하고 전기일도 하다가 82년도 이후에는 죽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가 손님이 맡긴 구두의 밑창을 가는 동안 찬찬히 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검은 뿔테 안경, 선한 눈, 굳게 다문 입, 왜소한 체구, 그에 비해 커다랗고 단단한 손… 검은 굳은살이 양손 엄지와 검지에 검게 박혀있다. 살짝 굽은 등에서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마저 전해졌다. 여지없이 우리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의 모습이다.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둘 있어요. 남자 형제로 둘요. 모두 결혼했는데 큰아들한테는 손자를 봤고 작은아들한테는 손녀를 봤어요” 구두 수선공으로 두 아들을 키우기는 기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근 30년이 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자녀 때문이었다. “어려움이 많았죠. 구두일 해서 큰돈이야 벌겠어요. 조금씩 쪼개 쓰면서 산 거죠. 자식 때문에 이렇게 살았죠. 다들 그렇지 않겠어요?(웃음)” 그래도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손자도 보셨으니 여유가 생기셨을 것 같아요? 기자의 철없는 물음에 그는 웃었다.

 기쁜 일이 있으신가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일까 뜸 들여 나온 대답은 적잖이 쓸쓸했다. “기쁜 일이요? 기쁜 일이 뭐 있겠어요. 단적으로 얘기할만한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남한테 아쉬운 소리 듣지도 하지도 않고 사는 거죠” 어려운 일은요? “어려운 일도 없어요. 그저 이곳을 찾는 학생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그는 기쁜 일도 어려운 일도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온 손님의 구두 굽을 고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자 공자가 논어에서 이야기한 이순(耳順)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그는 지금 10대의 감정 기복도 없고 20대처럼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성숙해진 사려와 판단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 오랜 연륜을 쌓은 데서 나오는 여유로움에 지켜보던 기자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는 “그래도 나이 들어 이렇게 움직이는 게 좋아요. 소일거리도 없어서 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오랜 경륜으로 이제 못하는 수선이 없다. 구두의 굽을 갈고 밑창을 가는 것은 기본이요, 끈이 뜯긴 구두를 재봉질하고, 벗겨진 가죽에 본드를 발라 감쪽같이 만든다. 굽이 높은 구두의 굽을 잘라 낮추기도 한다. 이쯤 되면 구두 수선에 있어 ‘장인’이라 불릴 만하다. 또 구두 수선뿐만 아니라 가방도 수선해준다. “가방 고치러 왔는데요” 한 여학생이 둘러메고 있던 가방을 건넨다. 고장이 난 지퍼를 수선하는 데는 약 10분이 걸렸다. 굽 가는 시간은 뚝딱거리면 2분도 채 안 돼 끝나지만 이 수선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수선을 마치고 학생에게 가방을 돌려주며 그는 “2,000원이요”라고 말한다. 굽 가는 가격은 2,500원, 조금 까다로운 작업도 2,000원 가격대를 넘지 않는다. 손쉬운 작업은 그냥 수선해주는 일도 허다하다. 값을 그렇게 싸게 받으셔도 되요? “학생들인데 싸게 해줘야지요. 학생 구두도 한번 줘 봐요. 갈아줄게요(웃음)”

 구두 수선공이라는 그의 직업은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3D 업종은 구직난 속에서도 기피의 대상이다. 취업난 속에서도 어렵고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대학 나와서 어렵고 힘든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이 일 하는 나야 하던 사람이니까 하는 거지. 자기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는 게 당연한 거죠. 힘든 일을 지금 누가 그렇게 하려고 하나요” 그런 와중에 그는 되레 학생들 걱정을 한다. 28년을 대학 안에 지내며 학생들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학생들이 취직이 안 돼서 취직 걱정을 많이 하잖아요. 학생들이 대학 오면 그런 걱정 안 하고 졸업해서 잘 취업했으면 해요” 20년이 넘게 굳은 일을 묵묵히 해온 그에게서 조그마한 문제에 부딪혀도 일을 그만두고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도 금세 갈아 치우는 요즘의 우리 모습을 본다. 부럽고도 부끄럽다.

 일은 앞으로 언제까지 하세요? 졸업하고 다시 학교를 찾았을 때도 계속 뵀으면 좋겠어요. 기자의 넉살에 “글쎄요. 지금이라도 그만두라면 서운할 걸요.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는 움직여 봐야죠. 그게 몇 년이 될는지…그래요, 내가 그때까지 있을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