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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혜원
소년 영화광, 영화감독이 되다
제 882 호    발행일 : 2014.10.06 
[사람이슈] 영화감독 및 시나리오 작가 유영선 감독

우리 학교 출신 영화감독이 있을까? 정답은 ‘있다’이다. 영화관련 학과가 없는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도 영화를 좋아하는 열정 하나로 ‘맨 땅에 헤딩’하다시피 영화계로 뛰어든 이가 있다. 바로 유영선(정치외교학과卒·93)  감독이다. ‘만약 영화 일을 안했으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할 정도로 영화만을 사랑한 그. 어린 시절부터 감독이 된 지금까지 뜨거웠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로필
2002 영화 <동승> 녹음부
2003 영화 <불어라 봄바람> 연출부
2003 영화 <레이디샬롯> 조연출
2005 영화 <혈의 누> 연출부
2006 영화 <방과후 옥상> 연출부
2007 영화 <므이> 코디네이터, 조연출
2010 전주국제영화제 ‘시나리오 피칭 부분 관객상’ 수상
2011 영화 <특수본> 윤색
2012 영화 <동면의 소녀> 각본, 연출
2013 영화 <잉투기> 시나리오지원, 조연
2013 영화 <마녀> 제작, 기획, 제작투자, 각본, 연출
2014 전주국제영화제 ‘CGV뮤비꼴라쥬 창작지원상’ 수상

 

유영선, 영화에 눈뜨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영화광이셔서 만화영화가 아닌 007시리즈, 슈퍼맨, 성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곤 했죠. 워낙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영화의 매력에 빠졌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화광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대학입학 후 하루종일 영화만 보며 살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루에 3편에서 4편 정도의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군대를 간 후 영화를 하루에 한 편도 볼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죠. 그때 ‘아, 앞으로 나는 영화 일을 해야겠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제대 후 그는 학과 내 영화관람 소모임 ‘좀비’를 만들어 매주 특이한 영화를 상영했다. 한 번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 내 대강당 같은 곳에서 국내에서 상영 금지된 공포영화 ‘오디션’을 상영한 적도 있었다.
  “정말 잔인한 장면이 많은 영화였어요.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나가기도 했죠. 저는 영화를 모두 좋아하지만 특히 공포물광이에요. 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따라가서 본 영화 중 미성년자 관람 금지 영화가 있었는데, 정말 잔인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사람이 죽는 장면 같은 것은 모두 연출된 가짜라는 것을 알려주셔서 그때부터는 별로 무섭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어요”
  이처럼 공포영화의 재미에 푹 빠진 그는 후에 감독이 돼 직접 공포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그가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그의 영화계 입성 계기 역시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이 불러온 결과였다.
  “영화에 푹 빠져있었던 대학생 때만 해도 지금처럼 인터넷 다운로드가 활발하지 않아서 직접 영화가 담겨있는 비디오테이프를 구하러 다녔죠.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작품들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서울까지 가야 했어요. 어렵게 구해서 본 영화들을 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평론을 올리는 것이 취미였는데, 영화 평론을 본 어떤 사람이 그 영화를 본인도 보고 싶은데 테이프를 복사해줄 수 있냐고 물었죠. 테이프를 건네주기 위해 만나고 보니 영화 관계자분이어서 그 후에 그분을 통해 영화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영화광 앞에 닥친 높은 현실의 장벽

  그렇게 그는 운명적 만남 덕분에 대학 졸업 후 2001년부터 맨 땅에 헤딩하듯이 영화 촬영 현장에서 잡일부터 시작했다.
  “연출, 제작 등 여러 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저에게는 연출부가 가장 잘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됐어요. 영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몸은 고달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멈출 수 없었죠”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것도 잠시, 그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고된 일과 불안정한 생활에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된 것이다.
  “2년 동안은 거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 일했어요. 그 후에도 생활이 넉넉치는 않았고요.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서울에서 생활하기란 녹록치 않았죠.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도 못하고, 좁은 고시원에서 살다 보니 몸이 병들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고향에서 올라오셔서 제 몸 상태와 사는 곳을 보시고는 저를 끌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갔죠”
  하지만 그의 열정은 현실의 장벽보다 높았다. 잠시 일을 쉬니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서울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또 한 번 걸림돌에 부딪히고 만다.
  “2007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어요.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죠. 그래서 일단 수입이 비교적 안정적인 작가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1년 동안 방안에만 틀어박혀서 영화 시나리오를 썼어요”
  작가일 역시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하게 된 그는 뜻밖의 성공을 하게 된다. 2011년에는 전주국제영화제 시나리오피칭부문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그의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지금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모아뒀던 돈이 바닥을 보여서 1년 후에 <26년> 스태프로 일하게 됐어요.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제작이 지연됐죠. 갑자기 할 일을 잃은 와중에 <26년> 제작사에서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영화 <괴물2>의 작가를 맡게 된 거에요”
  또한 그는 현재 2014년 하반기에 방영 예정인 OCN드라마 <뱀파이어 검사>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더 뱀파이어>의 메인 작가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돌아온 그, 꿈을 이루다


  그렇다고 그가 메가폰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다. 다시 그의 꿈을 찾아 돌아와 영화감독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그의 첫 장편영화인 <마녀>가 개봉되며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제가 처음에 영화계에 들어가면서부터 항상 저를 도와주시던 스승 같은 분이 돌아가셔서 다시 영화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일종의 사명과도 같았죠. 그분을 추모하며 2012년에 단편영화 <동면의 소녀>를 찍으며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어요”
  그 후에 그는 영화 <괴물2>의 시나리오를 쓰고 받은 천만 원으로 영화 <마녀>를 찍기 시작하게 된다. 후에 상금과 지원금을 더해 총 삼천만 원이 들었지만 이 역시 초저예산이다. <마녀>는 처음에는 초저예산 영화로 화제작이 됐고, 그 후로는 독특한 구성과 탄탄한 작품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천만 원으로 영화를 찍겠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원래는 예산이 적어 <마녀>를 단편영화로 찍을 생각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길어졌어요. 그래서 다른 영화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아예 더 늘려서 장편영화를 만들어 보라더라고요. ‘한 번 질러보자’는 식으로  장편을 찍어보자는 결단을 내렸어요. 그때 만약 도전하지 않고 단편영화에서 그쳤다면 이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적은 돈으로 <마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전에 특별한 보수를 받지 않고 현장에 도움을 주고 다녔던 것처럼 배우, 스태프들에게 재능기부 형식으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태까지 제가 쌓아왔던 인맥의 마일리지를 모두 사용한 것 같아요. 대부분의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교통비와 식비 정도만 지급했거든요. 특수분장팀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서 칼로 배를 찌르는 장면을 만드는 데 사용한 천만 원 가까이 하는 가짜 배도 지원받았어요. 이런 도움들을 받지 못했다면 무사히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그의 작품 <마녀>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분 41초 만에 전좌석이 매진되는 화제작이 됐고, CGV뮤비꼴라쥬 창작지원상까지 수상하게 되는 영예를 안게 됐다.
  “솔직히 전주국제영화제는 예술영화가 주로 주목받는 곳이라 공포스릴러물인 <마녀>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아무 기대도 안하고 출품했는데, 출품된 179편의 장편영화 중 경쟁작 11편에 선정돼서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매진됐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는데, 상까지 받아서 정말 놀랐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전율이 일어요. 주변 반응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거였어요”
  그의 영화 <마녀>는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정말 영화 마니아가 만든 영화인 것 같다’는 평과 ‘교과서같이 찍어낸 것 같지 않은 영화라 신선하다’는 평을 들으며 진가를 발휘했다.
  “<마녀>를 본 사람들의 평점을 보면 10점 만점에 10점 아니면 1점이더라고요. 그만큼 취향이 많이 갈린다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평가가 극과 극이라서 더 마음에 들어요. 사람들이 무난하게 여긴다는 게 아니라, 특이하게 보기 때문에 취향에 맞다면 마니아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저만의 독특한 색깔과 취향이 담긴 영화를 찍고 싶어요”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그는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과 본인만의 특색이 담긴 영화를 찍는 것이 목표라 전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우리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에게 ‘본인만의 길을 가라’고 조언을 건넸다.
  “요새 학생들을 보면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본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책을 덮어놓고 본인의 미래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긴데, 당장 눈앞의 스펙이나 취업 때문에 걱정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지금은 ‘이게 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할 때인 것 같아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본인만의 이야기도 만들어지고, 그럼 꿈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하게 죽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지금처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다가 죽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을 함으로써 행복하다는 그의 진심이 함께한다면 그의 또 하나의 목표인 ‘영화감독과 드라마 작가를 번갈아 가면서 하는 초능력자’가 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직 꿈을 향한 애정으로 행복을 이룬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최혜원 기자

hwnee72@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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