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부터 증권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해왔던 가수 김광진 씨. 1991년 ‘Virgin Flight’로 첫 음반을 낸 그는 ‘마법의 성’, ‘편지’와 같은 대표곡들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작곡가로써의 자질도 뛰어나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서약’, 이승환의 ‘내게’, ‘덩크슛’,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등을 작곡한 바 있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마법의 성’을 불렀던 듀오 ‘더클래식(TheClassic)’의 멤버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느덧 데뷔한 지도 20여 년. 그는 현재 동부자산운용 본부장 직책을 맡고 있다.
“펀드를 처음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적립식 투자를 추천해요. 처음엔 직접 투자보다 펀드를 해보는 것이 좋거든요. 흔히들 투자가 허황되고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전략을 잘 세우면 장기적으로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용돈을 모아서 도전해보세요.”
그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상을 갖고 있다. 둥글둥글한 안경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그렇고 부드러운 목소리도 그렇다.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고, 그런데도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이 편안함을 준다. 가족 얘기에 자꾸만 미소를 짓고, 당구 얘기로 눈을 빛내던 그는 가수이자 금융인이자 ‘아저씨’같은 사람이었다.
“항상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죠. 실제로 그렇게는 못하고 있지만 늘 생각은 많이 해요.”
어릴 적부터 노래하고 곡을 만드는 일이 꿈이었다는 그. 2008년 5집 앨범을 발표한 뒤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던 그는 ‘곡 작업을 안 하다 보니 그것도 습관이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노래는 아름다운 가사와 서정적인 느낌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은 그의 삶을 통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가사 같은 건 아무래도 일상 속에서 나오죠. 경험했던 것들 중에서요. 가령 사랑을 얘기로 한다면 저희 나이의 사랑은 20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겠죠?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가톨릭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었고요. 제 노래 중에는 ‘편지’를 비롯해서 아내가 쓴 가사들도 꽤 있어요. 그렇게 감성적인 편은 아닌데 음악을 좋아해요. 같이 작업하는 것도 좋아하고. 음정도 정확한 편이어서 뭐가 틀린 것 같거나 부족하다 싶으면 잘 집어내요. 15년 이상 같이 해왔으니까 거의 전문가 수준이죠. 함께 작업 하니까 둘이서 보내는 시간도 더 많아지고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은 모두 합쳐 9장.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이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4집 ‘Solveig’였어요. 저는 항상 앨범이 나오고 나면 만족했던 것 같아요. 뿌듯하죠. ‘다음에 이런 앨범 또 만들 수 있을까’ 싶은 막연한 두려움도 느끼고요.”
그렇다면 스스로가 만족스럽게 여기는 본인의 매력은 무엇일까? 좋은 음악만으로 쉽게 대중성까지 얻을 수 없는 요즘,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은 없는지 물었다.
“예전엔 음악이라고 하면 순전히 들리는 것 위주였죠. 그런데 요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니까요.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에 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순발력은 타고난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 같고요.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감정전달 등을 가창력의 요소라고 한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가창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예요. 특별히 노력이나 연습을 하지는 않지만, 노래 실력은 조금씩 느는 것 같아요. 제가 듣기에도 라이브도 옛날보다 반응이 더 좋고 음량이나 호흡도 더 좋아지고 음정도 정확해지고. 특히 공연하고 나면 발성도 좀 늘어있어요. 요즘이 예전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많이 불렀던 노래일수록 더 잘하는 거 같고요.”
세월이 흐르면서 가수들도 나이를 먹게 마련이다. 자신의 삶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목소리에 녹여내는 만큼, 가수들 중엔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흡연이나 음주를 자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술은 잘 안마시고 담배는 아예 안 펴요. 몸에 안 좋잖아요. 관리를 잘해야 나중에도 노래를 잘 하겠죠. 자연스럽게만 변해가면 괜찮은데 상하면 안되니까 몸 관리는 해야되는 것 같아요. 사람의 기관 중 제일 늦게 노화되는 것이 성대래요. 그래서 세시봉처럼 다들 아직까지 잘하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 가수라는 직업이 제일 복 받은 것 같아요. 운동이랑 비교를 해도 관리만 잘하면 계속해서 좋은 퍼포먼스를 할 수 있고요.”
그는 사랑받는 음악인은 물론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금융인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벌써 20년. 남들이 보기엔 그저 부러운 대상일지 몰라도 모든 일이 순탄했을 리는 없다.
“물론 좌절하고 힘들 때도 많았어요. 직장생활도 항상 좋을 때만 있을 수는 없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위기나 안 좋은 경험들도 있으니까요. 음악도 잘될 때는 좋지만 안될 때는 힘들죠. 실망도 많이 하고. 1집은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 당시에 신승훈 씨도 있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파격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발라드가 약간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은 저도 했었으니까요. 쉽지 않겠다 싶었죠.”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를 포기하지 않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좋은 음악을 남긴다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후세사람들도 그 음악을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죠. 영향력을 준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200년 전에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기억 못해도 음악가들은 기억하듯이. 제 음악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일생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의 음악을 알리는 일을 마치 소명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확고한 목표의식을 지닌 그의 계획은 어떤지 물었다.
“음악이 막 매달린다고 잘 되는 일은 아니죠. 대중과 느낌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반응이 좋을 때는 더 의욕적으로 하게 돼요. 요즘은 좀 반응이 없어서 남은 기간 동안 좀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음반을 낼 때 항상 도전하는 편이에요. 앞으로도 그럴거고 더 좋은 음악 많이 하고 싶다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입니다.”
재학생들에겐 생소할지 모르는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 김광진 씨. 그러나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박혜인 기자 pie00k@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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