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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주
시각 장애인에게 따뜻함을 선물하는 남자
제 902 호    발행일 : 2016.02.15 
임찬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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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도화지 삼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손을 거치면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색을 찾게끔 만든다. 어딘가 모르게 그의 작품에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은 지난 8년 동안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천수 씨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메이크업과 함께 시작한 봉사의 길
 
  지난달 22일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2층 7street라는 헤어샵에 들어선 순간, 여기저기 보이는 독특한 머리색과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옷차림에 기자는 한참 동안 시선을 뺏겼다. 직원의 안내로 임천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만나기 전, 그의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기자는 화사한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모습은 수수하고 깔끔했다. 기자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한 후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보다 5살 위인 형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여자였으면 하는 부모님의 바람이 컸어요. 그 때문인지 부모님은 저를 여자아이처럼 길렀어요. 저 역시 아름답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딱히 불만이 없었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머리를 만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을 정도로 다른 남자아이에 비해 여성성이 강했다. 실업계였던 공업고등학교 재학할 당시 그는 좀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황을 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들려오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에 그도 진로 고민에 빠졌다.
  “어렸을 때부터 멋진 옷을 입고 일하는 폼나는 직업을 갖고 싶었죠. 고민 끝에 본래 관심있었던 뷰티분야 중 헤어보다는 대중화되지 않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죠”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수강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곧바로 메이크업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는 군대를 다녀와 2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본격적으로 미용공부를 시작했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싸이월드(Cyworld)에 메이크업 정보를 공유할 목적으로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임’이란 이름으로 싸이월드에 클럽을 만들었다. 주변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 친구들에게 클럽 가입을 권유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임’은 꽤 규모 있는 클럽이 됐다. 그는 회원들 간의 친목을 위해 한 달에 두 번 정도 회식자리를 만들었다. 클럽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회식 사진을 주기적으로 클럽에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사진첩에 술자리 사진만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회의감이 들었다. 직업군이 확실한 모임인 만큼 술보다는 더 가치 있는 만남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봉사를 제안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봉사에 대한 개념도 없었어요. 혼자였으면 봉사를 한다는 시도도 못했을 거예요. 함께였기 때문에 총대 매고 시작할 수 있었죠”
  대다수 클럽 회원들은 봉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동네인 신림동을 중심으로 가까운 봉사기관을 찾기 시작했다. 신림동 근처인 봉천역에 시각장애복지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봉사를 시작했다.

8년 동안 봉사의 원동력된 ‘진짜 미소’

  시각장애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메이크업 강연을 진행했다. 그의 첫 봉사는 시각장애인 아이를 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이 어머니들은 시각장애인 아이의 손과 발이 돼줘야 하는 탓에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임천수 씨는 화장품을 보고 반짝이는 어머니들의 눈에서 그들도 여자란 것을 느꼈다. “강연 내내 뭉클했고 미묘한 감정을 느꼈어요” 그는 누군가 그로 인해 행복해하는 모습에 봉사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시각장애인 아이의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에 대해 강연을 진행하고 싶었어요. 시각장애인의 종류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도 있었고, 실선만 보이는 분들, 그리고 중도 시각장애인도 있었다.
  메이크업 강연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확히 알려줘야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눈썹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만져보게 해야 하고, 몇 번째 손가락에 화장품을 묻혀 발라야 하는지까지 알려줘야 한다. “이 강연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메이크업을 스스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봉사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그분들에게 더 쉽고, 기억에 남을 강연을 할까 고민해요”
  올해로 시각장애인 강연 8년차에 접어든 그는 꾸준한 연구로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는 화장품을 사는 방법에서 무난한 색을 화장품 가게에서 주문하는 법까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중심으로 강연했다.
  기억에 남는 분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고민없이 단번에 대답했다. “주기적으로 강연을 하기 때문에 매번 강연을 듣는 사람이 바뀝니다. 그 때문인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은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그분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요. 메이크업 강연을 진행하며 스스로 메이크업을 한 후 ‘저 예쁘나요’란 말과 함께 환하게 지어주는 미소는 8년 동안 꾸준히 봉사를 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됐죠”

메이크업과 봉사, 두 마리의 토끼를 잡다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맥(MAC)에 입사해 5년 동안 근무했으며 현재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가진 임천수. 그가 그 자리까지 오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위 여자의 세계라 불리는 메이크업에 이방인이 끼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듯, 임천수 씨는 메이크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화장품에 대해 아는 것이 백지 상태였어요. 같은 화장품이라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 것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는 유사한 종류의 화장품을 일일이 발라보고 비교하는 노력 끝에 그 이유들을 알아냈다. 바로 다양한 제품 내에 서로 다른 기능이 있고, 같은 색처럼 보이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겪은 어려움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유능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었다. “기본적인 실력이 갖춰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죠. 하나를 가르쳐줘도 한 개를 얻는가, 두 개를 얻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죠. 그 당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제자리인 것 같아 슬럼프가 왔어요”  
  그 당시 그는 그가 걷고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자신의 길이 맞는지 고민할 정도로 힘든 슬럼프 시기를 겪었다. 정체기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선배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구했고, 스스로도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주말마다 사진 촬영을 시작했고, 패션쇼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조그만 일이라도 다양한 일에 도전하려 노력한 결과, 그는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산을 이미 넘은 상태가 되었다.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그 안만 눈에 보여요. 하지만 울타리를 벗어나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죠”
  현재 그는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헤어샵인 7street에 그만의 메이크업 공간을 대여해 사용하며, 다양한 아티스트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꾸준히 진행한 시각장애인 강연은 올해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초심을 잃지 않는 한결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는 유명하기보다는 실력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유명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실력이 있으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대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했으면 좋겠어요. 물이 흘러가듯 느리게 가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찾아가게 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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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기자
yellowtree@c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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