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위치한‘난계국악기제작촌'을 찾았을 때, 군청색의 개량 한복을 차려 입은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충북 무형문화재 제19호 악기장 기능보유자 조준석씨였다. 그는 전통적인 장인의 무거움보다는 큰아버지 같은 친숙한 편안함과 인자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앞서 방문한 제자들과의 대화를 마치며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는데 힘들었죠?”라는 말과 다정한 미소로 악수를 청하며 반겼다.
조준석(50)씨는 2005년 서울국립국악원의 추천을 받아 대전 월평동 유적에서 나온 ‘양이두’와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 유적에서 발굴된 ‘요고’,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나온 ‘10현 가야금’ 등의 고대악기 복원 제작에 참여했으며, 2009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악기장’으로도 지정됐다.
국악인의 집안에서 7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조준석씨는 삼촌 조정삼씨와 형 조대석씨를 스승으로 17살 때 국악기 제작의 길을 걷기 시작해 33년째 외길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전통국악기 중 현악기인 가야금, 해금, 아쟁, 거문고 등과 관악기인 대금, 중금, 단소 등을 주문제작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나무 원목에서부터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하루를 더 바쁘게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최근엔 제자들이 늘어나 악기의 재료인 원목을 구할 때 시간이 많이 감축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재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나무를 베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그런만큼 더욱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의 재료 사랑은 제자들을 향한 것보다 더하다. 한 예로 그는 100평이 넘는 황토방의 1층을 사람이 사용하게 하고 건조가 잘되는 2층을 재료가 있는 방으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1층에 재료를 두고 2층을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보통의 관행이기 때문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핀잔을 받았다. 하지만 건조가 잘되어 좋은 소리가 나는 우수한 악기를 만들게 되면서 주변사람들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자 “77년도부터 악기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국악기하면 기생오라비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힘든 시기에도 그를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우리의 전통국악기를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고의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 생각이 결실을 맺었는지 최근에는 국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에 대해 “각 주민자치센터나 문화센터, 학교 같은 곳에서 붐이 일면서 해금이나 가야금 같은 악기를 많이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악기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작업과 힘든 작업에 대해서 물어보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가장 중요한 공정은 없다. 또한 중요하지 않은 공정도 없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모든 공정에 임할 때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자기가 만든 악기가 10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며 가장 힘든 부분은 “악기의 자재를 선별하고 제작하면서 나무와 대화하고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이 작업이 잘되지 않으면 악기를 제작할 때 리듬이 깨져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악기를 제작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에 대해 “우리악기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아주 멋진 연주를 하고 있을 때와 좋다고 평가를 내려주실 때, 우리나라 국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국악의 소리를 듣고 너무 좋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때”라고 밝혔다. 또한 “체험학습장으로 지정된 난계국악기제작촌은 지역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하러 자주 온다. 학생들이 와서 악기 만드는 것을 체험하고 ‘자연의 재료로 이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 수 있구나’하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볼 때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가 가진 꿈은 “전 세계의 전통악기를 한자리에 모아 그것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인 세계전통악기 엑스포를 영동에서 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악이 서양음악에 밀려 홀대받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국악교육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 모두가 1종 이상의 국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전통기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악기 대중화 연구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악보 및 악기를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야든 전문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욕심만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성공한다. 물론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심은 필요하겠지만 돈에 대한 욕심은 성공에 방해가 된다. 따라서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며,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일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로 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박병석 기자  disc90@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