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울려퍼지던 어제의 그 무대에서 오늘은 악기들이 노래를 한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청주 예술의전당. 텅 빈 객석 위로 내일을 준비하는 손길들을 보고 있을 때, 청주시립국악단의 정규현 단무장이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벤치에서 짧고도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단원은 35명 정도입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모여서 연습하고요. 처음 들어왔을 때가 아마 2005년 1월일테니 만으로 6년 정도 되었나요.”
짧지 않은 세월임에도 담담하게 대답한다.
“청주시립국악단은 청주의 문화홍보사절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무대에서 악기를 다루진 않지만 총괄적으로 기획과 관리를 하는 역할을 하죠.”
하나의 악단을 이끄는 단무장. 그는 대체 언제부터 국악의 매력에 빠져든 것일까.
“문득 생각해보면 어릴적부터 판소리 음반을 곧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심청가’였던 것 같은데 꽤나 좋아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부터였어요. 처음엔 단소를 불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고는 없어요. 단순히 소리에 이끌렸던 거죠. 그러다 대금을 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학도 그 쪽으로 가게 되었고요. 군생활도 군악대에서 보냈어요. 제대하고 졸업 후에는 영동난계국악단에서 대금을 연주했습니다. 그러다 기획에 뜻이 생겨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됐네요.”
어느새 무대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일하게 된 그가 덧붙여 말한다.
“무대뒤에서 연주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부러워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기획일에서의 성취감이 더 큽니다. 단원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앙상블을 이루어내는 것도 제가 하는 중요한 일이니까요. 단원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편안한 공연을 위해 지지대가 되어주는 거예요.”
연주자의 모습이든 기획자의 모습이든 결국 국악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였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음악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그렇죠. 슬럼프도 많이 오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참 힘들었어요. 근데 그 슬럼프라는게 그 순간을 넘어가도 더 크고 힘든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거든요. 매번 두려워하지말고 이겨내야 됩니다. 그래야 또 다음 어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절대로 지금보다 작은 어려움은 오지 않아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자면 제가 그 순간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일종의 꾸준함 때문이었어요. 연주자들이 힘든 고비를 맞이하게 되면 다 잊어버리고 좀 쉬자라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근데 그런 식으로 완전히 벗어나 버리게되면 나중에 돌아왔을 때 더 힘들어져요. 물론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원칙이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몸과 마음을 바쳐서 사랑해야 해요. 형식적이든 무의미하든 일단 연습하는거죠. 힘들어해도 연습하면서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럼 한층 더 성숙해진 날 만나게 되는 거고요.”
주위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늘 이렇게 충고를 해준다고 한다. 그것을 증명이나 하듯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지난 세월에서 묻어나온 듯한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굳이 음악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다 힘들죠. 특히 대학에서 공부하다보면 막막하고. 그런 생각도 들거예요. 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이겨내야 해요. 두 손 다 떼버리면 나중에 배로 힘들어져요. 저는 ‘백문이 불여일견’보다 ‘백견이 불여일행’이거든요. 해보는 게 중요하죠.”
지난 시절을 얘기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로 잠시 돌아가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시작한다는 건 좀 많이 늦은 편에 속해요. 그게 바로 제 경우였기 때문에 그 땐 참 열심히 했죠. 물론 좋아서 했던 게 가장 큰 이유고요. 돌이켜보면 그 때만큼 열심히 했던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자리에서 6,7시간을 대금만 불었으니까요.  ‘해야된다’라는 생각이었죠. 왜 나한테는 선생님이 연주하는 저런 소리가 안 날까. 나도 저런 소리가 나야하는데. 하면서 계속 불었어요. 대금을 불다 잠든 적도 있었고요. 그렇게 연습을 하고나면 성취감도 정말 컸죠. 말할 수 없어요, 그건.”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흔히 말하는 청춘을 지나 지금까지 국악을 놓지 않은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를 사로잡은 국악의 매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저는 종종 말하곤해요. 국악은 마약이라고요. 정말로 국악은 마약입니다. 처음에 어설프게 할 때는 금방 그만두기도 쉬워요. 근데 거기서 좀만 더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가 없게 되죠.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돼요. 그 맛은, 정말. 정말 맛있습니다.”
그토록 극찬하는 ‘맛’을 알리기 위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힘쓰고 있었다.
“전에는 국악의 대중화라는 말을 많이 썼었죠. 하지만 제 생각에 그건 이미 구시대적인 말 같습니다. 우리악단이 준비하는 것들 중에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지만 국악은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반응도 좋고, 심지어는 토속적인 것 자체를 더 좋아하는 분들도 꽤 계시고요. 이전에는 ‘국악이니까’라는 강요아닌 강요들이 좀 많았죠.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민족적 자존감을 찾기에는 더없이 좋죠. 물론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지만 벌써 지구촌이라는 말이 나온지 오래되었잖아요. 막무가내식은 아닌거예요.”
현대적 느낌이 물씬나는 요즘 국악에 대해서도 한 마디 들어볼 수 있었다.
“바람직하죠. 시대의 흐름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전통성입니다. 순수예술이라는게 시대를 초월해야 하기도 하니까요. 전통에 기반을 둬야 개량악기도 나오고 창작음악도 나오는거죠. 하지만 대중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거예요. 적절한 배합과 공존이 필요합니다. 아직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마음으로 또 행동으로 노력하고 있기에 희망을 가지는 정규현 단무장.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우리악기를 하나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겠죠. 세상이 각박할수록 단순한 걸 찾고, 그 단순함 속에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더 좋아질 거예요. 이제 많은 분들이 우리악단을 찾을 수 있게 성악, 기악, 타악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할 계획입니다. 음식으로 얘기하자면 개개인의 입맛이 모두 다른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저것 골라먹고. 때론 요런 것도 먹어보기도 하고. 그렇듯이 국악에도 많은 장르가 있어요. 다양하게 준비해야겠죠.”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뒷모습을 꼭 지켜본다는 그. 처음 짊어지고 들어왔던 무거운 짐들을 하나 둘 놓고 가는 듯한 모습에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막상 보게 된 그의 뒷모습에서 그 무거운 짐들조차 설렘으로 보였다면 그것은 기자의 착각일까. 생각에 빠져 마약을 한 보따리 안은 채로 학교에 돌아왔다. 물론 합법적으로. 그것도 아주 맛있는.

박혜인 수습기자
pie00k@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