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성들이 흠모했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과 <연애의 발견> 속 남자 주인공 간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건축가라는 것이다. 이 두 편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건축가란 직업은 새롭게 각광받으며 큰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여기, 그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건축 모형을 직접 제작한 건축가가 있다. 바로 건축 업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건축 리더로 손꼽히며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주목받고 있는 젊은 건축가, 조호 건축의 이정훈 소장이다. 이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늦봄의 어느 정오, 갖가지 건축 자재들과 건축 모형, 그리고 도면들로 꽉 차 발 디딜 틈도 부족한 조호 건축사무소에선 한창 건축물 디자인에 대한 열띤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호 건축사무소의 소장이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2010 젊은 건축가상 수상’에 빛나는 이정훈 건축가였다.
“여기에 이걸 이렇게 배치하는 거야. 어때, 재밌지 않아?” 라며 크로키북 위로 연신 연필을 움직이며 사무소 직원들에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내는 그의 눈빛은 그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반짝거렸다.
이처럼 건축에 열정적이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정훈 건축가의 시작은 사실 그가 만든 건축물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았다.
“수능을 막 마치고 대학 진학을 고민할 때, 막연히 이공계지만 인문학과 예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학과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공대에 있는 학과를 살펴보는데 마침 그 조건에 딱 부합하는 건축학과가 있는 거에요. 보자마자 ‘난 이 전공에 잘 맞을 거야’라는 직관이 들었죠. 그래서 건축의 길로 들어서게 됐어요”
이렇듯 아주 평범하게 시작한 그의 건축학도 생활은 그러나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 특히 성균관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2003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가게 된 프랑스 유학 생활은 온통 어려운 것 투성이였다.
“언어의 장벽도 높을 뿐더러 문화 자체가 우리나라와 많이 달라서 프랑스에 적응하기 어려웠어요. 특히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탓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들다고 아무것도 안 한 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럼, 그건 절대 안 되죠. 그래서 좌절하는 대신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어요. 답사도 많이 다니고, 공부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면서 유학생활을 보냈죠”
그렇게 고군분투한 끝에 그는 NANCY건축학교에서 건축 재료학으로 석사를, PARIS LAVILLETTE 건축학교에서 건축 이론 석사 및 프랑스 건축사(D.P.L.G)를 취득했다. 그러나 그의 치열한 타지 생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인 반 시게루의 건축사무소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반 시게루는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건축 거장으로, 그의 건축사무소는 그곳에 입사하고 싶은 건축학도들의 이력서가 매일같이 한가득 쌓이는 곳이었다. 그는 반 시게루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기 위해 몇 번이나 이력서를 쓰고, 셀 수 없을 만큼 전화를 하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반 시게루의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경력을 쌓았다. 이후 그는 또 다른 문화 속의 건축을 접하기 위해 영국의 자하드반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경력을 쌓으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제가 국내에서 배운 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해외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제가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꼈죠. 그걸 알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사물을 볼 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것이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한 거구요. 하지만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 늘 그 방법을 연구하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했어요”
그는 이 배움을 바탕으로 기준의 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건축 과정에서 참된 ‘건축의 즐거움’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 뜻을 조(造), 호(好)라는 그의 건축사무소 이름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이정훈 소장의 손끝에서 탄생한 건축물은 많지만 그중 대표작을 꼽자면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처음 만든 건축물인 ‘헤르마 주차 빌딩(Herma Parking Building)’을 가장 첫 번째로 들 수 있다. 주차 빌딩은 철근 구조물이라는 기존의 선입견을 깬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이 건축물은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부터 탄생했다.
“그 당시 땅에 대한 제약이 있어서 건축물로 인한 사업적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주차장을 주차장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미술관 같은 주차장’을 만들어서 주차 빌딩 내 상가의 가치를 높여 수익성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을 했죠. 물론 그 과정은 아주 어려웠어요.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부터 해서 뭐하나 쉬운 일이 없었죠. 그래도 최선을 다한 덕분에 좋은 평가를 얻은 것 같아요”
이후 그의 노력에 보답하듯 이 헤르마 주차 빌딩은 그에게 젊은 건축가상을 안겨줬다.
관교산 자락에 있는 ‘커빙 하우스(The Curving House)’ 역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그는 커빙 하우스에 관교산의 수려한 풍광으로부터 오는 감성을 담고자 했다. 그래서 산의 자연적 지세와 닮은 건물 형태를 만들고자 했고, 이에 ‘곡선’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건축 기법을 활용했다.
사실 그는 곡선을 사용하는 건축물이 많은 유럽에서 생활한 경험 덕에 ‘곡선’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곡선’이 한국의 지형적 특징을 잘 살릴 수 있을 뿐더러 이를 통해 다양한 구축 방법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크게 느끼고, 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또 그는 곡선뿐만 아니라 건축 재료에도 큰 애정을 표했다. 그 때문인지 그를 설명할 때면 으레 건축 재료를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건물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대한 심층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건축 재료에 대한 생각에 도달하게 돼요. 건축 자재가 바로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이자, 그 자체가 자연에서 오는 본성이기 때문이죠”
이 두 대표작뿐만 아니라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땀방울 흘려가며 만든 건축물 모두를 하나하나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그는 2013년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세계적인 건축 잡지인 <아키텍처럴 레코드>가 선정한 ‘2013년 차세대 건축을 이끌 10명의 건축가’에 뽑힌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회사의 한 미국인 직원이 지원서를 냈는데 어쩌다 보니 뽑혔다”고 말했다.
“수상 이유가 참 흥미로웠는데, 개인의 많은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공유하는 플랫폼 시대에서 각각의 지역적 특색을 디지털 틀을 가지고 아날로그적으로 풀어낸다는 거였어요. 건축의 주류라 불리는 국가에서 우리나라의 건축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 기회를 계기로 알게 됐죠. 저한텐 이게 바로 거기에 선정됐다는 것의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의 이런 태도는 이유가 있다. 그가 자신은 아직 한참 더 성장해야 하는 건축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또, 사실 그는 어워즈 등에 참여할 땐 온 정성을 쏟아 열심히 하지만 결과에는 그리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만 최선을 다해 만족스런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의 목표가 현장을 방문할 때 드는 체력 소모를 줄여줄 운전 잘하는 비서를 얻는 것이라고 말하는 특유의 재치를 가진 사람이다. 또 대학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애와 독서라고 단호히 말하는 감성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오랫동안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진정한 모습은 건축에 있어서 늘 결과물이 마음에 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최선만을 고집하는 진지한 프로의 면모였다. 이런 그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건축 업계를 이끌게 될지,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김남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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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