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부운동의 시발점, 아름다운 재단을 기억하는가? 아름다운 재단은 기부 문화가 낯선 우리 사회에 '누구나 마음만 있다면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누구나 자신의 수입, 용돈, 봉급의 1%만 나누면 된다는 생각은 미국의 NGO 활동에서 영감을 받은 박원순씨의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됐다. 아주 작은 움직임. 사소한 발상의 전환. 세상을 웃게 하는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씨를 만나보자.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희망제작소. 밝은 주황색 간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아기자기한 사진과 글 꾸러미, 조형물들로 꾸며진 계단을 올라 도착한 사무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 너머 수많은 책과 서류들이 빽빽이 들어찬 서재, 아니 상임이사실이 보인다. 소셜 디자이너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있는 박원순 씨는 책상에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상임이사실에는 책이며 서류들이 참 많네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묻는다.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자료를 모았어요.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기준을 세워 분류해서, 때가 되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일에 쓰지요. 젊은 시절부터 모아온 책과 자료는 이제 감당이 안 될 정도에요. 따로 모아서 보관하죠. 버릴 수 없거든요. 이것들이 모든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 '참여연대', '네이버 해피빈' 등은 모두 박원순씨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셜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무척이나 새롭고 낯설다.

-현재 직함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겸 소셜 디자이너로 되어 있는데, 소셜 디자이너란 뭔가요?

"그쵸, 처음 들어보죠?"

-네. 인터뷰를 위해 조사해봤는데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사실,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직업은 제가 만든거에요. '세상을 바꾸고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저는 매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기관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생각을 바꾸고 사회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소셜 디자이너는 정부 공무원이고, 기업의 CEO이면서, 시민사회 활동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통합형 직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직 특허청에 등록은 안했으니 여러분도 쓸 수 있습니다(웃음)."

소셜 디자이너. 그 낯선 이름에 담긴 사회를 향한 애정과 변화를 향한 열정의 온도가 심장을 덥힌다.

박원순씨의 인생 여정은 남다르다. 그는 1975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민주화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한 후 단국대 사학과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이후 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의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대학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알다시피 저는 이렇다 할 대학시절을 누려보지 못했어요. 감옥에 갔으니까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감옥에 가기 전까지 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학생이었어요. 가난한 시골 농부이신 부모님 밑에서 착실한 아들로 자랐죠. 부모님은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안정된 출세의 길을 가길 원하셨죠.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 정확히 말하자면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후부터 저의 삶은 바뀌었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죠."

-인권변호사로도 활동하셨고, 이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셨어요.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곧 변호사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조영래(인권 변호사) 선배님과 함께 활동하고 많이 배웠죠. 그러던 중 폐암에 걸린 선배님이 '박 변호사, 이제 눈을 좀 돌려봐'라는 조언을 하고 떠나셨어요. 그 때가 제 인생의 전환기였어요. 그 전부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여러 단체에 크고 작은 기부금도 냈고, 어려운 친구나 가족을 외면하진 않았지만, 그 때서야 비로소 '내 인생에 돈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후 영국과 미국 유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준비를 했습니다. 돌아와서부터 시작한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이 그것이죠."

이것을 인생의 굴곡이라 말해야 할까? 연륜? 경험? 무엇이 됐든 소셜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박원순씨가 걸어온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몸에 밴 듯 틈날 때마다 수첩의 메모를 꼼꼼히 점검하며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치열함. 그를 쉴 새 없이 내달리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용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잃을게 없는 사람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으니 두려운 게 없는 겁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에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요? 용기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죠. 저는 대학생 때 감옥에 들어갔었어요. 당시엔 그게 실패로 여겨졌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얻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는 당당하게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기있게 살다보면 삶의 모든 경험이 헛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어요."

-청년백수와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을 느끼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많은 대학생들이 모두 같은 길을 가려고 해요.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일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사람이 몰리다 보니 무한경쟁이 될 수밖에 없죠. 누군가는 실패하게 되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면 얘기는 달라져요. 희망제작소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길을 닦는다면 먹고사는 일 걱정없이 안분지족하는 삶을 즐길 수 있을 거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상임이사실을 나서자 마자 미팅을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매일 차고 넘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책 읽는 일, 전세계의 신문 보는 일, 사람 만나는 일,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한 네트워킹 등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다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풀어나가기 위한 일이다.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세상의 다양한 소리를 모아 따뜻한 온기를 만드는 발전소 같은 사람. 그 상상력의 에너지가 세상에 변화의 빛을 준다.

홍선녀 기자

angelhong@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