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땅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새터민들의 어려움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새터민회 ‘둥지총연합회’의 김창신(55) 회장이다. 그 역시 새터민으로서 같은 새터민들이 남한에서 적응하며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새터민들의 아버지 같은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함경북도 경원군 출신인 그는 2000년 1월에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됐다. 그는 처음 서울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63빌딩과 더불어 다양한 궁궐, 크고 멋진 기업들의 건물을 보면서 남북한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게 됐다. 외관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문화나 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것이 달랐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 청년들의 연애모습이었다. 북한 청년들의 연애모습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개방적이어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북한과 사회적인 모습이 워낙 달라서 그렇겠지만 청년들의 연애모습이 처음에 매우 퇴폐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한국의 젊은 남녀청년들을 보면서 남남북녀라는 말이 옛날에나 어울리는 말이란 걸 알게 됐어요. 1950년대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수준이 더 높아 많은 식량 덕분에 몸과 피부가 건강해서 여성분들이 예뻤지만, 지금은 남한의 경제수준이 훨씬 높아진 만큼 남한 여성분들이 북한 여성분들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이젠 남남북녀가 아닌 남남남녀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여느 새터민들처럼 그도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북한에서 사용했던 말투와 어휘들 때문에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들을 받는 건 기본이었다. 탈북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그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어요. 붕어빵 장사, 분식집과 완구점 운영, 사업 등 이것저것 해봤지만 남한사회에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 안타깝게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 남한사회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남한에 처음 와서 뼈저리게 느꼈던 탈북자들의 문화적, 인간적 측면의 어려움과 외로움이 그가 ‘둥지총연합회’를 만든 동기이다. 처음엔 단순한 친목회로 시작해 2005년 11월 29일에 출범하게 된 ‘둥지총연합회’는 봉사활동을 기본 활동으로 삼고 있다. 헌책, 헌옷 등 모든 재활용품을 수집해 종로 동묘시장에서 판매한 수익금을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들이나 새터민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탈북자 유소년 축구단 ‘FC둥지’를 2009년 1월에 창단해 탈북자 가정의 청소년들과 남한의 청소년들이 함께 친해질 수 있는 자리들을 정기적으로 만들고 있다.
“제가 속한 곳은 새터민을 위한 단체이지만, 주변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돕는 것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새터민들보다 더욱 열악하게 살아가고 계신 분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유소년 축구단과 더불어 청년 축구단을 같이 운영하면서 남한의 청년들에게 탈북자들에 대한 기존 선입견들을 없애고, 젊은 친구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생기고 있어요”
그는 새터민들이 잘 적응하기 위해선 정부나 여러 기관의 지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새터민들의 열려있지 않은 마음의 자세를 지적한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새터민들이 느끼길 바라는 것이다.
“새터민들이 주변에 남한 사람들과 지도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새터민들에게는 그늘 같은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새터민들을 만날 때마다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강하게 전해요. 저도 여러 일들을 겪어보면서 알았듯이, 저처럼 머리가 좋지 않아도 열심히 무언가를 해나간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이뤄진 남북한 이산가족상봉을 그는 매우 기쁘고 흥분된 모습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마냥 기쁘게만 바라볼 수 없었다.
“이산가족상봉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하면서도 슬픈 심정이었어요.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짧은 시간에 잠깐 만나고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죠. 그리고 북한에서는 하루 먹고 살기에 애쓰느라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매일 생각하기 쉬운 상황이 아니에요. 이런 점에서 이산가족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다른 시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남한과 북한이 적이 아닌 적을 대치하고 있는 분단된 상황인 만큼 역사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빛났던 역사와 아픔의 역사들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북한과 남한이 한민족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강력히 전했다.
“젊은이들이 꼭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역사공부를 통해 자주성, 자립성을 키워야 정체성이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봐요. 더불어 북한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통일을 위한 중요한 첫 단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많은 대학생들이 통일에 대한 마음을 더 연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들이 만들어질 거라 믿어요”
따뜻한 마음과 열정적인 행보로 자신과 같이 어려움을 겪은 새터민들의 노고에 함께 공감하며 도와주는 그의 모습과 소원들이 좋은 열매를 맺길 기대해본다.
장준덕 기자
wnsejr94@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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