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인생의 멘토(Mentor)라 부를 수 있는 스승이 몇이나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고민을 부담없이 털어놓고 가르침을 청할 수 있는 ‘스승’, 때론 우리의 잘못을 꾸짖어 줄 수 있는 ‘스승’이 우리에겐 있을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존 키팅 역)는 월트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며 자신을 ‘오 마이 캡틴’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한다. 영화 마지막 앤딩 장면에서 학생들은 그를 인정하게 되고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 그가 떠나가는 길에 한마디를 외친다. “캡틴!” 우리 학교에도 “캡틴”이라 칭할 수 있는 교수가 있다. 그런 그이기에 제자들은 스승의 지혜가 담긴 책 출판을 권유했고, 그의 결심에 제자들은 조건없이 교정을 봐주고 출판비용을 부담해줬다. 그렇게 <Let it be>란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 ‘제임스 박’ 박종섭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Let it be> 책을 출판하게 된 계기
“글 쓰는 것을 원래 좋아했어요. 어디를 가든 축사를 공들여 준비했고 제자들이 왔을 때도 조그마한 쪽지에 마음을 담아 건넸죠. 명언과 책에도 관심이 많아 보일 때마다 복사를 해서 보거나 책상에 직접 써놓고 시간날 때마다 보기도 했어요.”
우리 학교 농업생명환경대 S21-5동 417호 한 켠에 위치해 있는 박종섭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선 기자는 어마어마한 장서 수에 깜짝 놀랐다. 일본에서 1200여 권의 책을 가져올 정도로 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던 그는 따스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Let it be> 책을 출판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줬다. “올해가 회갑이어서 평소 인연이 깊었던 제자들이랑 산길을 함께 걷고 매운탕도 먹었지요. 제자들이랑 얘기하던 중 갑자기 평소에 즐겨 썼던 글을 정리해 출판하자고 권유를 받았죠.” 문학가도 아닌 그였지만 제자들의 부탁이기에 선뜻 승낙했다. 그동안 그의 마음을 표현했던 글, 대내외 활동을 하면서 전했던 그의 메시지, 가족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서 이야기를 꾸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책 제목을 <Let it be>라고 지었어요. 꾸밈없는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선 글 속에 책임감이 녹아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죠.” 그는 자신의 모든 가치관과 신념들이 투영된 이 책이 읽는 이들에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의 마음으로 쓴 글. 그 글 속엔 사람, 그리움, 기다림이 녹아 있었다.
소아마비 아버지와 ‘제임스 박’
책 처음에 나오는 그의 양력 소개에는 “닉네임은 James Park(이하 제임스 박)”이라는 뜬금없는 문구가 써있다. 제임스 박은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한 <이유없는 반항>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제임스 딘을 따서 지은 것이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어 이 별명을 지었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칭찬해야지 남도 나를 칭찬해주는 거 같아 ‘제임스 박’이라 지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당당하게 ‘제임스 박’이라 말할 때 뭔가 책임감과 자신감도 같이 생기기도 해서 계속 부르는 거 같아요.”
이렇게 언제나 당당할 것 같았던 그에게도 고된 유년시절은 존재했다. 그의 아버지는 소아마비로 인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초등학교 강단에 섰다. 어머니는 남의 집에서 일손을 도왔고, 손수 가꾸신 농작물을 머리에 이고 하룻길 천리를 오갔다. 어린시절의 그는 해가 어스름하게 질 무렵 아버지를 모시러 가던 길이 문득 떠오른다고 말했다. 주막에서 하루의 일과를 끝냈던 아버지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널 때까지도 그는 아버지가 소아마비로 인해 개울가를 건너기 힘들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에게는 언제나 엄격하고 교육자로서의 사도(師道)를 강조하시며 삼강오륜을 읊게 했던 아버지였기에, 절대 나약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책 속의 추모사에도 그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녹아있다. ‘불편하신 다리로 저희 칠남매를 남 못지않게 길러주셨고 항상 바른 길을 가라고 일러주신 아버지 말씀을 좇아 저희 모두는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칠남매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꿈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그는 부모님의 희생과 끊임없는 격려 덕분에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아버지처럼 학문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가 아버지께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참 스승의 길을 가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보냈다. 그는 그때 아무도 공부하지 않았던 농촌 재정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의 길에 올랐다. 일본 북해도대학교에서 1년 반을 연구생 과정, 3년 박사 과정을 거쳐서 총 4년 반 동안의 유학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산기슭에 있는 전망대에 차를 세워두고 바람을 쐬고 있다가 순간 뛰어내릴까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몇 번 들기도 했어요.”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오른 만큼 부담감도 컸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지도교수님이 일본에서 유명한 분이셨어요. 오전에는 업무가 바쁘셔서 오후 6시에 연구실에 도착해 그때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계속 연구를 하셨죠. 지도교수님이 공부를 끝나고 나오시면 제가 있는 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저도 같이 밤을 꼴딱 새곤 했죠.” 어려운 일본어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정성들여 쓴 글도 다음날엔 깨알같이 빨간색 팬으로 교정됐다. 심지어 ‘이것도 일본어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일본에서 연구생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 일본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한순간이었다. “지도교수님이 직접 지도를 하셨기 때문에 혹독하게 배우고 많이 얻어갈 수 있었어요. 농촌 재정이라는 학문 자체가 농촌과 경제학이 섞인 학문이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격하게 가르치신 거 같아요.” 그는 인고의 시간을 겪어야지만 꽃을 피울 수 있듯이 자신도 그런 과정을 겪은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선생과 학생이 아닌 ‘스승과 제자’
그는 책 속에서 가르침을 신의 부름을 받는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가 대학교수가 된 것도 그만큼의 목적 의식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젊은 날에는 지식의 가르침만이 학문의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가르침은 선택된 사람의 길이라고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에 스승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구도의 길과도 같다. “35년째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평생을 가슴에 묻을 수 있는 제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인생을 가르치고 배우는 참다운 ‘스승과 제자’가 되고 싶어요.” 그는 제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스승의 날마다 ‘익명 감상란’을 만든다. 익명 감상란을 보면 제자들의 재치 있는 글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고 그는 말한다. “공통적으로 제자들은 저를 보고 완벽주의자, 찔러도 피가 안 나올 것 같은 남자라 표현하죠. 하지만 불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이 많고 사랑이 넘치는 저의 또다른 모습도 알게 된다고 말해요. 다가오는 스승의 날엔 또 어떤 쪽지가 달릴까 기대가 되네요.” 몇 년 지나면 퇴임을 앞둔 그는 학생들이 없었다면 삶의 재미가 없었을 것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마음으로 다가가는 인생교육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포도밭의 경제학
글로벌 시장의 확대와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인해 농업부문은 상대적으로 위축돼가고 있다. 이제 우리한테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세계무역기구, 자유무역협정이 낯설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그만큼 국가 전반이 경제성장과 공업화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과 농촌을 지켜야 한다고 진지하게 역설한다.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산업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정주공간으로서의 역할 등 다방면에서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는 ‘21세기 농업과 농촌’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며 노력하고 있다. 충북포도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에서 5에서 6년 동안 단장을 맡으며 21세기에 발맞춘 ‘포도브랜드’ 개발에도 힘썼다. 그는 ‘농업경제학은 포도밭에서 나온다’라는 모토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했다. 그에게 밭은 단순히 생산의 터전이 아니라 흙의 소리, 생명의 소리 나아가 포도농가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었다.
그의 연구실엔 그가 썼던 수많은 글과 수백 권의 책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남아있다.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Let it be, 무위자연, 아가페적 사랑이에요. 인생사엔 순리가 있고 자연 그대로의 경치가 아름답고 희생적인 사랑만큼 숭고한 것은 없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추구하는 바에 다가갈 수 있게 노력하면서 살 거에요.”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이 다시금 떠올랐다.
신지선 기자
wltjs7475@cbnu.ac.kr








신지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