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입헌군주제를 택하게 된다. 현재 국왕의 생일은 공휴일로 지정됐고, 궁궐에선 해마다 왕실 공식행사가 개최된다. 경복궁과 창덕궁에서는 시험을 거쳐 입궁한 상궁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훤칠한 외모의 왕자는 교복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온 나라 여성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한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이렇게 ‘상상’일 것만 같은 일들을 우리들의 눈에 직접 담아내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만화’에선 이 모든 것이 가능함과 동시에 우리들의 눈과 상상력을 만족시킨다. 종이 위에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작가는 바로 2002년 화제의 만화 <궁>을 탄생시킨 박소희 만화가이다. 그렇다면 박소희 만화가는 ‘만화’를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지금부터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살 소녀, ‘만화’에 대해 고민하다
아침잠을 달래며 3시간을 거쳐 달려간 곳은 경기도 부천시의 한 아파트였다. 문을 여는 순간 펼쳐진 풍경은 기자의 눈과 귀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거실의 벽면에는 크고 편안한 분위기의 사진이 여럿 자리 잡고 있었고, 집안 곳곳에 배치돼 있는 향초가 기분 좋은 향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며 오랫동안 걸어온 ‘만화가’라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만화를 좋아하셔서 늘 제 곁에 만화책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림이나 색칠공부를 많이 하곤 했죠. 하지만 ‘나중에 커서 만화가가 돼야지’라는 생각보다는 ‘만화가 좋긴 한데 내가 만화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컸죠. 지방인 대구에 살면서 정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만화가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이랬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만화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들고 오신 ‘대학입시홍보 책자’를 본 이후였다. 그때 알게된 공주문화대학 만화예술과는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줬다. 뒤늦게 만화가라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됐지만, 만화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기 위해 만화예술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다.
“마치 제가 한 톨의 먼지 같았다고나 할까. 이런 생각들이 쌓이다 보니 만화에 대한 애정도 식었고, 흥미도 잃었죠. 졸업이 다가왔고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했지만, 저는 만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자 공주에 1년 더 머무르며 만화 공모전을 준비했어요. 1년만 더 해보고 공모전에서 입상을 못 한다면 만화를 그만둬야겠다는 각오로 버텼죠”
이후 2000년 제2회 서울문화사 신인만화대상에서 만화 <영혼결혼식>으로 은상을 받았고, 박소희 작가는 드디어 만화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상상을 현실로, 21세기에 입헌군주제를 그리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단연 <궁>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녀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려한 만화 <궁>의 시작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친구들이랑 학교를 땡땡이치고 김해 김수로 왕릉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네도 타면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았었죠. 이후 왕릉에 있는 전각을 보게 됐어요.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는 전각의 문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건물이 예쁜데 잠겨있어서 아쉽다. 여기에도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면 정말 좋을 텐데’라는 생각과 ‘서울에 있는 창덕궁 같은 궁들도 다 잠겨있겠네? 궁에 진짜 사람이 살면 정말 예쁠 것 같다’라는 생각 같은 거요. 그때부터 <궁>을 구체적으로 구상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후 그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롯해 ‘입헌군주제’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관련 서적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비열전을 전부 읽었다. 조선 시대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말하면 이에 관련된 인물들과 왕, 왕비들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서양의 입헌군주제에 대해 공부했고 세계사, 한국사를 공부하며 <궁>의 시작을 탄탄히 다져갔다.
<궁>을 구상하는 과정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특히 만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한복’을 그리는 것은 그녀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부분 중 하나였다. 한복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집에 한복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가사 선생님이었다.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이 두꺼운 한복 전문 서적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고 무작정 빌려달라고 했죠. 선생님께서는 그 책이 정말 크고 가격도 비쌌는데 흔쾌히 빌려주셨어요. 덕분에 한복을 마음껏 그려볼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의 박소희 작가는 <궁>을 연습장에 열심히 그려 친구들과 돌려보곤 했다. 그녀에게 <궁>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전부였다.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옷, 장소 등을 보면 언제나 <궁> 속 어디에 그려 넣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궁>은 연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모전 입상을 통해 만화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던 서울문화사 월간만화잡지 <나인>에서는 <궁>을 연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잡지는 만화 <궁>과 성격이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폐간됐었다. 이후 <궁> 연재를 위해 우연한 기회로 서울문화사의 또 다른 순정 만화잡지 <윙크>를 찾아갔지만, 사람들은 ‘단행본으로 내보면 괜찮을 것 같네’라며 일단 두고 가라고 말했다.
“단행본이라는 게 잡지에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책 한 권으로 만드는 거거든요. 저는 연재를 하고 싶었지만 우선 돌아왔죠. 이후 정말 운 좋게도 바로 연재를 들어가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보통은 단편을 몇 번 그려보고 연재를 시작하는데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연재 이후 <궁>은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2002년 연재를 시작해 독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고, 대만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프랑스, 태국 등에 꾸준히 수출됐다. 이어 2006년에는 <궁>이 드라마로 탄생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된다.
“드라마 제작진과 배우들이 너무 열심히 만들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하죠. 특히 전체적으로 미적 표현에 대해 신경 써주셔서 아주 좋았어요. 만화 <궁>은 흑백으로 그리다 보니 색감에 있어서 아쉬움이 매우 컸었는데, 드라마 속 한복이나 장소 등의 색감이 아름다웠어요”
박소희 만화가의 현재를 말하다
이렇게 성장해온 그녀는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서 <공방의 마녀>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궁>의 연재가 끝날 때쯤에 생각했던 만화였다. 우연히 미용실에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를 보게 됐고, ‘우리나라에도 흡혈귀가 건너와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만화책을 대신해 인터넷 ‘웹툰’이 등장했고, 만화책 출판에 맞춰 구상했었던 <공방의 마녀>는 연재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 지었다.
“만화랑 웹툰은 정말 달라요. 만화는 한 권의 책에 스토리를 담으면 되지만 웹툰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거든요. 웹툰의 짧은 한 회에 만화로 구상한 이야기를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미뤄왔었지만, 꼭 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후회 안 하겠다 싶어 연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녀의 걱정도 잠시, 웹툰 <공방의 마녀>는 평점 9점 후반대를 기록하며 많은 독자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는 그녀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녀는 조각보를 그리기 위해 직접 조각보 체험을 하러 다니고, 한옥을 그리기 위해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해 며칠을 지내곤 한다.
“모든 만화가가 그렇듯이 만화를 그리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건 자료조사라고 생각해요. <궁>은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에 많은 자료가 머릿속에 들어있었지만, <공방의 마녀>는 조금 예외에요. 웹툰 연재와 자료조사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알아야 할 자료의 양이 방대하죠. 하지만 북촌 한옥마을을 아침 일찍 거닐며 ‘이 골목에서 주인공들이 처음으로 마주치면 재밌겠다’와 같은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아요”
만화를 오랫동안 그리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이 드러나는 한 마디였다.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예전에 후배들이 봐달라고 가져온 만화를 보며 만화가로 데뷔하기에는 재능이 없다고 판단됐던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현재 그 후배들 중에는 데뷔를 하거나 나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는 전문가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너무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뜻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꿋꿋이 걸어가길 바라요. 모두가 꿈꾸고 노력만 하면 다 이뤄진다는 희망고문을 하려는 게 아니라, 타인의 말에 너무 흔들리지 말라는 게 제 이야기의 요지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그녀가 발로 뛰고 또 뛰며 정성스레 만들어낸 작품들은 그 노력을 아는 듯 우리의 머릿속에 깊은 여운의 자국을 남긴다. 누구보다 ‘만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살아가는 그녀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작품으로 다가올지 기대해본다.

엄태은 기자
ii06@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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