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를 때 중요한 것은 정상일까, 그 길을 헤쳐 나가는 과정일까. 등산이 아닌 ‘등반’은 험난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정상에 올랐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결과’ 중심의 등반보다는 ‘과정’ 중심의 등반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진정한 의미를 몸소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산에 대한 열정으로 직접 등반대를 결성한 직지원정대 박연수(심리학과卒·83) 대장을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지는 현존하는 최초의 세계 금속 활자본으로서 그 자체로 창조성을 갖고 있고 진취성이 돋보이죠. 창의의 상징인 직지를 용기와 도전의 표현인 등반과 함께 엮어보고 싶었어요. 또한 등정과 함께 직지봉, 직지루트라 명명하여 직지의 우수성 및 창조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등반대 이름을 직지원정대라고 지었죠”
그는 고등학교 시절 취미계발 시간에 등산반을 선택하게 되면서 산과 처음 만나게 됐고 우리 학교에 진학해 산악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산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온 산은 그의 삶 자체가 됐다.
“산을 오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요. 꼭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내가 정상을 위해서 산을 어떻게 접할 것인가를 중요시해야 하죠. 낮은 산은 함께 호흡하고 걸어가는 것이고, 높은 산은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겪어나가야 해요. 산과 혼연일체가 돼서 가지 않으면 진정한 산악인의 자세가 아니죠. 산과 나를 결합시킬 수 있는 정신적인 영역을 만들어야만 해요. 산은 오르는 대상이 아닌 함께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다른 사람이 간 길이 아닌 새로운 등반로를 찾기 위해 히말라야의 미등봉이자 무명봉을 찾게 됐다. 2007년 시도했던 첫 등반은 훨씬 어려운 현장의 어려움에 맞닥뜨려 실패했지만 그 이듬해, 실패의 요인을 보완해 현지시각 2008년 6월 16일 4시 58분에 히말라야 무명봉 등반에 성공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의 창조성을 극대화해보자는 마음을 가지면서 처음부터 그 봉우리를 ‘직지봉’으로 명명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첫 등반은 실패로 끝났죠. 그래도 직지봉 명명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요. 히말라야 마을 사람들과 얼굴도 익히고 친하게 지내면서 주민들에게 직지봉을 인식시키고 마을에 여러 가지 지원을 하게 됐죠”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기부를 하던 것이 매년 초 1월마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계기가 됐다. 학용품, 옷 등을 고아원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마을 발전 기금을 전달하며 10년째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직지봉 명명을 위한 이같은 그의 노력을 알게 된 히말라야의 마을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이름이 없는 봉우리에 ‘직지봉’이 명명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써 줬다. 그 탄원서는 준정부 기관인 네팔 산악연맹으로 전달되고 7월 27일 열린 ‘국가 지명 위원회’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직지봉’으로 명명이 됐다. 이러한 그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직지봉은 히말라야에서 우리나라 이름으로 된 단 하나의 봉우리로, 대한민국의 혼이 깃들어졌다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등반에 성공하고, 직접 이름을 붙임으로써 히말라야를 넘어 세계에 창조정신과 도전정신을 알린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태껏 중시했던 가치를 어떻게 계승해 나가냐가 가장 걱정이에요. 과정 중심의 등반이 이 사회에 과정을 중시하는 영역으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고민하게 돼요. 하나의 등반에서 이뤄졌던 과정이 등반가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중요하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로 사회에 전파가 돼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리고 싶어요. 제대로 된 환경을 살아온 사람들이 진정으로 정상에 오르는 법을요. 어떻게 이 가치를 계승하고, 이 가치를 사회와 어떻게 접목할 것이냐가 숙제에요”
익숙한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추구하는 그는 이미 대자연의 품속으로 빠져들었다. 앞으로 더 새롭고 힘찰 그의 도전정신이 기대된다.
황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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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