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해요. 그리고 사진을 하고 있다고 하면 여행사진, 인물사진, 풍경사진 이것들 중 어떤 사진을 하냐고 많이들 물어요. 그런데 저는 정해진 주제가 없어요. 사진뿐 아니라 제 직업도 마찬가지에요. 지금은 사진업을 하고 있지만 항상 다양한 것을 꿈꾸기 때문에 딱 무엇을 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 사진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그의 인생에서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어린 마음에 가수를 꿈꾸고 나서 이 일이 가능할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어요. 우선 가수가 되기 위한 수십 개의 ‘인생트리’를 짰어요. 그중 하나가 춤이었죠”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춤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모델까지 하게 됐다. 모델을 하면서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100번 넘게 봤었다. 그중 <턴 잇 업>이라는 영화 오디션에 캐스팅되면서 연예기획사의 눈에 띄게 됐다.
“힙합을 다룬 이 영화에 제가 춤을 췄던 것이 영화의 소재랑 딱 들어맞아 뽑히게 됐고 이후 연예기획사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어요. 드디어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간절히 바란다면 안 되는 일은 없어요”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6개월 뒤 그는 ‘예당엔터테이먼트’에서 2001년에 3인조 그룹 ‘L2O’로 데뷔했다.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됐고 당시에 중국에서 한류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을 때라 신인그룹이었던 저희도 굉장한 환호를 받았었어요. 당시에는 무서울 게 없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군대에 가게 됐고 거기서 그는 인생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군대에 가게 돼 가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많은 생각이 들게 됐죠. 가수를 제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을까란 스스로의 질문에 확실한 답변이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군대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정리하며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그렇게 찾게 된 것이 바로 ‘일본어’였고 전역 후에 강남에서 일본어 강사로까지 활동했다.
일본어가 주는 매력과 일본에 푹 빠져버린 그는 이후 또 한 번의 도전을 한다. 일본어 강사로 일하게 됐을 무렵, 우연하게 만난 한 제자로 인해 그는 영화영상작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참 매력적인 친구였어요. 영화편집 관련 일을 했었는데, 영화 원본 필름을 하나하나 잘라서 편집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저도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제가 당장 그 일을 할 순 없었지만 무작정 그 친구한테 영화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어요. 도전이라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어요”
운이 좋게도 연줄이 돼 그는 영화 스태프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의 새로운 도전인 영상작업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처음 스태프로 시작한 일이 영화 <1번가의 기적>의 메이킹 기사를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화계의 침체로 인해 그는 영화 스태프를 과감히 그만두고 다시금 도전을 감행한다. 바로 ‘SK 커뮤니케이션’에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한창 인기였던 싸이월드의 메인페이지를 담당하게 되고 거기서 그의 별명인 ‘말사장’이 탄생했다.
“말사장은 말을 통해 소통하자는 뜻으로 지은 별명인데 어느새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더라고요. 그 인기 덕에 제가 운영하던 블로그가 파워블로그의 위치까지 오게 됐어요”
바쁜 일상 속에 지친 그는 휴가차 떠난 호주여행에서 심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또다시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어요. 영화, 방송, 직장까지 다니며 저만의 시간을 못 가졌고 그런 피로감이 계속 누적됐어요. 전 휴가를 다녀오자마자 그 길로 직장을 그만뒀어요. 그리고 영상작업을 더욱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2년 정도 영상에 몰두했어요”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만의 계획이 있었기에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무모하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말도 안 되죠. 다만 전부터 제가 하나하나 계획을 했던 것이 있었기에 결단을 내리게 된 거예요”
그는 영상이론 공부와 함께 영상작업을 계속했고 자신의 영상작업 화룡점정은 그룹 ‘부활’의 뮤직비디오 촬영이라고 했다.
“부활 뮤직비디오 작업 이전부터 했던 조그만 영상작업 경험들이 모여 결국 이렇게 큰 영상작업을 하게 됐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영상을 잠시 접어두고 그가 좋아하는 사진을 하고 있다.
“제가 가수를 하던 중에도 PD를 하던 중에도 항상 사진기는 제 손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것이 지금의 일이 된 거죠. 주변사람들한테 제가 사진으로 먹고 살겠다고 했었을 때 믿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사진작가가 된 그에게 사진을 하는 것이 왜 행복한지를 묻자 핸드폰에 저장된 한 사진을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런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고, 제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이런 이유가 제가 평생 사진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해요”
최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란 질문에 그는 ‘100개국 사진전’을 꼽았다.
“100개국 사진전은 4명의 작가들이 모여 사진전을 한 것인데 처음 기획 당시에는 ‘100인의 사진전’을 기획했지만 아쉽게 성사는 못됐어요”
‘100인의 사진전’을 꼭 하겠다는 그는 앞으로의 큰 포부로 ‘문화컨텐츠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화컨텐츠센터를 만들어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능력을 상품화시켜주고 싶어요. 예술이 그저 특수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거죠”
끝으로 그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바닥을 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했다.
“바닥을 치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요.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바닥일수록 여유를 가지세요. 대신 아무 준비도 안하면서 멍하니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미래에 대한 계획을 확실히 가지면 힘들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자신의 인생에는 ‘라임’이 있다던 그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이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부탁했다.
“앞에서 들려드렸다시피 인생에는 ‘라임’이 있어요. 이것 저것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돼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죠. 모두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인생의 라임을 즐겨보세요”
김지하 기자
kjha0921@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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