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리. 망치 뒤쪽에 날카롭게 서있는 도구를 의미한다. 주로 못을 뽑아내는 용도로 쓰이는데, 이 장도리를 타이틀로 내걸고 20년째 만평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경향신문의 박순찬 만화가다. 1995년 그가 경향신문에 입사한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 외환위기(1997), 대구지하철 참사(2003)와 같은 수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묵묵히 역사의 흔적을 그려나간 박순찬 만화가, 그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 제 만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할 때 기분이 좋았거든요” 중고등학교시절에도 만화에 푹 빠져 살았던 그는 정작 대학교는 천문대기과학과를 입학했다. “사람들이 많이 의아해하더군요. 만화에 관심이 많으면 그에 맞는 학과에 입학하는 것이 좋겠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SF만화를 그리고 싶어했어요. SF장르의 특성상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천문대기과학과에 입학한 것 같아요. 꼭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관련학과를 입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87학번 새내기 박순찬이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기웃거린 곳은 ‘만화사랑’이라는 동아리였다. 그곳이라면 흰 종이에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대학교에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어요. 시위가 많던 시절이죠. 운동권이 많다 보니 각 단과대 건물에 ‘걸개그림’을 거는 것이 유행이었어요. 동아리인 만화사랑이 그런 일을 했죠. 그릴 수 있는 바탕이 있다면 어디든지 그렸던 것 같아요”
졸업할 즈음, 그는 학내게시판에서 ‘경향신문 시사만화 공모전’을 봤다. 사실 그는 시사만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다른 장르의 만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공모전에서 그의 작품이 당선되면서 그에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당시에는 별다른 매체가 없다 보니 시사만화의 인기가 많았어요. 당시 경향신문에서 만화가 1명을 뽑는데 200명이 응시했거든요. 아마 성수대교 붕괴에 관한 만화를 그렸던 걸로 기억나요. 수백 명 중에서 제가 뽑힐 줄은 상상도 못했죠”
1995년 2월 6일, 경향신문에 입사한 그는 시사만화 장도리를 처음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펜에서 굵직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올해로 20년을 맞은 장도리
그에게 2015년은 의미 있는 해다. 바로 시사만화 장도리가 20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작품을 구상하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였죠. 소재를 찾으려면 직접 발로 뛰는 시기였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 사건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시사만화 장도리에 녹였다.
기자가 최근에 가장 기억나는 사건을 뽑아주길 요청하자, 그는 망설임도 없이 세월호 사건을 꼽았다. “요즘에 기억나는 사건이 세월호 사건이에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죠. 제가 공모전 때 제출했던 만화가 성수대교 붕괴사건이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어요. ‘2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이 없구나’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두 사건 모두 인재(人災)잖아요. 어른으로서 죄송한 마음이네요”
항상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시사만화를 그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많을 텐데 이 때문에 혹시 잡혀가지 않으셨어요” 기자도 같은 질문을 하자, 그는 그런 적은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자신의 만화를 보고 좋아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사만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편성이라고 생각해요.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읽혀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들이 제 시사만화를 보고 얼굴을 붉히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작품을 재밌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시사만화 장도리를 연재할 때는 여러 번 청와대에서 수정요청을 받았다. “제가 처음 입사할 때가 김영삼 정부 말기였어요. 그때는 청와대에서 여러 번 전화로 수정요청을 받았죠. 외압까지는 아니었어요. 다만 내용을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죠. 요즘에는 정치권에서 그런 요청은 거의 없어요. 가끔 기업홍보실에서 연락 오는 정도인 것 같아요”
시사만화 장도리는 신문발행 특성상 일주일에 5번을 연재한다. 사실상 매일 만화를 그려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순찬 만화가는 세상의 흐름을 읽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시사만화는 내용 뿐만 아니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흐름을 표현해야 해요” 그만큼 우리나라처럼 역동적인 나라도 없다고 박순찬 만화가는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여름휴가차 5일 동안 일본여행을 다녀왔어요.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국 소식을 듣기가 어려웠죠. 휴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 며칠 사이에 수십 건의 사건.사고가 있었더군요. 정말 우리나라만큼 역동적인 나라는 없다는 것을 몸소 느꼈어요. 하루만 귀를 닫고 살아도 다른 세상이 돼 있는 것 같아요”
그에게는 매일 지키는 습관이 있다. 무엇이든지 읽고 습득하는 습관이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머릿속에 작품을 구상한다. 텔레비전과 뉴스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여유롭게 혹은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일상은 그닥 여유롭지만은 않다.
“물 위에 있는 백조랄까요. 수면 위에 도도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물속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끊임없이 무엇인가 창조해내려는 생각인 것 같아요. 창작의 고통이죠. 같은 형식을 반복할 수는 없으니까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 같아요”
그 사이에서도 박순찬 만화가는 시사만화의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수많은 독자들이 저한테 메일을 보내요. 고맙다는 말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식이죠. 하지만 개인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잘 반영하지는 않아요. 시사만화는 불특정 다수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청년 여러분, 후회하지 마세요”
그는 청년들에게 ‘후회하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우리는 항상 후회를 하죠. 내가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갈 걸, 더 많이 운동해서 멋진 몸을 만들 걸. 흔히 우리는 ‘과거에 이렇게 할 걸’이라는 식으로 늘 후회를 하죠. 문제는 타인의 기준으로 정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에요. 즉,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마음이 깔려있죠. 그래야만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거든요.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즘 청년들의 스펙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점이라고 봐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박순찬 만화가는 강조한다. “세상에는 가치가 없는 것은 없어요. 스펙을 쌓는 시간에 내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는 걸로 행복을 느끼면 그걸로 끝이라고 봐요. 세상의 정답이 없듯이 우리의 미래도 정해진 길은 없거든요. 저는 우리나라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회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이 분노가 많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분노를 어디다 풀 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힘든 것은 사실이죠. 취업 불안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고민을 안고 있거든요. 문제는 이게 분노로 표출되고 있어요. 최근의 불거지고 있는 기성세대 분노나 여성혐오도 같은 맥락이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에요.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풀고 있는 식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정치, 사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가정집의 쥐를 그렸다고 정부에서 검열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외국인에게 후진국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요. 그에 비하면 우리 사회가 많이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문제가 없지는 않아요. 빈익빈 부익부, 세대갈등, 사회적 소수자 문제 등 우리에게 놓인 과제들이 많거든요 저는 청년들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투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모임에도 나가고, 하다못해 친구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박순찬 만화가는 대학신문에도 아낌없는 충고를 전했다. “종이신문의 시대는 저물고 있어요. 이미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정보전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죠.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 언론보다 자본력이 부족한 대학신문이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결국 스스로의 경쟁력을 어떻게 키워나가느냐가 중요하죠. 최근 시사만화 장도리도 칼라판으로 바꿨어요. 모바일로 많이 보는 독자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하기 위함이죠. 이제 독자들은 시사만화 장도리를 신문보다 모바일로 많이 보고 있어요. 저도 이제는 댓글이나 게시물을 보고 많이 참고하죠. 일부 독자들은 장도리가 경향신문에서 발행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더군요. 저는 모바일 소통의 방식으로 대학신문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변할 수는 없죠. 하지만 변해야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지 않겠죠”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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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